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어선 출몰 수십년 지났지만 '한결 같은' 정부대응 앞 漁民들 분통

▲ 강릉 주문징항에 발이 묶인 채 정박 중인 오징어잡이 어선들.


[투데이코리아=오주한 기자] 한반도 오징어가 자취를 감추고 있다. 삶거나, 굽거나, 튀기거나 혹은 말린 상태로 오랜 기간 서민의 미식(美食)으로 사랑받아왔던 오징어가 식탁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오징어만큼 한국인에게 사랑받는 수산물도 드물다. 전세계에서 마른 오징어를 즐기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 뿐이다. 오징어 소비량은 2002년 32만2천톤(해양수산부 통계)을 기록할 정도로 명태와 함께 '국민수산물'로 자리매김해왔다.


길거리 노점에서 떡볶이 국물에 오징어튀김 한 점을 찍어먹고, 중국집에서 얼큰한 짬뽕 한그릇에 담긴 오징어를 단무지와 함께 즐기고, 식당 밑반찬으로 나온 오징어무침을 먹는 모습을 주변에서 찾기란 어렵지 않았다.


이러한 오징어가 지금 우리 곁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그리고 전문가들은 예고된 대란(大亂)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 중국 어선 단속에 나선 해경.


□ 한반도 海域 장악한 中 어선 "해적과 다름 없어"


오징어잡이가 한창인 11월, 동해안 어민들은 만선(滿船)의 꿈을 안고 출항하는 대신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일손을 놓은 채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중국 불법조업 어선단이 동해를 장악한 채 치어까지 '싹쓸이'한 탓에 더 이상 잡을 오징어가 없기 때문이었다.


이돌암 근해오징어채낚기협회장은 "지금이 제일 성어기인데 며칠만 고기가 안 나오면 들어왔다가 또 나가기가 힘들다. 어획고가 있어야 기름을 싣고 선원들 월급도 줄 것 아닌가"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중국 어선단의 동해 출몰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동해에서 오징어 '씨를 말리는' 행위는 1993년 9월12일자 동아일보 보도에서도 이미 확인된다. 당시 동아일보는 "현재 중국은 우리나라와 같이 어로작업을 하는 동해와 동중국해상에서 새우, 해삼, 전복, 도미, 조기, 갈치, 문어, 오징어 등을 어획하고 있다"며 "이곳에서 중국 총생산 어획량의 57.3%를 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중국 정부의 '무대응' 실태도 꼬집었다. "중국 어선의 우리 수역 침범건수는 89년 192건이었으나 91년 1112건, 92년 994건이었다"며 수산청이 주한 중국대사관에 항의의사를 전달했지만 불법조업이 여전히 성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89년 기준으로 중국 어선단의 동해안 불법조업이 이뤄진지 약 28년이나 지났지만 지금도 오징어 조업은 지속되고 있다. 2010년 10월 중국 현지언론들은 산둥(山東)성 웨이하이(威海) 선적 어선 340척이 채 100일도 안돼 북한 동해안에서 오징어 9만2천톤을 잡았다고 보도했다.


북한 동해안은 오징어가 러시아 수역에 머물다 산란을 위해 남하하는 길목이다. 이 오징어들이 우리 해역으로 내려와서 산란을 하면 어민들은 성어를 낚아올린다. 치어는 성어로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잡지 않는다. 그런데 중국 어선단은 성어의 남하(南下)를 막는 것은 물론 우리 동해안에서 치어까지 쓸어담아 어장의 씨를 말려버리고 있는 것이다.


전국근해채낚기어업인비대위에 따르면 근래에도 형편은 마찬가지다. 현재 중국 어선 1500여척이 북한 수역에서 오징어 조업에 나서고 있다. 어민들은 자체적으로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채낚기어선이 200여척에 불과해 난항을 겪고 있다. 중국 선원들은 흉기를 동원한 무차별 폭력으로 유명하기에 접근 자체가 쉽지 않다. 어민들은 이들을 두고 '해적'과 다름 없다고 혀를 내두른다.


▲ 해양수산부는 우리 어민들의 울릉도 조업금지를 조건으로 광력상향에 5일 합의했다.


□ '우리 어선 단속' 정부에 漁民들 분통


수십년째 중국 어선의 우리 해역 장악이 이뤄지고 있지만 정부대응은 미흡하기 짝이 없다. 특히 92년 한중(韓中)수교 이후 대응강도는 나날이 낮아졌다.


95년 3월11일 한겨레신문 보도에 따르면 당시 정부는 '평화선(일명 이승만라인)' 안으로 들어와 불법조업하는 중국 어선에 대한 본격단속을 중국 정부에 통보했다. 구체적으로 중국이 일방적으로 선포한 '마오쩌둥(毛澤東)라인' 무효화를 요구했지만 중국 정부는 이를 무시했다. 이처럼 한국이 항의하고 중국은 사실상 거부하는 상황은 이후 정부에서도 반복됐다.


급기야 해경대원 사망자까지 잇따르자 일선 해경대원들은 스스로 대응강도를 높였다. 2008년 고(故) 박경조 경위가 중국선원이 내리친 삽에 맞아 사망한데 이어 2011년에는 고 이청호 경사가 중국인 선장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사망했다. 이에 맞대응이라도 하듯 2014년 우리 해경대원이 중국인 선장에게 권총을 발포해 사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중국인들의 혐한(嫌韓)운동 앞에 우리 국민 여론까지 악화되자 정부도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했다. 작년 10월 정부는 M60기관총 등 공용화기를 동원한 중국어선 단속에 나섰다. 11월에는 실사격도 이뤄졌다. 2012년 5만93척에 이르렀던 중국 어선이 작년 3만9069척으로 감소하는 등 효과가 있었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었다.


수십년간의 불법조업으로 이미 우리 해역의 오징어 개체수가 급감한데 이어 근래에 중국 어선 출몰이 다시금 상승세를 보이면서 오징어를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중국이 2010년에 100일 동안 북한 동해안에서 9만여톤을 조업한 것에 비해 우리 어선의 최근 3년간 동해상 오징어 조업량은 6719톤에 그쳤다. 그나마 올해 1~10월에는 이마저도 반토막난 3653톤에 그쳤다.


국산오징어 조업량이 급감한데 이어 페루, 칠레 등 수입산오징어도 이상기온 등 영향으로 물량이 사라지면서 강원도 오징어가공업체들은 현재 줄도산 위기에 처했다. 강원도, 중소기업중앙회 등은 고용노동부에 강릉 주문진 지역을 고용재난지역으로 선포해 줄 것을 건의하기로 했지만 어민들과 가공업체 종사자들은 이 지경까지 이르도록 손 놓고 있었던 정부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도 정부는 도리어 우리 어민들을 '단속'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전국근해채낚기연합회에 따르면 오징어 어획량 감소에 따라 집어등(조명) 밝기를 현행 기준보다 높여 조업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됐지만 당국은 광력을 높인 어선들에 대한 단속을 근래 강화했다.


광력기준 위반으로 2회 적발된 어선은 허가가 취소돼 5개월간 오징어 조업을 할 수 없다. 정부는 최근에는 조업금지 기간을 5개월에서 10개월로 늘린 법령을 입법예고했다.


해양수산부는 5일 부산 동해어업관리단에서 열린 회의에서 오징어 최대어장 중 하나인 '울릉도 주변 조업금지구역 설정'에 동의하는 조건으로 광력상향을 인정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조업금지구역 설정이 무색하게 울릉도에서는 중국 어선단 불법조업이 버젓이 이뤄지고 있지만 정부는 우리 어민들에게만 원칙준수를 강요한 셈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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