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기 편집인


30년 전 분위기가 이랬었나?
평창동계올림픽이 다가올수록 1988년 서울올림픽 취재현장의 기억을 자주 더듬게 된다. 정치적 압제가 극심하던 군사정권 시절에 유치해 1987년 6.29선언을 거쳐 민주주의가 제대로 자리잡아가던 전환기에 열린 서울올림픽. 그리고 박근혜 정부의 몰락으로 문재인 대통령 정부가 들어서 국민의 정치적 여망이 한창 부풀어 오르는 시기에 개최되는 평창올림픽.

외견상 두 대회의 개최 전 분위기가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30년 시차가 멀기는 하지만 국민들의 기대감이 고조되는 시기에 열린다는 점에서 우선 그러하다. 한편으로는 북한의 KAL기 폭파(1987년)와 북핵 및 미사일 위기 속에서 개최되는 무거운 여건도 느껴진다. 북한 김정은이 신년사를 통해 평창대회에 대표단 파견의지를 비쳐 대화국면이 조성되고 있으나 북핵 위기 사태의 근본에는 전혀 변화가 없다.

하지만 국민 대다수가 체감하는 올림픽 개최 직전의 열기는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서울올림픽은 집권과정에서 저지른 폭력과 만행으로 정통성에 위기를 느낀 전두환 정권이 국민을 회유하고 대외관계를 포장할 정치적 타산 속에 유치했다는 눈총을 받아왔다. 때문에 유치 초기에는 올림픽 개최를 달가워하지 않는 역작용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6.29선언 이후 민주화에 자신감을 얻은 국민의 호응에 힘입어 대회 열기는 후끈 달아올랐다. 1980년 모스크바대회와 84년 LA대회가 동.서 양진영의 대립 속에 반쪽 올림픽으로 전락하면서 12년만에 제대로 차려진 대회를 성대하게 치르자는 여론이 큰 흐름을 잡아나갔다.

그 결과 서울올림픽은 경제발전으로 다져온 한국의 위상을 대내외에 넉넉하게 보여주었다. 차량 2부제 운영에 국민이 적극 참여하면서 관심을 드높였고 원활한 대회 운영과 경제적 파급효과로 더욱 갈채를 받았다.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한국의 발전상이 공산국가들에게까지 널리 알려져 동구권의 벽을 허무는데 일조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대회를 계기로 한국의 대외 위상이 높아져 북방외교로 나아가는 지평을 열었다.

이에 비해 한 달 앞으로 다가온 평창올림픽의 분위기는 이렇다 할 변화 없이 전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입장권 판매가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지만 국민의 호응도는 크게 변화를 느끼기 힘들다. 물론 종목 수도 많고 스포츠의 인기 스타들이 몰려 있는 하계올림픽과 종목 수가 적고 경기도 생소한 동계올림픽을 직접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경기장의 위치나 추위 속에 경기를 치러야 하는 동계종목의 특성이 분위기 조성에 한계로 작용할 수 있다.

평창올림픽의 성공이 입장객 수나 경기장 관중석의 열기에만 달린 것이 아니다. 원활하고 안전한 대회운영이 필요하고 경기장과 숙박시설 등 편의시설도 제대로 돌아가야 한다. 무엇보다 국민적 성원이 있어야 따뜻한 손님맞이와 친절한 자원봉사도 돋보이게 된다. 국민적 성원은 이념적 대립이나 정파의 이해를 떠나 ‘한번 잘해보자’는 공감대가 이뤄질 때 가능하고 이러한 성공이 자신감의 고취로 이어진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올림픽이 코앞에 다가왔어도 정치권은 분열과 대립을 조장하는 일에 몰두해 있다. 눈만 뜨면 ‘적폐청산이다’ ‘정치적 보복이다’ 싸움박질이 벌어지고 언론까지 보수-진보의 진영논리에서 한 치도 나아가지 못하는 형세다. 정부는 한편으로는 대회 성공을 위한 국민 성원을 촉구하면서도 다른 한쪽으로는 전 정권의 비리 들추기에 여념이 없다.

북한 김정은이 선수들을 포함한 대표단 파견을 언급한 이후 남쪽의 대립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북한 선수단만 참가하면 모든 게 풀릴 것이라는 과도한 집착에 정치 색이 덧칠해져 남남 대립을 격화시킨다. 올림픽은 제쳐놓고 정치적 수사와 낯 뜨거운 막말, 그리고 충돌이 교차하는 모습이다.

이제라도 정부부터 대회 성공을 위해 행정력을 집중해 국민여론을 환기해야 한다. 별 기대는 하지 않겠지만 정치권도 최소한의 자제력을 발휘해주었으면 한다. 북한 선수단 참가는 좀 차분하게 판단해 너무 들뜨지 말 것을 주문한다. 큰 잔치를 벌여놓고 여러 빈객들이 참석해주고 특히 관계가 소원했거나 거칠었던 손님까지 와준다면 더욱 반길 일이다. 그렇다고 그 손님만 바라보고 너무 호들갑을 떨면 잔치 분위기가 이상해진다. 잔치가 시끄러워지면 손님 보내고 난 뒤 집안싸움이 더 심해지게 된다. <투데이코리아 편집인>

필자약력
△전)국민일보 논설실장,발행인 겸 대표이사
△전)한국신문협회 이사(2013년)
△전)한국신문상 심사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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