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채 주필


아파트 가격을 올리기 위한 담합 행위가 도를 넘고 있다. 서울 강남에서 시작된 아파트값 담합행위가 서울 준강남권과 수도권 인기 신도시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지난 2005~2007년 집값 상승기에 수도권 부녀회를 중심으로 비교적 단순하게 이루어졌던 담합 행위가 지금은 한발 더 나아가 지역·아파트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통해 보다 체계적, 조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일정 가격 이하로 매물을 내놓지 말라는 홍보 전단과 스티커가 등장하는 것은 기본이고 주민들이 지하철 역과 초등학교 등 편의시설 설치를 관계 기관에 요구하거나, 지역구 국회의원이나 구청장 등에게 노후 건물 재건축 촉진을 요청하는 서한을 전달하기도 한다. 이같은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선거 때 보자’면서 이들을 협박하고 있다. 이러한 담합행위는 규모가 적은 아파트일수록 입주민수가 적어 결속력이 크다.
가격 담함행위 수법은 실로 다양하고 날로 악성화하고 있다. 일정 금액이하로 집을 중개하는 업소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주민끼리 공유하는가 하면 정상 매물을 인터넷 포털에 올린 중개업소에 전화를 걸어 “이 동네에서 장사하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한다. 또한 중개업소를 좋은 부동산과 ‘나쁜 부동산’으로 구분하고, 시세대로 매물을 올리면 ‘허위 매물’로 신고하거나 구청에 민원을 넣기도 하는 등 중개업소들을 압박하는 방식도 다양하다. 심지어 이제는 ‘전·월세를 올리자’는 글도 오르고 있다.

이처럼 주민들의 담합행위로 피해를 입는 공인중개사가 있는가 하면 일부 지역 중개사들은 산악회 등 친목단체를 결성해 가격 올리기 담합을 선도하고 있다는 보도도 있다. 이들은 단체 채팅방을 통해 공지한 가격이상 올리는 것은 무방하지만 그 이하로 올리는 것은 삭제하겠다는 등 가격 담함을 하고 있으며 이를 어길 경우 자체 규약에 따라 재판까지 열어 벌금을 부과하는 등 제재까지 한다고 한다. 이에따라 공정거래위원회가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조사에 나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손쉽게 돈을 벌기위해 서로 짜고 부당하게 이득을 챙기는 담합행위는 결국에는 거품붕괴로 막을 내리게 된다. 그런데도 옆동네 아파트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데 우리 아파트는 오르지 않는다면서 앞다투어 담합에 나서고 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식으로 배고픈 것은 참을 수 있지만 배아픈 것은 참을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 집이 없는 사람은 집값이 내리기를 바라지만 집을 가진 사람은 조금이라도 오르기를 내심 기대한다. 이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러니 집값이 너무 올랐다면서 부동산 투기를 근절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사람들도 일단 집을 사고 나면 그 사람 역시 오르기를 바란다. 하지만 가격담함 행위는 부동산시장을 왜곡시켜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하고 무주택 서민과 사회초년생, 신혼부부 등에게 커다란 상실감과 좌절감을 안겨준다. 또한 사회 양극화와 계층화는 물론이고 부의 대물림, 지역간 불균형 등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유발한다.

이러한 망국적인 담합행위는 우리 사회가 지금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나만 이득을 보면 된다는 이기주의가 집단 이기주의로 진화하면서 투기와 배금주의를 확산시키고 정부 정책마저 무력화하고 있다. 정부는 부동산 가격을 잡겠다며 강력한 투기억제 정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지만 시장에서 전혀 먹혀들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앞으로 정부가 세금 중과와 같은 대책을 내놓아도 조세저항이라는 부작용만 노정시킬 뿐 거품이 저절로 사그러들기 까지는 별 효과가 없을 것이란 얘기도 이래서 나온다.
담합행위는 마땅히 근절돼야 한다. 부정한 방법을 통해 부를 축적하는 이기적인 문화를 그대로 방치하고서는 우리 사회의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그런데도 당장 이를 근절시킬만한 법적, 제도적 수단을 찾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공정거래법상 담합행위 주체는 사업체인데 아파트 입주민들이 담합 주체이기 때문에 공정거래법에 의한 규제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집값 담합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함께 효과적인 근절대책을 다각도로 강구해 볼 필요는 있다고 본다. 예컨대 주민들의 담합행위가 가격구조를 왜곡시켜 거품을 만들고 시장을 교란한다는 점에서 이를 시장질서를 교란시키는 행위로 규정, 부동산중개업법을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공인중개사를 겁박해 가격을 못올리게 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형법상 업무방해죄를 적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주민들 스스로 호가로 집값을 높이려고 해봤자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는 점을 직시하고 자중하는 시민정신을 발휘하는 것이 최선책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투데이코리아 주필>

약력
△전)연합뉴스 경제부장, 논설위원실장
△전)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
△전)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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