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은경 작가


농촌의 겨울 해는 짧다. 도시라면 불빛이 하나씩 둘씩 켜지는 저녁을 하루의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없을 테지만 농촌에서는 해가 서편으로 기웃해지기가 무섭게 벌써 하루를 마감하는 마음이 바빠진다. 캄캄해지기 전에 저녁 식사 준비를 끝내고는 문단속을 하고 나서 저녁 식사들을 한다. 이제 더 이상 나갈 일이 없고 찾아올 손님도 없기 때문이다. 저녁 식사를 간소하게 끝내고 나면 이미 바깥은 칠흑처럼 어두워져 있다.

내가 시골에 처음 내려왔다면 분명 무서워했을지 모른다. 서울에 도로 올라가 살겠다고 짐 싸들고 가려고 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행히도 3년 전 남편의 직장 때문에 전라도 능주에서 2년 살아본 경험이 있다. 그 때 자동차 운전을 하고 다녔는데 주변 광주나 나주 혁신 도시 친구들과 저녁 모임을 가진 후 돌아올 때면 능주 집까지의 찻길은 가로등도 없이, 다른 차도 거의 없이, 다만 까말 뿐이었다. 이곳에 내려와서는 다행이랄까. 집으로 들어오는 5분 정도의 마을 안길만 어두울 뿐 큰 길에는 밤이라도 차량이 많다. 하지만 어두울 때 집 밖으로 내가 운전해 나가본 적은 없다. 주변 중소도시에 사는 친구를 사귈 기회도 아직 없다. 설령 그런 모임이 있다고 해도 저녁에 만나는 경우라면 내가 출석하는 일은 거의 없을 것 같다. 밤이 되면 사위가 새까맣고, 가로등 한두 개가 길을 밝힐 뿐인 시골의 정적을 거스른 채 자동차 소리를 내며 들어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해가 지면 다음날의 아침 해가 떠오르기만을 기다리는 시골 사람이 되어버렸나 보다.

하지만 그런 변화가 싫지만은 않다. 아직도 캄캄한 어둠에 익숙하진 않지만, 가끔 무섭기도 하지만, 자연의 변화에 나를 맡기는 생활이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생각되기 시작했다. 대신 긴 밤을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보낸다. 거실에 나란히 놓여있는 컴퓨터 앞에서 남편과 함께 앉아 글을 쓰거나 소파에 앉아 책을 보거나 안방에 들어가서 TV를 본다. 아니면 서로가 다른 일을 하기도 한다. 2018년 새 해를 보낼 계획으로 꽉 찬 머리를 가슴으로 풀어 내리느라 와인 한두 잔을 마시기도 한다.

아침에는 태양보다 조금 일찍 자리에서 눈을 떠야 한다. 그래야 동녘 창으로 스며 들어오는 어슴프레한 유년의 아침 햇살을 영접할 수 있다. 밤새 기다렸던 햇님이다. 나의 오늘 하루을 책임져 줄 햇님이다. 지구의 모든 생물체들이 기다렸던 햇님이다. 도시에서는 존재를 그리 크게 느끼지 못했던 햇님이다. 오늘이라는 이름을 가진 햇님이 성장하고 소멸하는 그 시간을 내가 즐기고 울고 웃으면서 같이 보낼 예정이다.

해가 조금 더 올라오자 스피커에서 20여호 마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공지사항이 울려퍼진다.

-오늘은 정갑순 여사의 팔순이니 회원 여러 분들께서는 11시 30분까지 회관 앞으로 나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농촌 지역에서는 마을에 알릴 일이 있으면 하루 전부터 아침저녁 두 차례씩 방송을 한다. 아! 어제 만난 가래실댁의 성함이 정갑순이구나. 여자가 보통 친정집의 택호로 불리는 이 곳 경상도에서 나는 서울댁이다.

“내일 점심 먹으러 가는데 서울댁도 꼭 나올 거지?”

-아! 그게 생신 잔치 말씀이었구나.-
아침, 집을 치운 후에 나는 예쁘게 공들여 치장을 한다. 할머니들과 꼭 같은 방향으로 목도리도 맨다. 서울서 사온 고운 색깔 봉투에 축의금도 넣는다. 이렇게 시골 사람이 되어간다. 햇님만 바라보다 목에 주름이 깊이 패이는 할머니가 되어간다. 그래도 햇님이 좋다.

햇님! 평생을 기다렸어요!
<작가>
조은경 약력
△2015 계간문예 소설부문 신인상 수상
△소설 '메리고라운드' '환산정' '유적의 거리' '아버지의 땅'등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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