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용규 이사장



아직도 우리 기억에 생생한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1993. 12. 15)이 끝난 지 벌써 24년이나 지났다.
특히 농산물 시장 개방과 연관하여 국내외의 큰 파문을 가져왔던 UR협상은 대통령이 직접 쌀 시장개방을 지키지 못했다고 국민에게 사과하고, 총리, 장관의 교체로 이어지는 우리에게는 대형사건이었다.

밖으로는 구 GATT체제에서 거창하게 출범한 WTO(1995. 1. 1)체제도 22년이 지나고, 2001. 11. 도하에서 야심찬 새로운 라운드 즉 DDA(도하개발아젠다)를 시작한지 16년이 지난 지금까지 완전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이러다가는 WTO가 당초 출범 목표와는 달리 겨우 국가 간의 무역 분쟁이나 조정, 해결하는 기구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물론 가만히 있지만은 않고 열심히 새로운 라운드의 합의를 위한 노력을 기울인 것도 사실이다.

특히 우리농업계의 반대가 심했던 2003. 9. 칸쿤 각료회의, 2005. 12.의 홍콩 각료회의 이후 협상은 계속되었지만 진행이 지지부진하여 결국 점차 우리 시야와 관심에서 멀어져 가기 시작하여 지금은 그런 회의가 열리는 지도 잘 모르고 있는 실정이다.

그동안 WTO는 계속 협상의 동력을 늦추지 않으려고 움직이고는 있었다. 그러다가 2013년 라미 WTO 사무총장에 이어 새로 WTO 사무총장에 선임된 아제베도(Azevedo) 총장으로의 교체를 계기로 2013. 12. 각료회의(인도네시아의 발리)에서 일부 이슈(TRQ관리방안, 개도국 식량안보목적의 공공비축, 수출경쟁, 면화 등)에 어느 정도 합의(발리 패키지)가 이루어지고, 2015. 12. 각료회의(케냐의 나이로비)에서 수출경쟁(나이로비 패키지) 타결에 성공하였지만 그 결과는 겨우 WTO의 체면치레 정도인 셈이다.

그리고, 최근 개최된 제11차 각료회의(2017. 12. 10∼13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회담지속을 위한 결의안 채택도 합의하지 못한채 끝나고 말았다고 한다. 나는 이번 DDA협상은 과거 UR과 같이 일괄 타결의 협상결과를 내게 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그러면 왜 이번 DDA협상은 과거 케네디 라운드, TOKYO 라운드, UR과 같이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타결되지 못하는 것일까?
첫째, WTO의 의사결정방식 즉 만장일치의 일괄타결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들겠다. 과거에는 미국, EU 두 무역대국이 합의하면 나머지 국가들은 일부불만이 있더라도 마지못해 따라가는 방식 이어서 그런대로 합의를 이루었으나 이제는 문제제기를 끝까지 하는 국가들이 생기고, 특히, 중국, 인도, 브라질 같은 신흥 개도국들의 발언권이 높아져 쉽게 합의에 이르지 못한 점.

둘째는 다자협의가 복잡하고 어려우니까 미국, EU등 협상 주도 국가들이 합의 도출이 용이한 양자 간이나, 이해관계가 유사한 복수 국가 간 FTA를 선호하게 됨으로 두 무역대국이 다자협상에 적극적이지 않는 리더십의 부재, 특히 미국의 반대가 상당히 심한 것이 큰 원인이라 하겠다. 미국은 현재 진행 중인 DDA협상이 SSM(특별세이프가드제도), 개도국식량안보를 위한 보조금 설치 등 지나친 개도국 우대 위주로 가고 있어 이는 보조금 삭감과 규제완화라는 본래의 WTO의 목적과는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점을 들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는 여러 의제에서 선진국, 개도국간의 공동이익을 찾기 어려운 점 등을 들 수 있겠다. 그러나 앞으로 협상여하에 따라 발리나 나이로비 패키지와 같이 소규모 부분적 합의에 이를 가능성은 없지 않다고 본다.

우리 농업의 입장에서 보면 이미 대부분의 주요국(미국, EU, 중국, ASEAN 등)들과 FTA를 체결하여 이행하고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쌀을 제외한 모든 농산물 시장이 개방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최근 한•미 FTA 추가 협상에서 농산물이 포함될까를 걱정하는 농업인들의 반발이 거센 것도 결국은 속도 문제일 뿐이다.
그래도 WTO/DDA 협상이 소규모이든 일괄타결이든 일단 타결되면 우리 농업에 주는 영향은 아직도 적지 않다. 잊혀져간다고 잊기까지 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세계농정연구원 이사장>

필자약력
△전)농림부 국제농업국장 (WTO농업협상 수석대표)
△전)산림청 차장
△전)FAO한국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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