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은경 작가

어제 첫 눈이 내렸다. 첫 경험처럼 마음의 현을 건드리며 살포시 내렸다. 이른 아침에 마당에 나가자 첫 번째 바라보이는 앞집 지붕에 첫 눈의 흔적이 남았다. 마당에 깔린 붉고 노란 나뭇잎들은 어제 내린 눈의 자취를 찾으며 바람에 이리 저리 날려 다닌다. 해가 조금씩 올라오면 집 안 통유리로 제일 먼저 침수정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마을 앞개울 건너 동산 중턱에 서 있는 아름다운 정자이다. 산 밑이라 아직 태양의 손길이 닿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마음속으로 두 분 할아버지께 인사를 한다. 남편의 할아버지와 증조할아버지 두 분이 힘을 모아 지으신 정자이다. 베개 벨 침(抌)자에 이 닦을 수(潄)자라 했다. ‘수’자는 잘 알아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어려운 글자인데 두 글자는 전원생활을 일컫는 말로 옛사람의 시문집에 나온 말이란다. 돌로 베개를 베고 개울물로 이를 닦는다는 뜻이라고 했다. 그렇게 자연을 벗 삼는 시골 생활을 물질과 먼 청빈사상과 관계하여 표현한 것 같다.


그렇게 옛 조상들이 생각한 자연과 지금 사람들이 생각하는 자연은 여러 모로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모기나 파리 등 벌레가 많고 잡초는 키를 넘을 정도이고 쉽게 뽑히지도 않다가 길의 흔적조차 없애버린다. 자연은 생물 중에서도 식물에 더 자리를 주나보다. 날 것 그대로의 자연에 사는 동물들은 뱀이나 승냥이 정도나 되어야 살아남는 것 같다. 문명에 길 든 사람에게 날 것의 자연이 힘든 것은 당연해 보인다. 시골 간다니까 풀 뽑느라고 힘들어 어찌 사냐고 지인들의 걱정이 태산 같았다. 시골에 살더라도 문명인으로서 머리를 쓰며 살면 괜찮지 않을까? 새 집의 앞뒤로 앞은 잔디, 뒤는 돌 자갈을 깔았다. 그 자갈 틈을 뚫고서도 잡초가 자라났다. 내년이 되어서도 예쁜 잔디밭을 유지하고 살 수 있을까?


의자에 앉아 고요하게 첫 눈의 흔적을 이고 있는 침수정을 바라보며 커피 한 잔을 마신다. 지난번 서울 올라간 김에 미뤄뒀던 바리스타 2급 자격 실기시험을 봤고 어제 합격했다는 문자를 받았다. 이사 오기 전 두 달에 걸쳐 강의와 실습, 필기시험을 끝낸 터다. 무엇에 도전한다는 것은 어렵지만 언제나 가슴 설레게 한다. 누구의 어머니도 누구의 부인도 아닌 내 이름으로 내 나이를 내세우고서 (시험을 칠 때 주민등록번호를 밝혀야 하기 때문에, 나이를 속이기 어렵다.) 실습을 받으러 다녔다. 20대 30대가 절반, 나이 많은 축도 50대 정도였다. ‘내 나이가 뭐 어때서?’라고 말하고 싶지만 이렇게 양 손을 쓰는 바리스타란 직업은 나이를 뛰어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커피를 내릴 때마다 잔에다 부을 때마다 왜 그렇게 손이 떨리는지 몰랐다.


눈대중으로 잘 할 것 같았지만 커피를 쏟기도 했고 다른 데다 붓기도 했다. 똑같아야 할 커피 두 잔의 양이 서로 들쑥날쑥 다르기가 일수였다. 그러니 선생님한테 핀잔도 들을 수밖에. 하지만 이제 합격했는걸. 이곳으로 내려올 때 에스프레소를 뽑을 수 있는 커피 기계를 하나 사 가지고 내려왔다. 가끔 내가 만든 커피로 내게 선물을 한다.


이곳에 살면서 카페를 낼 수 있을까? 가능성을 열어 둔다는 것 또한 도전이다. 바리스타 수업 때 처음 시작한 인원이 14명이었다. 수료와 시험까지의 기간 동안 세 명이 사라졌다.


시골에서 산다는 것. 여기서 농사를 지어 생계를 유지하는 귀농이 아닌 귀촌이라도, 시골에서 살기를 선택했다는 것은 바리스타 시험 못지않게 중요한 도전으로 생각된다.


농촌은 농부가 농사를 짓는 일터가 된다. 그 농부가 자녀 교육 등을 이유로 도시에 사는 경우가 많아졌다. 또한 농촌은 도시에서 수입을 얻는 사람들이 도시 대신 살기를 선택한 곳이기도 하다. 나처럼 즐겁게 귀촌하려는 사람들이 도전에 성공할 수 있도록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나 지원도 필요할 것 같다.


굿 럭! 바리스타! <작가>

조은경 약력
△2015 계간문예 소설부문 신인상 수상
△소설 '메리고라운드' '환산정' '유적의 거리' '아버지의 땅'등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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