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채 주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을 앞두고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열린 공청회가 20분 만에 파행으로 끝났다. 지난 10일 열린 이 공청회는 한미 FTA 개정절차에 착수하는 중요한 첫 단추였다. 그러나 첫 단추부터 잘못 낀 꼴이 되고 말았다. 농축산업 관련 단체 회원들은 이날 공청회에서 한미 FTA가 상호 호혜적 결과를 가져왔다는 내용 등을 담은 경제적 타당성 검토 보고서가 발표되자 “거짓말 하지마!”, “농축산업 죽이는 한미 FTA 폐기하라” 등을 외치며 무대를 향해 달걀을 던지고 단상을 점거했다. 이들은 “졸속 공청회를 중단하고 향후 농업 피해에 대한 분석을 제대로 한 뒤 추가로 공청회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미 양국이 지난달 초 미국에서 합의한 한미FTA 개정 작업은 통상절차법에 따라 공청회, 경제적 타당성 검토, 국회 보고 등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 그래야만 개정 협상을 시작할 수 있다. 이날 공청회는 FTA 개정 추진경과 보고에 이어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FTA 개정의 경제적 타당성 검토에 대한 발표, 통상 분야 전문가간의 종합토론, 질의응답 순으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FTA 개정의 경제적 타당성 검토에 대한 발표가 있던 중, 농민 단체 회원들이 강하게 항의하면서 단상을 점거, 종합 토론과 질의 응답은 진행되지도 못한 채 20분 만에 중단되고 말았다. 농민들은 “본때를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며 오는 18일 청와대 앞에서 집회를 열기로 해 앞으로 험난한 과정을 예고해 주고 있다.
공청회란 당사자는 물론이고 전문지식인과 일반인 등으로부터 폭넓게 의견을 듣고 공개적인 토론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이다. 그러나 이번 공청회는 “(공청회) 발표 내용을 토론자 그 누구에게도 미리 제공하지 않았다”고 폭로한 정연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회장의 성명으로 미루어 주체인 산업통상자원부가 공청회를 단순한 요식절차로 여기지 않았나 여겨진다. 축산관련단체협의회도 기자회견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계속 전달했으나 허공속의 메아리로 전락했다”고 주장, 당사자들간 사전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사료된다.
공청회 발표 내용도 문제다. 가장 주목받은 건 FTA 개정 협상이 국내 시장에 미칠 피해와 영향을 시나리오별로 분석한 보고서인데 이 보고서 가운데 제조업 관련 분석 결과만 발표되고 농업 피해 예측이 담긴 내용은 빠졌다. 이는 충분한 의견 수렴을 하겠다고 강조해 온 정부의 방침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이에 농민들이 “피해 분석 결과도 떳떳하게 공개하지 못하게 하고 얼마나 더 퍼주려고 하느냐”며 발끈하고 나선 것이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13일 워싱턴 D.C에서 기자들과 만나 “중요한 건 협상 과정과 절차를 국민들에게 명명백백하게 알리는 것”이라고 말했고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도 지난 8월 “당당하게 협상하겠다”고 강조한바 있다.
정부는 그동안 협상 과정에서 미국이 농업 분야에 대한 개정을 요구하더라도 더는 양보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정부는 농민들의 반발로 사실상 무산된 지난 10일 공청회에서도 "농축산물 시장 추가 개방은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히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국정감사에서 “농업분야는 레드라인(양보할 수 없는 한계선)”이라며 더이상 양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낙연 총리도 10일 '농업인의 날' 격려사에서 "정부는 농산물을 지키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민들의 의구심은 여전하다. 미국이 지난 9월 열린 한미FTA 공동위에서 FTA 발효 이후 15년에 걸쳐 철폐하기로 한 미국산 농산물에 대한 관세를 즉시 철폐하고 한국산 농산물에 대한 관세는 5~10년 더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 쌀 협회가 FTA에서 제외됐던 쌀을 재협상해 줄 것을 요구하는 등 미국의 공세가 예사롭지 않는데다 공산품과 농축산물을 통틀어 협상 테이블에 오를 품목이 사실상 초민감 농산물밖에 없다고 판단되는 것도 의구심을 증폭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한국 정부는 한미FTA 체결 당시 쌀을 비롯한 민감 품목은 양허 대상에서 제외하고 고추, 마늘, 양파 등 118개 품목에 대해서는 15년 이상 장기 철폐 기간을 확보했었다.
미국은 우리가 농업 분야를 사수해야 한다는 상황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이에따라 미국은 한국이 가장 민감하게 여기는 농업 분야를 집요하게 공략, 자동차 등 제조업과 서비스분야에서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려 할 것이라고 예측도 나오고 있다. 어쨌든 양국 정상이 FTA 개정협상의 신속한 추진에 합의한 만큼 협상이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이젠 정부와 농민 모두가 냉정을 되찾아 대화를 통해 적극적으로 소통할 필요가 있다. 특히 정부는 협상 과정에서 국내 농축산업계가 더 이상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배려하겠다는 점을 확실히 설명해 농축산인들을 안심시킬 필요가 있다. 또한 농축산인들도 정부 입장을 잘 확인하고 막무가내식 반대를 해서는 안되겠다. 일방통행식 독선은 반발만 부를 뿐이다. <투데이코리아 주필>
필자약력
△전) 연합뉴스 경제부장, 논설위원실장
△전) 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
△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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