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은경 작가

김장을 하고 며칠이 지나서 특별한 손님이 찾아왔다. 이름을 먼저 지은 무궁화 하우스를 진정 명실상부한 무궁화 하우스로 만들어 주실 분이다. 홍단심 백단심 위주로 1미터 정도의 무궁화 묘목을 무궁화 하우스에 여섯 그루, 침수정 주변에 일곱 그루 식재했다. 무궁화 사랑 본부의 본부장님으로 조수 한 분과 함께 오셨다. 본부장님의 도움으로 전에 현충원에도 무궁화 심기를 한 적이 있다. 본부장님은 65세, 일을 도맡은 조수는 50세 정도인데 굳은 땅에 힘든 삽질도 마다 않고 파놓은 구덩이 안에 물을 넉넉히 붓고 나무뿌리를 다스려가며 흙을 부어 단단히 고정시켰다. 시원시원하게 일도 잘 한다. 겨울에 심어도 되냐고? 걱정이 되어서 물었더니 매우 추워 땅이 어는 1월 정도만 빼고는 식재 가능하다고 한다. 웬일? 무궁화가 그렇게 강인한지 다시 한 번 확인한 느낌이었다. 그 더운 여름에 오래도록 꽃을 피우고 겨울에 옮겨 심어도 살아남는다고? 그게 바로 우리 민족의 저력일까? 무궁화와 우리 민족을 동시 비교한다는 게 꼭 맞진 않지만 왠지 그렇게 해 보고 싶었다. 진딧물이 많아 선호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 민족에게 달려드는 수많은 오랑캐, 왜구 등을 의미하는 것 아닐까? 고통을 받는 무궁화를 그런 이유로 내친다면? 그건 아니지. 적절한 약을 쳐서 진딧물을 박멸해야지.

봄에 1년생 묘목을 충분히 가지고 와서 무궁화 울타리를 만들어 준다고 했다. 감사 감사한 마음이다. 텃밭에 남은 배추 중에 좋은 것을 골라 원하는 대로 가져가라고 했다. 아! 시중의 배추 값이 비쌌으면 큰 선물이 되었을 텐데. 유감이다. 무궁화 묘목을 가져온 포대 속에 배추 여러 통이 담겼다. 흐뭇했다.

참, 배추에 대해 그동안 하지 않았던 얘기를 좀 더 해 볼까? 한 달 전, 파랗게 자라 올라오는 배춧잎이 너무 탐스러워 혼자 생각을 했다. 이 건강한 파란 잎을 가진 배추로 김장 전에 미리 김치를 담아 보면 어떨까? 그럼 김장 할 때면 적당히 익거나 시어져서 김치찌개를 만드는데 딱 적당한 재료가 되어줄 것이다. 파란 이파리가 많은 신 김치에 (파란 잎 김치는 언제나 나의 로망이었다.) 돼지고기를 숭덩숭덩 썰어 넣어 김치찌개를 만들어 먹으면 좋겠다. 그것도 배추밭을 가진 부자만이 할 수 있는 생각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배추 열통을 다듬어서 대충 절여서 깨끗이 씻은 다음 양념해 (절인 김치와 고춧가루 그리고 마늘........ 재료는 이것이 전부였다.) 김치를 담아 큰 항아리에 넣은 위에 소금을 한소끔 뿌린 후 고택의 뒤란에 두었다. 해가 들지 않아 너무 시어버릴 위험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지난번 김장 담글 때, 그 얘기를 했더니 형님은 신 김치에 도통 관심이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할매들 몇과 나 없을 때 우리 집에 마실 와서 장독 속의 김치를 맛보았다는 것이다. 시어서 모두들 고개를 절래절래 젓고 돌아갔다고 형님은 얘기했다.

-신 김치 좋아하시지 않나 봐요. 김치찌개 하면 딱인데.-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형님의 따님과 친정언니가 동시에 말했다.
-신 김치 좋아해요. 좀 주실 수 있어요?-

그래서 내가 준비한 신 김치는 내 먹을 것을 약간 남기고 모조리 팔렸다. 어쩜, 가족들의 입맛이 그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형님이랑 할매들이 싫다고 했지만 역시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어줬던 것이다. 김치찌개를 해 먹으면 정말로 맛있을 것이다. 푸른 잎이 많은 신 김치가 재료니까. 시골에 사는 맛은 딱 이런 것이다. 많이많이 퍼 줘도 아직도 남아 있는, 아니 자꾸만 더 생기는 화수분이 집 안에 있는 느낌 말이다. 추워지는 날씨 속에 따뜻한 집 안에 앉아 느긋한 마음으로 겨울을 맞이한다.

어서 와요. 겨울님!

<작가>
조은경 약력
△2015 계간문예 소설부문 신인상 수상
△소설 '메리고라운드' '환산정' '유적의 거리' '아버지의 땅'등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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