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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순직 주간
대선이나 총선 때 단골 메뉴중 하나가 재래시장에 나타나는 정치인이다. 상인들과 악수도 하며 콩나물도 사고 설렁탕도 먹는다. 선거만 끝나면 그들은 꼬리를 감춘다. 대통령이 중국 국빈 방문 중 현지 대중음식점에서 식사했다는 뉴스는 봤어도 남대문시장 가셨다는 얘긴 못들었다. 야당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정치지도자나 정책당국자들이 현장에 가보지 않아도 현장 실정을 잘 알아서 그러는지는 모르겠으나 정작 정책들이 현장과 엇박자를 내는 경우가 잦다보니 현장을 잘 아는 것 같지가 않다.그런 의미에서 청와대 정책실장이 최근 시장을 찾아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영세 자영업자들의 목소리를 듣는다거나, 대통령이 중소기업인들을 청와대로 불러 의견을 들었다는 소식은 반갑다. 그런 이벤트들이 이른바 쇼통에 그치지 않고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특히 그런 행사를 통하여 정책의 부작용이나 미비점을 파악, 수정 또는 보완하기보다 설득과 홍보에 치중하려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정당이나 정치 지도자가 선거를 통해 집권에 성공하면 자신들이 갖고 있는 이념과 철학을 구현하려는 시도는 당연하다. 정치인의 본령이기도 하다. 그런데 문제는 정교하게 설계되지 않은 정책을 덜컥 시행하면서 발생하는 시행착오다. 국민들의 생계와 직결되는, 특히 서민생활과 긴밀한 정책일수록 파장은 커지고 반발 또한 거세질 수밖에 없다.정권이 바뀌면 많은 정책의 방향이 수정되거나 심하면 폐기되기도 한다. 그 와중에서 혼란과 피해를 감내해야 하는 건 국민이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성향이 비슷하면 그 변화 폭이 작지만, 이번처럼 심한 보수에서 심한 진보 쪽으로 정권이 넘어가다 보니 혼란이 어느 때보다 더 심해 보인다.문재인정부를 구성하는 내각과 비서실 진용의 성향이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지적과 함께 숫적으로도 압도적이어서 내부 조절기능이 약한 게 아니냐는 우려가 많다. 일사분란하게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하는 효율성은 있을지 모르나 복잡다기한 현대사회의 현안들을 두부모 자르듯 처리하기에는 어려움이 적지 않으리라 생각된다.여기에다 이 정부 핵심 요직에는 운동권이나 노동운동 시민운동 출신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그들이 과거 군사정부 시절 민주화에 기여했고, 또 불합리한 경제체제에 맞서 싸워온 시민운동 노동운동가들의 공적을 우리가 폄하해선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우려를 도외시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누구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확신한다. 사실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실례들도 국민들은 많이 보았다. 도덕적 우월주의자들이 자칫 자신들과 이념과 철학이 다른 사람을 무시하거나 죄악시하는 도그마에 빠지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다수의 정책에서 그런 낌새를 보인 것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최고지도자나 고위 당국자들이 ‘이상적’인 정책과 관련, 견해를 피력하면 하부 관료들은 아예 입을 다물어 버린다. 밤새워 토론하고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며 현장감을 반영하는 정책 입안이 오늘 저녁에도 정부청사에서 이뤄지고 있는지 의문이다.정교하지 못한 정책의 시행착오 몇 가지만 보자. 유치원과 어린이집 방과 후 영어수업 금지 방침이 발표되고 3주 동안 시끌벅적 법석을 떨다가 방침을 바꿔 원점에서 다시 검토하기로 접었다. 가상화폐 비트코인 문제도 법무장관이 시장을 폐쇄한다고 말했다가 금새 청와대가 나서 정부 방침이 아니라고 부인한다. 이 정부의 장관 발표를 정부 뜻이 아니라고 하면 국민들은 정부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지 헷갈린다. 사드 문제도 대선 때와 달리 집권 후엔 슬그머니 바꿨다. 한일 위안부 문제만 해도 양국 외교관계만 꼬이게 만들었지 무슨 소득이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사 중단 문제만 해도 공론화다 뭐다 해서 몇 달을 끌다 비용만 잔뜩 안은 채 없었던 일이 되지 않았던가.오죽했으면 국무총리가 유아 영어 수업과 관련한 최초 안건을 보고 우려를 많이 했었다며 “찬반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문제는 속도를 줄이는 게 낫다”고 말했겠는가. 지극히 당연한 얘기를 총리가 강조하는 현실이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사실 최저임금 인상만 해도 정부 당국자나 노동지도자, 심지어 최저임금위원회의 일부 위원까지도 폭과 속도의 조절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고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정부는 궤도수정이나 보완보다는 정부의 금고를 열어 막대한 재정으로 땜질처방하고 카드수수료 인하나 상가 임대료 인하 등의 보완책으로 강행한다는 방침이다. 70%를 상회하는 국민지지를 받는 정부라면 좀 더 과감하게 실책을 인정, 보완하는 용기를 낼법한데 그렇지가 않아 보인다.최저임금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편의점 점주와 알바생들의 고충을 살피려면 대통령 부인이라도 좋고 장관 부인이라도 좋다. 편의점주와 일주일만 함께 일해보면서 현장에서 실정을 파악해봄직 하다. 현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볼멘 소리를 외면할 것이 아니라 대통령도 장관도 국회의원도 초저녁부터 썰렁한 먹자골목 설렁탕집 순대국집에 가셔서 현장을 살피시기 바란다. 현장에 답이 있다. <투데이코리아 논설주간>필자약력△동아일보 경제부장, 논설위원△재정경제부 금융발전심의위원
[권순직 논설주간 ksjik8920@today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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