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병기 가야금 명인이 지난 1월 31일 세상을 떠났다.

[투데이코리아=최한결 기자] ‘가야금 명인’ 황병기 선생이 지난 1월 31일 별세했다. 향년 82세.
고인은 지난해 12월 뇌졸중 치료를 받던 중 합병증으로 폐렴이 오면서 세상을 떠났다.

황병기 선생은 가야금에 평생을 보낸 국악 명인이었다. 창작 가야금 음악의 창시자이자 독보적 존재로 현대 국악의 영역을 새롭게 쓴 거장이다. 1936년 서울에서 태어나 중3시절 친구의 권유로 접한 가야금에 빠져 이후 단 하루도 가야금을 놓은 적이 없었을 정도로 매진했다.

고인은 가야금을 정말 사랑했지만 대학은 서울대 법학과로 갔다. 당시 국악과가 없어 학교에서 체계적으로 배우는 것이 힘든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서울대 국악과가 개설되자 학생들을 가르쳤고 1974년부터 2001년까지는 이화여대 한국음악과에서 교편을 잡았다. 1994년 ‘국악의 해’ 조직위원장, 1996년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음악대표, 2006년부터 2011년까지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 2012년 백남준문화재단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 황병기 가야금 명인. (사진=롯데콘서트홀)

그는 교육뿐 아니라 연주 활동도 활발하게 펼쳤다.

1964년 국립국악원의 첫 해외 공연이었던 일본 공연에서 가야금 독주자로 참가했고 1986년 뉴욕의 카네기홀에서 가야금 독주회를 열기도 했다. 1990년에는 평양에서 가야금을 연주했다.

대표작으로는 ‘미궁' '침향무', '비단길', '춘설', '밤의 소리' 등이 있다. SBS드라마 '여인천하'(2001)에서 사용된 가야금 독주곡 '정난정'을 작곡하기도 했다.

선생의 가야금 선율은 때로는 파격적인데 '미궁'이 그 대표적이다. 가야금을 첼로 활과 술대(거문고 연주막대) 등으로 두드리듯 연주하며 사람의 웃음소리와 울음소리를 표현하고 절규하는 사람의 목소리까지 들어간 이 곡은 1975년 명동극장 초연 당시 한 여성 관객이 무섭다며 소리 지르고 공연장 밖으로 뛰어나가는 해프닝까지 있었을 정도.


작년 신작 가곡 '광화문'을 발표하는 등 최근까지도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2004년 호암상, 2006년 대한민국 예술원상, 2008년 일맥문화대상, 2010년 후쿠오카 아시아 문화상을 수상했으며, 2003년에는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김희선 국립국악원 국악연구실장은 "황병기 선생님은 창작국악의 길과 국악의 세계화를 열어주셨다"면서 "국악계에서 남이 가지 않은 길을 여는 개척자의 역할을 하셨다. 특히 전통 안에만 남아 있던 국악을 동시대 예술로 승화시킨 예술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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