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무 회장

정유년이 저물어갑니다. 420년 전 1597년 정유년은 임진왜란의 막바지에서 왜군이 다시 침공한 정유재란의 해였습니다. 그해 1월에 일본은 그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이순신 장군을 모함하여 삼도수군통제사에서 끌어내리고 6월에 원균이 이끌던 조선수군을 칠천량에서 궤멸시켰지요. 다시 복귀한 충무공이 9월에 울돌목에서 그 유명한 명량대첩을 거두었고 전세는 역전되었습니다.

역사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당시 이순신을 발탁했던 서애 유성룡은 임진왜란의 치욕과 수모를 겪은 조선의 실상을 ‘징비록’이라는 책으로 남겼습니다. ‘서경’에서 인용한 ‘징계해서 후환을 대비한다.’는 제목처럼 전쟁의 뼈아픈 기억과 조선이라는 나라의 한계와 대비책을 후손에게 남김으로써 실패와 과오를 반복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책은 1604년에 저술되었으나 외손자 조수익이 경상감사로 재직했던 1647년에 간행되었습니다. 1623년 인조반정, 1627년 정묘호란, 1636년 병자호란을 이미 겪고 난 뒤였지요. 이 책은 적국 일본에서도 1695년 숙종 21년에 목판본으로 출판되었습니다.

불행히도 조선은 그 후에도 유성룡의 뜻과는 달리 과거를 거울삼아 반성하고 혁신하지 못하여 300년 후에 청일전쟁을 거쳐 결국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는 치욕을 또다시 겪었습니다. ‘징비록’이 경계한 대로 조선이 임진왜란의 원인과 과정을 되새겨 철저하게 대비했더라면 역사는 분명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역사는 과거로부터 현재의 시점에서 미래로 나아갈 방향을 배울 수 있는 교훈입니다. 역사 속의 사건들과 역사를 만들고 지켜온 인물들의 기록, 그 경험과 교훈은 바로 현 시대의 고민이 되며 앞으로 걸어가야 할 미래의 기준이 됩니다. 역사를 올바르게 세우고 제대로 쓰지 않으면 반성도 할 수 없고 미래를 위한 혁신도 할 수 없는 법입니다. 올바른 역사가 갖는 의미가 오늘과 내일을 잇는 소리 없는 가르침이라는 점을 우리 모두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2007년에 송 복 교수가 저술한 ‘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 라는 책은 이 점을 강렬하게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송 교수는 2014년에 출판된 이 책의 개정판 서문에서 이렇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임진왜란의 끔찍한 경험을 하고도 ‘징비’하지 않은 우리에게 역사는 자비롭지 않았다. 병자호란, 청일전쟁, 러일전쟁 모두가 하나같이 우리의 지독한 급망증과 우리의 한심한 의존성에 기인하여 생겨난 것이었다.” “스스로 강해지지 않으면 통일된 미래도 우리 것이 아닐 것이다.” 참으로 뼈아픈 되새김이 아닐 수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어떤 역사를 겪었는가 못지않게 역사를 어떻게 쓰는가가 중요합니다. 왜곡도 변명도 없이 진실 되게 올바로 쓰이고 전해져야 합니다. 자랑스럽지 않다고 다르게 써서도, 부끄럽다고 지워서도 안 됩니다. 있는 사실 그대로 빠짐없이 올바르게 담고, 치우치지 않고 공정한 시각으로 쓰이도록 함께 지켜보고 토론하는 것이 지금을 사는 우리들의 의무라고 저는 감히 주장하고 싶습니다.<투데이코리아 회장>


필자 약력
△전)농림수산부 기획관리실장
△전)세계식량농업기구(FAO)한국협회 회장
△전)농어업농어촌 특별대책위원회 위원장
△전)한국농어촌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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