한전 영암군 등 "나 몰라라", 볼펜행정 / 기회주의의 대표적 작품...

<정우택 논설위원>
5년 동안 꿈적도 않고 서있던 전봇대가 이명박 당선인의 말 한마디에 2일 만에 속 시원하게 뽑혔다. 전남 영암 대불산업단지 네거리에 서있는 전보대가 5년 동안에 걸친 입주업체들의 민원과 아우성에도 끄떡없이 버티다 결국 뽑혔다.
한국전력과 협력업체 직원들은 20일 대불산단 4거리에 있던 전봇대 하나를 철거하고 다른 하나는 옆으로 옮겼다. 이들 전봇대는 대불산단에 입주해 있는 선박업체들이 집채만한 대형 선박블록을 실어나를 때 방해가 돼 무려 5년간이나 민원이 제기돼 왔던 것들이다.

그동안 한국전력과 영암군 등 지방자치단체는 입주업체들의 민원에도 불구하고 서로 자기 책임이 아니라며 상대방에게 책임을 떠 넘겨왔다. 한전과 영암군, 심지어는 산업단지공단, 산업자원부 까지 입주업체의 어려움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난 모른다'는 식이었다.

헌데 이런 전봇대가 순식간에 뽑혔다. “대불산단 네거리에 있는 전봇대가 아직도 치워지지 않고 있다”는 이명박 당선인이 말 한마디에 한국전력과 영암군, 산업자원부 등이 '똥끝'이 탔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가 제도개선, 서비스강화 등을 외쳐댔지만 꿈적 않고 있던 '눈치 공직자'들이 움직인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동안 전봇대를 옮겨 달라는 민원을 못들은 체 하던 한국전력, 영암군과 산자부 관계자들까지 현장에 출동했다고 한다. 전봇대를 옮기는 날은 비가 내렸는데 이전 같으면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산자부 관계자들이 전봇대 때문에 현장에 간 것은 아마 건국 이래 처음인지도 모른다. 그만큼 현장감이 없다는 얘기다.

대불산단 네거리에 있는 전봇대는 공무원들과 공기업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탁상행정과 책임 떠넘기기에 길이 들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또 그들이 국민과 기업에게 얼마나 군림하는지도 잘 말해준다.

겉으로는 서비스 개선이니 뭐니 떠들어 대면서도 뒤로 돌아서면 볼펜이나 굴리고 이기주의, 면피주의에 빠져 있는 공직자들의 모습, 얼마나 기회주의 적인가. 힘없는 입주업체들이 민원을 냈을 때는 '저쪽에 가서 알아보라'며 방관하던 사람들이 이 명박 당선인의 말 한마디에 비오는 날에 공사를 했다니 이런 기회주의자들이 또 있을까.

입주업체의 한 관계자는 “입주업체의 어려움은 아랑곳 하지 않고 한전과 지방자치단체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에서 배신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이런 공직자들이 버티고 있는 한 대불산단의 미래는 없다고 열을 올렸다. 그는 정부의 어느 누구도 이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대불산단 전봇대의 경우 이명박 당선인이 지적하지 않았으면 한전이, 영암군이, 산자부 관리들이 과연 관심이나 가졌을지 생각해봐야 한다. 답은 뻔하다. “규정상 안된다” 일 것이다. 대불산단 전봇대와 관련된 일을 하고 혹시 상을 받은 사람은 없는지 걱정이다.

공무원들은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자리나 차지하고 앉아서 안이하게, 책임이나 떠넘긴다면 공직을 떠나도록 해야 한다. 정부는 대불산단 네거리의 전봇대 문제를 그냥 넘기지 말고 5년씩 문제를 끌어온 당사자를 찾아 모두 처벌해야 한다. 또 그들이 비리에 연유됐는지도 점검해야 한다.

정부는 아직도 국민들의, 기업의 불편함을 생각하지 않고 탁상행정에 재미를 붙인 공무원은 과감히 퇴출시켜야 한다. 그런 조치 없이는 국가가 제대로 돌아갈 수가 없다. 국민은 우습게 알고, 권력자에게는 몸을 바쳐 아부하고, 눈치 보는 공직자들이 국가발전에 가장 장해가 되기 때문이다.

정우택 논설위원 jwt@todaykorea.co.kr

저작권자 © 투데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