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병기 교수

정부는 농가 소득을 보전하고, 농업경쟁력을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매년 엄청난 돈을 쏟아 붓고 있다. 2015년 국회 예산정책처에서 발간한 ‘농업보조사업평가 보고서’에 의하면 당해 연도의 농업보조금 규모는 6조5,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적지 않은 돈이다. 이 돈을 전 농가로 나누면 농가당 평균적으로 600만원 가까이 돌아간다. 전업농가 기준으로 보면 농가당 1,000만원이 넘는 규모다. 게다가 보조금 규모는 매년 늘어나고 있다. 2008년에는 농업보조금 총액이 5조3,000억원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 사이에 1조원이나 넘게 불어났다. 또한 동보고서는 농업 보조금이 농림축산식품부 전체 예산의 절반(45.2%)에 달한다고 분석하고 있다. 우리 농정의 골격이 바로 보조금이며, 또 갈수록 그 골격이 단단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농업의 경쟁력을 올리고, 농가소득을 늘리는 것이 우리 농정이 추구하는 지향점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래서 엄청난 보조금을 투입하면서 안간힘을 쏟고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녹록치 않다. 지난해 농업소득은 1,100만8,000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매년 이렇게 제자리만 맴돌다 보니 지난해 농가소득은 도시근로자 가구의 63.5% 수준으로 곤두박질했다. 농업의 경쟁력도 나아졌다는 어떤 징표를 찾기 어렵다. 농가수는 2010년에 1,177,318호이던 것이 2016년에는 1,068,274호로 줄어들고 있다. 그 사이 10만이 넘는 농가가 농업을 포기하고 떠났다. 농업의 국민경제적 역할을 대변해주는 식량자급률마저 바닥으로 떨어진지 오래다. 이마저도 해를 거듭할수록 점점 더 하락하고 있다. 2010년에 27.6%이던 식량자급률은 2015년에는 23.8%로 낮아졌다. 농가소득이 나아지고, 농업의 경쟁력도 살아나고 있다는 어떠한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농업활동은 더 위축되고 있으며, 농업인들의 생활수준도 더 팍팍해지고 있다. 우리 농업의 미래가 먹구름에 가리어 잘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현재와 같이 보조금에 의존하는 농업이 과연 지속가능하냐 하는 걱정이 먼저 든다. 농업활동을 통해 창출되는 연간 소득이 농가당 1,100만원 정도에 그치고 있는데, 그것을 위해 정부가 그 절반이 넘는 600만원 정도를 국민세금을 들여 지원하고 있다. 보조금으로 연명하는 농업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농업의 과도한 지원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농업관련 예산 전체로 미루어보면 농업보호를 위한 지원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2015년 농림축산식품부 세출예산을보면 농가당 그 규모가 1,700만원이 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꼭 들어맞지는 않겠지만 개략적인 셈본으로도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농가당 1,100만원 소득을 올리기 위해 그것보다 더 많은 1,700만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되고 있다는 것이다. 농업관련 예산은 어떻든 직·간접적으로 농업활동 지원을 위해 정부가 사용하는 돈이다. 차라리 농업을 전적으로 시장에 맡겨버리고, 그 돈을 그냥 나눠주는 것이 소득측면에서는 더 효율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보조금을 지급하는 이유는 원론적으로 농업을 보호하는 이익이 그에 수반되는 비용에 비해 결과적으로 더 크기 때문이라고 한다. 과연 농업활동으로 발생하는 사회적 이익이 그로 인해 창출되는 농업소득보다 더 큰 부담을 국민에게 지우게 할 만큼 그렇게 큰 것인가? 일반적으로 식량안보와 환경보호와 같은 농업의 비교역적 기능을 농업보호의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농업의 비경제적 가치는 외면할 수 없는 중요한 사회적 가치임에는 분명하다.


문제는 무릇 매사가 그렇듯이 보호하는 가치와 지불해야 하는 비용 간에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다. 농업을 통해 얻는 소득보다도 매년 더 많은 공공자금을 투입하고 있는 우리 농업의 현실을 당연시하고, 나아가 더 많은 보호와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일방적이며, 그래서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게다가 비용을 부담하는 집단과 이익을 누리는 집단이 다를 경우에는 더 더욱 과도한 비용부담에 대한 사회적 공감을 기대하기 어렵다. 국내총생산의 단지 2%에 불과한 농업생산을 지원하기 위해 그 생산액의 절반에 이르는 돈을 나머지 98%의 비농업산업으로부터 거둔 세금으로 충당한다고 하면 쉽게 동의해 줄 것 같지 않다. 비농업부문의 부담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농업이 지속가능하지 않음은 불문가지이다.

농업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농정목표가 단지 하나의 수사(修辭)로 전락한지는 오래다. 보조금으로 연명하는 농업의 미래를 두고 진지한 고민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무엇보다도 우리 농업의 미래에 대한 농정의 진정한 입장이 무엇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것이 문제이다. 농정이 제시하는 목표는 우리 농업이 가야할 방향을 알려주는 좌표이고, 나아가 그것은 농업이 걸어가야 할 길을 일러주는 길잡이이기도 하다. 농정의 기본입장과 목표를 합리적으로 설정하고 분명하게 제시하는 것이 농정의 최우선 역할임을 말해주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 농정은 농업의 미래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정립하지 못하고 출발부터 비틀거리고 있다.

사실 농업회생 문제를 둘러싸고 2가지 상반된 시각이 교차하고 있다. 하나는 우리 농업의 현실로 미루어 농업의 경쟁력 향상을 기대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하면서 보호와 지원보다는 농민들의 자발적 노력과 시장 기능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대신에 농가소득은 직접지불제 확대를 통해 보전해 나가야 한다고 한다. 다른 하나는 농업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거듭나게 해야 한다는 시각이다. ICT, BT 산업과 접목하여 농업을 첨단산업으로 육성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농정은 이러한 2가지 상반된 시각 사이에서 분명한 입장을 제시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농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정책노력을 다하겠다고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농업의 경쟁력 확보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하면서 소득 보전을 위해 농가에다가 직접 금전소득을 지불하는 정책에 치중해야 한다고 한다. 엄연한 딜레마적 상황임에도 우리 농정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고 될 성싶지 않은 말을 되 내고 있다. 그러면서 농정에 대한 신뢰는 계속해서 허물어지고, 나아가 농정당국의 리더십은 크게 훼손되었다. 급기야는 농업을 둘러싼 다양한 집단들의 이해관계에 도리어 끌려 다니는 처지로 전락한 것은 아닐까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주도적이고 능동적인 차원에서 농정의 기본입장을 세우기가 점점 더 어려워져 가고, 이러한 과정이 악순환 되면서 우리 농정은 점차 본색을 잃어가고 있다. 농정이 어디로 가려는 것인지 그 좌표도 알 수 없고, 나침반도 없이 표류하고 있다.
우리 농정이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무기력하게 된 걸까? 혹자는 정부의 보조금이 시장 왜곡과 도덕적 해이를 불러 농업의 자생력을 해친 결과라고 한다. 어떻든 보조금에 기대어 안이하게 대처해온 그 동안의 관행이 빗은 결과임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때그때 보조금이란 당근에 기대어 문제의 본질을 가리고, 미봉책으로 덮는 등 그렇게 지내오면서 그 심각성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져버렸다. 이러다간 자칫 소리 없이 쓸려가 버릴지도 모른다는 위기감마저 든다.

이제라도 농정의 새판을 다시 짜야한다. 우리 농업의 미래 비젼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합리적인 농정의 밑그림을 새롭게 그려내야 한다. 비록 어렵더라도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
새 농정은 우리 농업을 있는 모습 그대로 드러내고, 직시하는 데서 첫걸음을 떼야 한다. 농업의 진실을 가리고 외면해서는 제대로 된 새로운 농정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불편하다고 눈감고, 어렵다고 피하고 돌아가서는 우리 농업의 미래를 기약할 수 없음은 자명하다. 보조금으로 연명하고 있는 허약하기 이를 데 없는 그런 모습이 우리 농업의 진솔한 얼굴이다. 이런 우리 농업의 현실이 잘 반영된 설득력 있고, 미래지향적인 새 농정의 청사진을 마련하는데 가능한 모든 지혜와 힘을 모아야할 때다. <협성대 교수>

필자약력
△한국농어촌유산학회 회장
△전)협성대 인문사회과학대학 학장
△전)국가균형발전위원회 신활력사업 자문위원
△전)한국농어촌공사 비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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