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순직 논설주간


지난 11월 11일은 농업인의 날, 19일은 추수감사절이었다. 이 두 기념일을 보내면서 떠오르는 단어는 ‘농민 농촌 그리고 쌀’이다. 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봄이면 식량이 없어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하는 가구가 많았다. 생일에나 쇠고기국에 쌀밥 한 끼 먹는 게 우리네 서민들의 소원이었던 시절이었다. 쌀밥에 대한 고마움 잊은 지 이미 오래다. 그러니 농민에 대한 감사함도 모르고 산다.

도시에서 살더라도 손바닥만한 주말농장이라도 가꿔본다면 금새 농민들에 대한 고마움을 느낄 것이다. 먹음직스럽고 튼실하고 아름답기까지 한 갖가지 채소며 과일을 보노라면 이 먹거리들이 우리 식탁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농민들의 손길과 정성 노고가 깃들여져있는지 알 수 있다.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과 농어민의 날에 관해 잠깐 살펴보는 것도 한해를 보내며 농민 농촌을 들여다보고 감사해하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1620년 종교적 자유를 찾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영국에서 신대륙 미국으로 이주한 청교도들은 이주 첫해 혹독한 추위와 질병으로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는 등 시련을 겪었다. 그러나 온갖 역경을 극복하고 이듬해엔 첫 수확을 하게 된다. 이때 작물을 재배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살아가는데 도움을 준 이들이 원주민이었다. 청교도들은 자신들을 죽음에서 구해준 원주민들을 초청하여 수확한 농산물과 가축으로 음식을 장만하여 감사한 마음을 다해 대접한다. 이때 야생 칠면조(Turky) 고기도 먹었다 해서 추수감사절을 ‘터키 데이’라고도 한다.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11월 넷째 주 목요일, 캐나다는 10월 둘째 주 월요일이다. 우리는 11월 셋째 주 일요일이다.

농민에 대한 감사

농민들의 긍지와 자부심을 심어주고 농업 농촌의 소중함을 기리기 위해 우리나라는 매년 11월 11일을 농업인의 날로 정해 법정기념일 행사를 갖는다. 11월11일을 농업인의 날로 제정한 배경은 농민은 흙에서 나서 흙과 함께 살다 간다는 의미에서 흙 토(土)자가 겹친 토월토일(土月土日)을 상정했고, 이를 파자(破字)하여 아라비아 숫자로 풀면 11월 11일이 된다는데 착안한 것이다. 물론 이날은 농림수산식품부가 주관하여 각종 행사를 치르지만 일반 사람들은 알지도 못한 채 지나기 일쑤다.

옛날 삼국시대나 조선시대에도 권농행사에 임금님이 직접 참여하여 농업의 존귀함을 강조했던데 비하면 오늘날 농업에 대한 홀대를 새삼 느낄 수 있다. 창경궁에 가보면 조그만 논을 조성해놓고 왕실에서 손수 벼를 가꾸며 농민들의 애로를 손수 파악했다는 기록을 볼 수 있다. 오늘날 농업인의 날이 농민에 대한 감사보다 빼빼로데이로 더 알려지는 건 씁쓸하다.

지금 농촌은 첨단기술과 융합한 6차 산업의 현장으로 급격하게 변신해 가고 있다. 젊고 유능한 인력과 자본 정보가 농촌으로 몰리며 얼마 안가면 농업과 농촌은 과거와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바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업 농촌의 가치는 영원할 것이다. 그래서 농협을 주축으로 농업인들은 농업의 ‘헌법적 가치’를 강조하고 나섰다. “농업은 식량안보는 물론 국토의 정원사, 환경보전, 지역사회 유지, 전통문화 계승 등 공익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국민의 생활을 더 풍요롭게 하는 농업의 공익적 가치가 새 헌법에 반영되어야 한다”는 슬로건 하에 농협은 헌법 개정시 농업의 가치가 반영되어야 한다는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농업의 공익적 가치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중시, 헌법에 명시하고 지원하는 장치를 마련한 선진국들도 많다. 대표적으로 스위스의 경우 농업의 역할이 식량공급 뿐만 아니라 갖가지 공익기능을 창출하기 때문에 국가가 지원해야 한다는 근거를 연방헌법 제104조에 명시, 농정예산의 75%를 직접지불 방식으로 농업인에게 지급한다. 유럽연합(EU)도 비슷한 지원체제를 갖춰놓고 있다.

우리의 경우도 직불지원 등 갖가지 농민지원 장치가 있지만 농촌의 공익기능까지를 헌법에서 보장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농업인들은 곧 진행될 개헌 과정에서 농업의 헌법적 가치를 반영하기를 기대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공약에서 농업분야의 개헌 관련 사항은 경자유전(耕者有田)의 폐지 정도 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 그리고 앞으로의 농업 농민 농촌의 국민에 대한 기여는 물론이고, 과거 만성적 식량부족을 해결해낸 우리 농민들에 대한 보은 차원에서도 이 문제는 진지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투데이코리아 논설주간>

필자 약력
동아일보 경제부장, 논설위원
재정경제부 금융발전심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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