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무 회장



‘청출어람’이라는 말, 들어보셨지요? ‘쪽에서 나온 푸른 물감이 쪽빛보다 더 푸르다’는 뜻인데, 주로 훌륭한 스승 밑에서 더 뛰어난 제자가 나왔을 때 쓰는 말입니다. 한국미술사학회 회장과 문화재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신 안 휘준 교수의 저서 ‘청출어람의 한국미술’이란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 책은 한국미술을 ‘청출어람’이라고 비유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한국미술은 중국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지만 우리 고유의 예술혼과 정서가 깃들면서 더 뛰어난 미술을 창조했다는 의미에서 바로 ‘청출어람’이라는 것입니다.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을 비롯한 화려하진 않지만 다채롭고 독특한 매력을 풍기는 삼국시대의 불상조각이 그러한 청출어람의 대표작이라는 것이지요. 그 외에도 이러한 작품으로는 율동성과 역동성, 박진감과 긴장감이 넘치는 고구려의 고분 벽화, 우아하고 섬세하며 평화와 여성미가 특색인 ‘금동대향로’ 같은 백제미술, 신라의 금관과 태환식 귀걸이 등의 뛰어난 장신구, 통일신라시대 불교미술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석굴암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그 이후에도 고려시대에는 특유의 색감과 세밀함이 돋보이는 불화나 청자, 나전칠기, 조선시대에는 산수화, 초상화, 풍속화와 백자 달항아리 등이 있습니다. 이처럼 한국미술은 고유의 개성과 해석을 드러내면서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수많은 ‘청출어람’의 작품들을 창출해낸 것입니다.

저자인 안 교수는 청출어람의 경지를 보여주는 한국의 작품들을 선정하기 위해 적지 않은 고심을 하였다고 합니다. 저자는 그 선정원칙으로 창의성, 작품성, 수월성(秀越性)이 뚜렷하고 독보적이어야 할 것과 한국적 특성, 독자성이 분명하고 국적에 대한 논란의 여지가 없어야 할 것을 꼽고 있습니다. 그런 기준에서 위에서 든 수많은 뛰어난 작품들이 선정되었습니다.

애초에 한국미술의 청출어람이 가능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요? 저는 그것이 폐쇄성과 배타성이 아닌 개방성과 융합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다른 문화에 대한 배타성을 버리고 능동적이고 열린 자세로 받아들이는 사고, 그러면서도 매몰되지 않고 독창성을 가미해 새로움을 만들어 내는 융합성이 바로 청출어람을 가능하게 한 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만의 독특한 내면의 예술적 영혼과 정서가 있었기에 모방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문화예술을 창조하는 청출어람을 일궈낸 것입니다. 요즈음 세계를 풍미하고 있는 한류문화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됩니다. 지속적인 창조와 개방성으로 우리만의 개성을 담아냄으로써 동서양을 넘나드는 외래문화들을 잘 받아들여서 융합하고 재해석하여 우리 시각에서 새롭게 재창출해냄으로써 세계인에게 광범하게 인기를 얻고 있는 이른바 새로운 ‘한류’ 문화코드를 형성하는데 성공했다는 점에서 이 또한 청출어람이 아닐 수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최근 들어 한류가 주춤해졌다는 우려스런 지적이 있습니다. 안주와 만족으로는 청출어람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새로움을 모색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5천년의 맥을 이어온 우리의 전통문화와 예술이 늘 그러했듯이 한류의 새로운 청출어람을 위한 지속적 노력이 필요할 때입니다. 세계 속의 한류가 한때 유행에 머물지 않고 오래도록 빛날 수 있는 원동력을 청출어람을 이룬 한국미술을 통해 되짚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투데이코리아 회장>

필자 약력
△전)농림수산부 기획관리실장
△전)세계식량농업기구(FAO)한국협회 회장
△전)농어업농어촌 특별대책위원회 위원장
△전)한국농어촌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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