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무 회장

제가 미국에 처음 갔던 때가 지금으로부터 43년 전인 1975년 8월이었습니다. 1년간 미시간 주립대학교(Michigan State University)에 연수를 간 것입니다. 첫딸 수연이가 두 돌이 되기 전에 혼자 가는 것이 내키지 않았지만, 모처럼의 기회에 제대로 한번 공부를 해보자는 생각에 (그때까지 워낙 공부와는 담을 쌓고 지냈던지라) 각오도 단단히 했었습니다. 덕택에 1년 만에 석사과정을 수료했는데 힘들었지만 보람도 컸었습니다. 그 대학은 당시에 이미 약 5만 명의 학생과 5천 명에 이르는 교직원 등 엄청난 규모의 학교였는데 미시간 주의 수도인 랜싱 동쪽에 붙어있는 이스트 랜싱(East Lansing)이라는 도시의 거의 전부가 학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습니다. 촌놈이 미국 가서 여러 번 놀랐지만 학교 안에만 버스노선이 여러 개 있는 것에 기죽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그곳에 갈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이 대학 주관의 한국농업 섹타 연구(KASS, Korean Agriculture Sector Study)와 한국농업 기획 연구(KAPP, Korean Agriculture Planning Project)를 위해 농림부에 자문관으로 와 있던 맹검(Fred Mangham) 박사의 추천 덕분이었습니다. 70년대 초에 USAID의 지원으로 진행된 이 두 프로젝트는 우리나라 농업경제 분야의 연구에 큰 도움이 되었고, 특히 농업연구 인력과 정책담당자의 연수기회를 제공해 주어서 귀중한 성과를 얻었다고 평가됩니다. 저는 1976년에 귀국해서 10년 뒤인 1986년에 2년간 USAID 특별지원 프로그램의 도움으로 세 아이와 함께 가족 모두 같이 가서 다시 한 번 이 대학교에서 공부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8개월 연장을 받은 끝에 농업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게 되었는데, 2003년에 85세로 별세하신, 저에겐 아버지 같은 은사 글렌 죤슨(Glenn L. Johnson) 선생님을 비롯하여 로스밀러(G. Ed Rossmiller), 소렌슨(Vernon Sorenson), 페리스(Jake Ferris) 교수님들과 그 기회를 만들어준 내 친구 코너블(Dan Conable) 당시 주한 미국대사관 농무참사관에게 지금도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글렌 존슨 선생님은 1918년 미네소타의 농촌에서 태어나서 1942년 미시간 주립대학교에서 농업경제학 석사를 마치고 2차 대전에 해군으로 참전한 뒤에 1949년에 시카고대학교에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슐츠(Theodore Schultz)교수와 게일 존슨(D. Gale Johnson) 교수의 지도아래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신 분입니다. 1952년부터 1988년 70세로 은퇴할 때까지 미시간 주립대학교에서 강의와 연구, 개발도상국의 농업발전 프로젝트를 위해 애쓰셨지요. 이분이 바로 앞서 소개한 KASS, KAPP 연구 프로젝트를 직접 기획 추진한 책임자로서 우리 농업 발전을 위해서도 많은 기여를 해주셨던 분입니다.

제가 선생님을 처음 만난 것은 1975년 가을 첫 학기에 그 학교 농업경제학 석사과정 중 가장 어렵다는 그분의 ‘생산경제학(Production Economics)’ 과목을 수강하겠다고 했을 때였습니다. 여러 선배들이 말렸지만 조금 오기가 나서 수강신청을 했지요. 정말 생후 처음으로 코피 나게 공부해서 ‘B’ 학점을 받았습니다. 존슨 선생님이 저더러 “내 과목은 ‘C’만 받아도 잘 했다고 한다. 그것도 첫 학기에 ‘B’라니 참 대견스럽다.”라고 직접 불러 칭찬을 해주셨습니다. 이후 당시 지도교수였던 로스밀러 교수보다 더 저를 아껴서 직접 가르침을 주셨고, 10년 후에 다시 갔을 때 은퇴 직전이라 지도교수는 못 맡으신다고, 박사과정 지도 커미티의 좌장을 자청하셨습니다. 1989년에 제가 박사과정을 마치고 귀국한 뒤에도 한국을 방문하실 때에는 늘 저를 불러 가르침을 주셨지요.

존슨 선생님에 대한 평판은 한 마디로 ‘농업경제학 분야의 거인 (A Giant in the Agricultural Economics Profession)’ 이라는 말로 축약됩니다. 1952년에 일찍이 미국 농업경제학회에서 수여하는 우수연구상을 수상, 1962년에 그 학회의 부회장, 그 뒤에 회장을 역임하였고, 1980년대 중반에 세계농업경제학회(IAEA, International Association of Agricultural Economics)의 회장을 지냈습니다. 그분은 농업경영학, 생산경제학, 경영이론, 연구방법론, 농업개발론 등 광범한 분야에서 ‘탁월한 선생이자 연구자(Excellent Teacher and Researcher)’라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특히, 초기 연구 중 ‘자산의 특화(Asset Specificity)로 인한 취득가격과 처분가격의 차이에 관한 이론’은 나중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게 만든 ‘거래비용(Transaction Cost) 이론’의 모태가 되었다고 합니다. 말년에 선생님은 ‘과학과 신학 사이의 대화’와 ‘신기술과 윤리, 권력구조의 상관관계’로 사색의 범위를 승화시켜 많은 후학들의 귀감이 되었습니다.

30년 전인 1988년 여름에 그랜드래피즈 부근 미시간 호수 옆에 있는 별장에 초대받아 우리 가족이 며칠 동안 선생님 내외분과 함께 즐겁게 보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샌디(Sandy) 사모님과 일곱 살짜리 제 막내아들이 금방 친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신기할 정도였지요. 1993년에 제가 교토대학 초빙교수로 1년간 가 있었을 때 선생님을 일본과 한국으로 초청해서 특강을 모셨는데 그때 선생님이 저더러 “너, ‘상무 존슨’ 안하겠니?” 하시던 모습이 정말 그립습니다. 선생님, 하늘나라에서 사모님과 함께 평안히 잘 지내십시오. <투데이코리아 회장>

필자 약력
△전)농림수산부 기획관리실장
△전)세계식량농업기구(FAO)한국협회 회장
△전)농어업농어촌 특별대책위원회 위원장
△전)한국농어촌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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