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무 회장


1979년 1월 하순, 설 전날에 저는 ‘유럽 농업정책 조사단’의 일원으로 브뤼셀 EC 본부와 네덜란드, 덴마크에 3주일간 출장을 갔었습니다. 당시 박 정희 대통령의 특별지시에 의해 수행되었던 이 조사단의 활동과 그 보고서에 근거한 우리 농정에의 접목 시도는 한국 농정 사상 한 획을 긋는 일대 사건이었다고 평가됩니다. 제가 농수산부 농특기획과장 재직 중 잠시 채소과장을 겸직하기도 했었던 그 전해 1978년은 참으로 힘든 해였습니다. 냉장고 보급이 전 가정으로 확산되면서 여름 김치 수요가 폭발한 때에 닥친 고추 흉작과 고랭지 배추의 공급부족으로 인해 벌어졌던 그해 여름의 소위 ‘금치’파동과, 반대로 갑작스런 공급과잉으로 인한 가을 김장배추의 가격폭락사태는 정말 악몽과 같았습니다. 박 대통령께서 농수산물의 수급과 가격을 안정시키는 대책이 유럽에 있다는 얘기를 들으시고 귀가 번쩍 뜨이셨으리라 가히 짐작이 갑니다. 유럽 농업정책 조사단은 이런 배경으로 그해 5월에 한 차례 더, 합해서 두 달이 넘는 장기해외출장에 나서게 되었던 것입니다.

조사단 구성은 당시 농수산부 이 병기 농업경제국장이 직접 단장을 맡았고 저와 최 용규 유통통계담당관, 농촌경제연구원 허 신행 박사, 농어촌개발공사 식품연구소 김 정옥 박사, 김 선오 사무관이 동행, 브뤼셀 주재 농무관 박 상우 박사가 현지 안내를 담당하였습니다. 이 조사단을 기획했던 조 일호 농업경제과장이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하게 되어 해외 장기출장이 어렵게 되자 제가 그 대신 차출되어 동참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2차 출장 때에는 이 국장 대신 최 용규 과장이 단장, 이 정일 전산처리관 추가, 김 선오 대신 김 상옥 사무관이 합류, 모두 일곱 명이 한달 반 동안 함께 다녔습니다. 이번에는 룩셈부르크 EC 전산센터와 벨기에, 스웨덴, 서독, 프랑스가 추가되었고 귀국 길에 일본을 들렀습니다.

이 조사단의 주 임무는 농산물의 수급, 가격 및 유통정보 전산화에 관한 유럽의 정책과 제도를 조사하는데 있었습니다. 따라서 주요 방문기관도 브뤼셀 EC 본부의 담당부서와 룩셈부르크 전산센터, 각국의 농무부를 비롯하여 농업경제연구소, 식품위생국, 마케팅 보드, 시장 규제기구, 중앙통계국, 컴퓨터 센터, 농협, 농축수산물 도매시장, 소비조합, 농축산물 냉장·가공·수출 회사, 대도시 도매시장, 포장·집배 센터, 대학, 연구소, 기타 관련기관 등등 이 분야에 관한 모든 기관이 망라되었습니다. 주요 조사항목은 농정 기조와 수급조절 시스템, 통계정보 시스템, 가격정책과 유통체계, 이를 위한 재원 조달과 행정 및 지원체계 등이었는데 대통령께 보고할 마무리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뜻밖의 10·26으로 인해 모든 것이 중단되는 불행한 사태가 일어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당시 정책 건의의 핵심이었던 유럽식 목표가격과 수입과징금에 의한 체계적인 수입관리 시스템과 이를 재원으로 하는 농업구조개선 사업의 시행 등이 실현되지 못한 것은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안타깝고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박 대통령께서 살아계셨더라면 반드시 이 건의를 수용하셨을 것으로 저는 지금도 확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보고서의 내용은 이후 관련 부서의 정책 수립과 연구기관의 농정 연구에 귀중한 참고 자료로 활용되었고, 따라서 우리 농정 발전에 상당한 기여를 하였다고 생각됩니다. 특히 전산정보 시스템은 이 출장 보고서를 토대로 해서 EC 전산센터 ‘크로노스’ 시스템을 모델로 큰 진전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시스템은 이후 정부 내에서 가장 앞선 전산정보망이 되었을 뿐 아니라 당시 일본 농업유통정보 시스템보다 한 세대 앞선 온·라인 농정 정보망을 구축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보람 있고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었던 이 조사단 활동에 동참했던 것을 제 농정 인생의 최대의 행운이라 여기며, 함께 노력해 주셨던 많은 분들에게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투데이코리아 회장>

필자 약력
△전)농림수산부 기획관리실장
△전)세계식량농업기구(FAO)한국협회 회장
△전)농어업농어촌 특별대책위원회 위원장
△전)한국농어촌공사 사장
저작권자 © 투데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