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채 주필


올해 1인당 국민소득이 대망의 3만 달러를 넘어서 선진국 대열에 합류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우리 경제가 당초 목표대로 올해 3% 성장을 달성하고 원화 가치가 지금보다 크게 하락해 평균환율이 달러당 1140원을 넘어서지 않는 한 3만 달러 달성이 무난하다.
1인당 국민소득은 한 나라의 국민 생활수준을 가늠하는 지표로, 명확한 기준은 없으나 3천 달러 미만은 후진국, 3천~ 3만 달러는 개발도상국, 3만 달러가 넘으면 선진국으로 분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히 ‘소득 3만 달러’는 소비 패턴과 생활 방식이 달라지는 경계선으로 인식된다.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으면 골프를, 3만 달러를 넘으면 승마를, 4만 달러를 넘으면 요트를 즐긴다는 이야기가 회자되기도 한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국민소득(2016년 기준)이 3만 달러를 넘는 국가는 190개국 중 27개에 불과하다. 그 중에서도 인구 1천만 명 이상 국가는 10개국에 그치고, 인구가 5000만 명이 넘어 이른바 ‘30-50 클럽’에 속한 국가는 미국,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6개국뿐이다. 세계를 주름잡고 있는 큰 나라인 중국과 러시아도 3만 달러에 못 미친다. 한국이 올해 3만 달러를 넘으면 이 클럽에 합류하는 7번째 국가가 된다. 휴전협정을 체결했던 1953년 67달러였던 것과 비교하면 실로 기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하지만 소득 3만달러는 물질적으로 잘 사는 나라와 못 사는 나라를 구분하는 기준일 뿐 이 기준을 넘었다고 해서 명실상부하게 선진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경제력에 걸맞은 비경제적 요소가 어우러져야 한다. 정치, 사회, 문화적 환경에다 복지와 의료수준, 개인의 생활 안정, 남녀평등, 언론의 자유, 기술 경쟁력 등 여러 요소들이 종합적으로 적용된다.

한국은 경제와 무역규모 등에서는 개도국 수준을 넘어섰다 하겠으나 비경제적 분야에서는 아직 개도국 수준에 머물러 있다. 공직자의 부정부패와 전관예우, 후진국형 사건.사고 빈발, 무전유죄 유전무죄, 재벌과 권력층의 갑질, 개인주의의 만연 등 도처에 후진적인 요소가 널려있어 아직 갈길이 멀다.

3만 달러란 수치도 경기나 환율 변동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수 있다. 스페인과 그리스가 선진국 대열에 올라섰다가 세계금융위기 이후 3만달러 아래로 떨어져 아직까지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도 국내외 경제위기 때마다 환율 급등으로 1인당 국민소득이 폭락한 쓰라린 과거를 갖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로 인해 1만2059달러였던 국민소득이 1998년 7989달러로 폭락했었고 2006년에는 역사상 최초로 2만 달러를 넘었지만, 미국발 금융위기로 2009년 다시 1만 달러대로 하락했다. 이후 다시 올라섰지만 무려 11년간 2만달러 선에 머물러 왔다.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에는 국민의 삶의 질도 나아져야 한다. 경제지표 호조가 국민 개개인의 삶의 질에 반영돼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양극화 심화로 서민의 살림살이는 1만달러 수준에 머물러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PEC)가 지난해 38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삶의 질 순위를 보더라도 한국은 29위로 하위권에 속해있다. 2012년 24위이던 것이 2016년 28위, 지난해 29위로 오히려 뒷걸음질 치고 있다.

정부는 “올해 국정의 최우선 목표를 국민의 삶의 질 개선으로 삼고 국민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변화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는 '나라가 달라지니 내 삶도 좋아지는구나'라고 느끼도록 정부의 모든 역량을 쏟아 부으려고 한다. 특히 좋은 일자리 창출과 격차 해소에 주력해 양극화 해소의 큰 전환점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결코 손쉬운 과제가 아니다. 우리 경제는 잠재성장률이 3% 밑으로 떨어져 체질이 무척 약해져 있다. 그동안 우리 경제를 견인해온 주력 제조업도 중국 등 경쟁국의 추격으로 흔들리고 있다. 게다가 보호무역주의 파고와 고유가, 고금리, 원화 강세, 북한리스크, 과다한 가계부채, 반도체 위주의 편중 성장, 생산가능인구 감소, 일자리 정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등 숱한 대내외 장애물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3만 달러라는 숫자에 도취되거나 재정을 통한 돈풀기 등 손쉬운 정책 수단만을 선호하다가는 일을 그르치기 십상이다. 경제란 결코 목표 설정이나 구호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익집단의 반발을 무마하면서 난국을 헤쳐나가는 강한 추진력과 고도의 정치력만이 성공을 가져다 줄 것이다. <투데이코리아 주필>

필자약력
△전)연합뉴스 경제부장, 논설위원실장
△전)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
△전)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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