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용 앞서 ‘식용’으로 먼저 길들여진 馬… 농식품부, 말고기산업 육성 강화 추진

▲ 나담(Naadam)축제에서 과거 유라시아 대륙을 정복한 몽골제국의 영광을 재현하고 있는 배우들.


[투데이코리아=오주한 기자] ‘말(馬)’. 소, 양, 개, 돼지 등과 함께 십이지(十二支)를 구성하는 동물로도 우리에게 친숙한 말이 이제 ‘탈 것’에서 ‘식재료’로서 국내에서 재조명받고 있다.


정부는 지난 2012년부터 ‘말산업 육성 종합계획’을 시행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새해 첫 날인 지난달 1일 2차 종합계획을 발표하고 이를 한층 강화하기로 결정했다.


‘말산업 육성을 통한 국민 삶의 질 향상, 농어촌 경제 활성화’를 모토로 4대 분야 18개 과제 추진을 명시한 2차 종합계획에는 ‘말고기’도 포함됐다. 농식품부는 2021년까지 축산법 개정을 통해 말이용업을 축산업종에 포함시키고 전국 말에 대한 종합적 방역체계를 구축하는 한편 말고기 생산·유통 기반 조성, 수출시장 개척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일부 매니아들을 제외하고서는 생소할 수도 있는 말고기. 하지만 몽골제국 등을 다룬 해외드라마를 통해서는 누구에게나 친숙한 말고기. 본 기획에서는 말의 역사와 식용 현황, 그리고 국내에서의 향후 시장전망에 대해 알아본다.


▲ 스페인 야생마 축제인 ‘라파 다스 베스타스(Rapa Das Bestas)’에서 다투고 있는 야생마들.


食에서 農으로, 그리고 軍으로


말은 흔히 중장갑을 갖춘 채 장창을 들고 돌격하는 기사(騎士)나 귀족의 마차를 끄는 이미지로 친숙하지만 실상 말이 ‘탈 것’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하기 시작한 역사는 ‘식용’으로 쓰이기 시작한 역사보다 짧다.


말은 기원전 5000년 전후에 우크라이나 평원에서 처음 가축화됐다는 게 통설이다.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애초부터 말은 여타 다른 가축처럼 식용을 목적으로 길들여졌다.


육식동물처럼 사납지 않으면서 체격도 적당해 몇 명만 들러붙으면 인간의 근력으로 충분히 제압할 수 있어 식용가축으로 삼기 이상적이었음이 틀림없다. 지금도 미국 남부 텍사스주(州) 등에서는 몇몇 카우보이가 밧줄 등 간단한 도구만으로 야생마를 쓰러뜨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말은 이후 식용뿐만 아니라 의외로 밭을 가는 용도로도 쓰였다. 날렵하고 세련된 말의 이미지를 떠올리면 납득하기 어렵지만 말은 소에 비해 순발력이 우수할 뿐만 아니라 일부 종(種)의 경우 소 이상으로 체격이 크다. 현존하는 아르덴(Ardennes)종의 경우 무게만 해도 1톤에 달한다. 다만 소에 비해 골격이 약해 농업자산으로서의 가치는 점차 사라져갔다.


말이 군사자산으로 평가받기 시작한 건 한참 지난 후였다. 기원전 800년경 중앙아시아 등에서 안장이 등장하고 이후 등자(鐙子)가 탄생하면서 말은 명실상부한 전장의 왕자로 활약했다. 안장은 기사의 육체적 피로감을 덜어줬으며, 안장에 달린 발 받침대인 등자는 기사가 말 등 위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게 해 창·활·검 등 다양한 병장기를 자유자재로 다루게끔 했다.


냉병기의 시대가 저물고 화기(火器)가 등장한 이후에도 말은 전장에서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해 6.25때만 해도 레클리스(Reckless)라는 이름의 군마가 맹활약했다. 레클리스는 미국 해병대 소속으로 수많은 탄약과 부상병을 실어날라 1959년 동물로서는 최초로 하사 계급을 수여받기도 했다.


▲ 백마(白馬)를 탄 나폴레옹을 묘사한 작품 ‘알프스 산맥을 넘는 나폴레옹(Napoleon Crossing the Alps)’.


戰場의 비상식량, 말고기


이처럼 말은 전쟁을 상징하는 존재가 됐지만 그렇다고 해서 식용의 기능을 완전히 잃은 건 아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전쟁에서 병참(兵站)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18세기말~19세기초 유럽을 정복한 나폴레옹(Napoleon Bonaparte)이 괜히 “군대는 먹어야 전진한다”고 말한 게 아니다.


전사(戰史)에서 병참이 끊겨 패배한 사례는 무수히 많다. 구(舊) 일본군만 해도 멀게는 임진왜란에서 이순신 장군의 맹활약으로 해상보급로가 끊겨서, 가깝게는 태평양전쟁 도중 임팔작전·사이판전투 등에서 마찬가지로 보급이 끊겨 싸우기는 커녕 집단아사(餓死) 상황까지 몰려 심지어는 카니발리즘(Cannibalism. 식인)을 하기까지 했다.


현지에서 군수물자를 조달할 수 있지만 적이 후퇴하면서 모든 물자를 불태워 없애는 청야전술(淸野戰術)로 나오면 불가능해진다. 야생과일 채집이나 동물사냥 등으로 충당할 수도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수천~수십만명에 달하는 병력을 매 끼니마다 배불리 챙겨 먹일 수 없다. 게다가 식량을 모으기 위해 병사들이 뿔뿔이 흩어진 사이 적이 공격해오면 그대로 대패한다.


이같은 최악의 상황에서 말은 군대를 보존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많은 전쟁기록에서 궁지에 몰린 군대가 군마를 잡아 굶주림을 일시적이나마 해결하고 퇴각이나 반격에 성공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말이 넘쳐난 몽골 등 유목민족들에게 말고기는 비상사태에 먹는 특식이 아닌 주식(主食)에 가까웠다. 이들은 전장에 나가서도 병사 한명 당 수 마리의 말을 끌고 다녔다. 지금도 몽골, 카자흐스탄 등에서는 말고기를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말고기 섭취 문화가 퍼져나가기 시작한 때도 원(元)간섭기인 1276년 제주에 몽골식 목장이 설치되면서부터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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