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채 주필


고향은 어머니 품속처럼 아늑한 추억의 상징이다. 객지 생활이 어려울수록 고향이 떠오르고 고독할수록 고향 사람의 절절한 정이 그리워진다. 하지만 고향은 돌아가고 싶다는 욕구와 갈 수 없다는 현실의 간격 속에 존재한다. 다시 찾겠다는 각오가 크면 클수록 고향의 발전을 기원하고 시골과 도시의 상생을 염원한다.

최근들어 ‘고향사랑 기부제도’(일명 고향세) 입법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특히 포항 지진을 계기로 현재의 열악한 지방재정으로는 재해지역의 빠른 복구가 힘든 만큼 이 제도를 서둘러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찬반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고향세를 최초로 도입한 일본에서도 지난해 규슈 지진 때 도시민의 고향기부가 쇄도한 선례가 있다.

고향세는 고향이나 원하는 지역에 일정액의 세금을 납부하거나 기부금을 냈을 때 세금 혜택을 주는 제도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공약으로 내놓아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된 이 제도는 현재 국회에 발의된 관련 법안만도 10개나 되고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발의한 것이 5건으로 가장 많고 야당인 자유한국당이 3건, 국민의당이 2건 등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의원 발의가 이처럼 많은 것은 고향세가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안으로 간주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전국 광역.기초 지자체 243곳 가운데 재정자립도가 30%도 안 되는 곳이 전체의 64%인 155곳에 달할 정도로 지자체간 재정불균형이 심각한 상태다.

발의 법안들을 비교해 보면 고향으로 들어가는 돈의 이전방식에 차이가 있다. 대별하면 '세액공제'와 '세입이전'으로 나누어진다. 세액공제 방식은 각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기부금을 모집할 수 있게 하고 정부가 기부금에 대해 세액공제를 해주는 형태다. 반면에 세입이전 방식은 납세자가 소득세의 일정 금액을 자신이 지정한 지역의 세입으로 신청하면 자동으로 해당 지자체로 세액이 이전되는 방식이다.
두 방식 모두 장.단점이 있으나 지역간 재정 격차를 축소해 지역 균형발전과 도농상생에 도움을 주고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고향 경제를 되살리는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일본처럼 지자체가 기부자에게 선물을 줄 경우 지역 특산품을 비롯한 농축수산물의 소비도 증가, 지역경제가 활성화되고 일자리도 늘어날 것으로 예견된다. 부수적으로 도시민들의 애향심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제점도 적지 않아 제대로 된 안전장치를 마련하지 않을 경우 부작용만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높다. ‘현재 거주하고 있는 지자체에 피해를 주면서 고향을 돕는게 맞는지 의문’이라는 지적을 비롯해 ‘고향을 사랑하면 그냥 기부하면 되지 굳이 고향세를 도입해야하는 취지를 모르겠다’는 등의 목소리가 있다. 또한 ‘기부금 모집을 위한 지자체 간 경쟁으로 답례품 과당경쟁이 발생할 수 있다’거나 ‘뭔가 그럴듯해 보이지만 효과는 없고 논란만 커질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고향세의 시초는 일본이다. 2008년 아베 신조 1차 내각이 도입한 이 제도는 도입 당시 반응이 별로였으나 아베 총리가 세액공제 혜택을 2배로 높이고 지자체의 답례품이 고급화하면서 뜨거운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고향세 규모는 첫해인 2008년에는 5만4천 건에 81억 엔으로 반응이 시큰둥했으나 지난해에는 1271만 건에 2844억 엔으로 불과 8년만에 건수는 252배, 액수는 34배나 폭증했다.

일본의 지자체들은 납세자들에게 고기, 야채, 과일, 해산물 등 지역의 고급 특산물이나 역내 온천시설, 동물원 이용권 등을 답례품으로 보내준다. 기부액 중 약 40%가 답례품비로 쓰여 실제로 지방재정에 들어가는 돈은 전체의 60%에 불과하다. 하지만 보답품으로 지출된 40%도 대부분 지역 농.특산물 구입 등에 쓰여 결국은 모두가 지역경제 활성화에 쓰인 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07년 대선때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가 처음으로 제안했다. 창조한국당은 2008년 총선에서도 이를 공약으로 내걸었으나 당의 교섭단체 구성 실패로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2010년에는 한나라당이 지방소득세의 최대 30%를 본인의 고향이나 5년이상 거주했던 지역에 낼 수 있도록 하는 향토발전세 신설을 지방선거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역차별이라는 수도권과 도시권 지자체들의 반발이 거세게 일면서 폐기되고 말았다. 그러다가 지난해 1월 전북도의회의 ‘고향세 도입 전문가 간담회’개최를 계기로 다시 수면위로 부상했다. 같은 해 3월에는 전국시도의회의장 협의회가 전북도 의회의 양성빈 의원이 제안한 고향기부제를 만장일치로 채택했고 올들어서는 지난 3월 문재인후보가 대선공약으로 내놓았다.
국민들도 대다수가 고향세 도입에 찬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양 의원이 지난 8월 (주)한국정보통계에 의뢰,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8.3%가 고향세 도입에 찬성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도 9월 개최된 한 포럼에서 "고향세가 혹시 지역격차를 키우게 되지는 않을까 등의 우려가 없지 않지만 정부는 고향사랑기부제도 관련 법안을 올해 마련해 내년 상반기중 국회를 거쳐 2019년부터 시행한다는 일정을 잡아놓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고향세 도입을 우려하는 사람들도 많은 만큼 일본의 시행착오 등 예상되는 부작용을 철저히 분석, 도입 반대자들을 설득시킬 수 있는 보완책이 마련돼야 한다. 이와함께 기부금 모금이 준조세나 강제 모집 등으로 변질되는 것을 막는 장치도 함께 강구돼야 하겠다. <투데이코리아 주필>

필자 약력
△전) 연합뉴스 경제부장, 논설위원실장
△전) 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
△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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