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은경 작가


월말이면 전라남도 영암으로 간다. 전에 화순에서 2년 살 때 만들게 된 모임에 참석하러 가는 것이다. 영암에는 애국지사인 –낭산-을 기리는 –낭산 김준연 기념관-이 있다. 가혹한 식민지배하에서 일제에 저항하였고 광복이 된 후엔 영암에서 5선 국회의원을 한 낭산이 나의 외조부이다. 일제 치하에서 감옥에 계신 것만 7년이 넘지만 손기정 선수 일장기 말소 사건 때 동아일보 주필을 하신 것으로 더 유명하다. 국회의원 시절, 동료 김대중 의원이 낭산의 국회 내 체포를 막기 위해 최장시간 필리버스터를 한 것이 당시 큰 화제였다.
-자식들 취직을 위해서라면 내게 표를 주지 마시오!- 이것이 당시 할아버지의 공약 아닌 공약이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를 찍은 분들의 자손인 영암의 군민들이 너무나 고마워서 식사를 대접하고 큰 절을 올린 적도 있다. 화순에서 돌아올 때 영암 분들과 –낭산을 사랑하는 모임-을 만들게 되었고 떠밀려 회장이 되었다. 한 달에 한 번 만나서 낭산의 저술을 읽고 이야기를 나눈다.
서울서 내려갈 때는 차라리 쉬웠다. KTX로 광주나 나주까지 가서 마중 나와 주는 낭사모 회원의 차를 타기만 하면 되었다. 이제 영천에서 영암까지 가는 것은 서울서 가는 것보다 복잡하다. 어떻게 가지? 지난번에는 대구까지 버스로 갔다. 이번엔 기차가 어떨까?
아침 7시에 마을 회관 앞에서 기다리니 아직 어둑한데다 뺨이 다 얼얼하다. 만주 벌판에서 독립운동을 하신 애국지사 분들은 더 추웠겠지?. 이 버스는 영천역 근처 영천 공설시장에 선다. 그 곳에서 내려 영천역까지 7분 걸어가서 7시 35분에 출발하는 동대구 행 무궁화호를 탄다. 이 기차는 30분 걸려 8시 5분에 동대구역에 도착한다. 그 곳에서 버스 터미널까지 연결 통로가 있다. 10분 걸려 버스 터미널에 도착, 8시 35분 출발하는 광주행 고속버스에 승차하면 안심! 오늘은 전라도의 다른 친구들도 만나기 때문에 출발이 이르다.
영천시 버스는 하루에 세 번 마을에 들어온다. 아침 7시와 11시. 오후 4시이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내가 그 버스를 타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젠 버스에 나를 맞추는 요령 정도는 터득하게 되었다. 세 번이나마 마을까지 들어오는 버스가 생광스럽기 짝이 없다. 시내버스에선 서울과 같은 교통카드를 쓰면 되고 기차와 고속버스의 예매는 스마트폰에 앱을 깔아 이용하면 된다. 기차는 KTX 앱과 SRT 앱을 별도로 설치해야 하고 버스는 –고속버스 모바일-이라는 앱을 설치해 이용하면 예매와 취소가 수월했다.
서울에서 살 땐 내가 시골에 내려가서 이렇게 느리게 살줄 몰랐다. 어차피 서울의 혼잡한 교통 상황으로 인해 지하철을 타든, 버스를 타든, 아니면 택시를 타든, 목적지에 당도하는 시간이 편도로 보통 한 시간이다. 그렇다면 두세 가지 일을 보고 집에 왔다면? 그로기 상태가 된다. 그렇다면 시골에서 사나 도시에서 사나 하루에 할 수 있는 일에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다. 시골에서 살면서 인터넷과 SNS를 이용하는 것은 도시와 다르지 않다. 좋은 점이라면 맑은 공기에 상쾌한 기분으로 시골집을 향해 귀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은 영암에서 자고 내일 돌아온다. 회원 중에 직장에 다니는 분들이 많으므로 저녁에 모임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오늘은 낭사모의 망년회가 아닌가? 애국지사를 추모하고 그 역사를 알려고 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 감사하고도 대견하다. 대한민국의 여러 곳에 그런 모임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오늘은 영천에서 영암행이고 내일은 영암에서 영천이라니 대한민국의 사통팔달도 모두 애국자들 덕분이 아닐까?
고마워요. 낭산 할아버지!
<작가>
조은경 약력
△2015 계간문예 소설부문 신인상 수상
△소설 '메리고라운드' '환산정' '유적의 거리' '아버지의 땅'등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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