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무 회장

우리 말 가운데 ‘기(氣’)가 들어간 말이 얼마나 많을까요? 우선 기가 막히다. 기가 차다. 기가 세다 또는 약하다. 기가 살다 또는 죽다, 기가 꺾이다, 기가 질리다, 기를 펴다, 천기, 지기, 바람기, 시장기, 숫기, 감기, 생기, 원기, 활기, 화기, 사기, 혈기, 용기, 패기, 재기, 총기, 인기에다 양기, 음기, 온기, 냉기, 요기, 귀기, 살기, 분위기, 객기, 광기, 오기, 의기소침, 호연지기까지... 참 많지요. 또 기운, 기분, 기력, 기색, 기개, 기고만장, 기골, 기급, 기껏, 기미, 기백, 기절, 기진맥진, 기세, 기풍, 기합 등 ‘기’자가 앞에 들어간 단어도 무척 많습니다. 문득 옛날 대학시절 제가 고향에 계시던 할아버지께 문안 편지 드릴 때 정형적으로 쓰던 ‘기’자로 시작되는 첫 문구도 생각나네요. “기체후(氣體候) 일향만강(一向萬康) 하옵신지 복모구구(伏慕區區) 무임하성지지(無任下誠至之)로소이다.” ‘기력과 신체가 늘 건강하신지 엎드려 그리움이 저의 성심을 맡길 데가 없을 지경입니다.’라고 번역되는 문구이지요. 이렇게 ‘기’가 들어간 우리말은 정말로 많습니다.

‘기’는 동양철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본 개념의 하나입니다. 성리학에서 ‘기(氣)’와 ‘리(理)’를 놓고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이냐 이기이원설(理氣二元說)이냐? 논쟁이 대단했었다고 하지요. 저는 ‘기’는 ‘우주와 생명의 근원이 되는 에너지’라고 해석합니다. 물론 ‘기’가 반드시 생명체 안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주 만물에 깃들어있는 일체가 ‘기’에서 비롯된 것일 테니까요. 반면에 ‘리’는 ‘우주와 생명의 기본질서 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둘이 하나인지 둘인지는 보는 시각의 차이에서 생기겠지요. 이 개념을 도교에서는 ‘도(道)’, 불교에서는 ‘불(佛)’이라고, ‘기와 리를 통합한 개념’을 제시하지 않았나? 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즉 ‘기와 리’는 ‘통합된 일체의 양면’이 아닐까 하는 것이지요.

사람의 몸속에서도 기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답니다. 기원 전 3천년 경 중국의 ‘황제내경(黃帝內經)’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 동양의학의 기본개념 중의 하나가 ‘기 순환’이라고 생각됩니다. 인체 내의 생명 에너지인 기가 몸 전체를 구석구석 순조롭게 순환하면서 음기와 양기가 균형을 이루면 건강하고, 기가 막히거나 허하여 불균형이 발생하면 병이 생긴다는 것이지요. 놀랍게도 의학 전문가가 아닌 서애 유성룡이 1600년에 편찬했다고 알려진 ‘침구요결(鍼灸要訣)’이라는 의학서에 기 순환에 관한 자세한 설명이 그림과 함께 기록되어 있답니다. 기맥(氣脈)과 경락(經絡), 혈(穴) 등이 기 순환의 통로라고 하지요. 대체로 머리 꼭대기 정수리에 있는 ‘백회혈(百會穴)’로 기가 들어와서 발바닥의 가운데에 있는 ‘용천혈(湧泉穴)’로 나가기까지 온몸의 기맥을 통해 기가 순환한다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기 순환이 순조롭지 못하게 될 때에 원인을 찾아내어 막힌 데를 뚫어주고 허한 곳을 도와주게 하는 치료법이 바로 ‘침과 뜸’이라는 설명입니다.

우리 몸이 스스로 기 순환을 주도하는 것이 ‘숨쉬기’라고 생각됩니다. 내쉬는 숨이 호(呼), 들이쉬는 숨이 흡(吸), 합쳐서 ‘호흡’이 되지요. 숨을 쉬는 한 살아있고, 들이쉬는 숨이 넘어가버리거나 내쉬는 숨이 끊어지면 완전히 숨이 멎어 죽는 것입니다. 죽음을 뜻하는 우리말에 ‘숨이 넘어가다’ 또는 ‘숨이 끊어지다’라는 표현이 바로 그것이지요. 숨쉬기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우리 몸의 기 순환을 통해 생사가 좌우된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즉 들이쉬는 숨이 넘어가지 않게 하고 내쉬는 숨이 끊어지지 않게 하면 생명이 유지된다고 할까요. 마치 공기를 의식하지 않았던 것처럼 평소에 숨쉬기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던 보통 사람들이 요즘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미세먼지로 인한 호흡기 질환에 대해 어느 때보다 심각하게 대응하게 된 것입니다. 저는 그 못지않게 숨쉬기에 대해서도 좀 더 신경을 써야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투데이코리아 회장>

필자 약력
△전)농림수산부 기획관리실장
△전)세계식량농업기구(FAO)한국협회 회장
△전)농어업농어촌 특별대책위원회 위원장
△전)한국농어촌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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