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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 끝나지 않은 한반도 ‘대구전쟁’ - 치명적 매력의 역사 (上)

    한국 넘어 전세계 식도락가들의 혀끝을 사로잡은 대구
    기사입력 2018.03.13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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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jpg▲ 싱싱한 자태로 손님맞이 준비에 나선 대구들.
     

    [투데이코리아=오주한 기자] 바야흐로 ‘대구전쟁’의 시대다. 대단한 먹성으로 ‘클 대(大)’ ‘입 구(口)’ 합쳐서 ‘대구’라는 이름이 붙은 대구목 대구과의 이 어류를 ‘국민생선’으로 다시 소생시키기 위해 전국 각 지자체에 비상령이 내려진 상태다.

    살이 희고 담백하며 쫄깃하고 크기도 커서 탕, 찜 등 다양한 요리재료로서 사랑을 받아온 대구는 한때 한반도 수역에서 자취를 감출 뻔 했다가 인위적 노력으로 근래 겨우 개체수가 늘어나고 있다.

    1980년대 이전만 해도 풍부한 조업량을 자랑하던 대구는 이후 무분별한 남획, 중국 어선 불법조업 등 영향으로 수가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유통량이 낮아지면서 가격은 폭등해 1990년대에는 60~70cm 길이의 대구 한마리가 20만~30만원에 팔리면서 ‘금대구’라는 칭호가 붙었다.

    이로 인해 대구는 서서히 국민들의 밥상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유통업계 통계에 의하면 한때 수산물 판매량에서 고등어, 갈치와 함께 상위권을 차지하던 대구는 작년 밑바닥 순위까지 추락했다. 그 자리는 대신 연어 등 수입산 수산물이 채웠다.

    어민 파산이 잇따르고 국민 불만도 가중되자 정부, 지자체는 1987년부터 시작된 수정란 방류사업을 확대하고 1월 한달 간 금어기를 설정하는 등 자구책을 마련했다. 다행히도 실효를 거둬 1990년 487톤이라는 처참한 성적을 기록한 대구 어획량은 2000년대 들어 1천톤대를 회복해 2014년 9940톤의 실적을 달성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대구 판매량은 좀처럼 늘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아 각 지자체는 지금도 수정란 방류사업을 지속하는 한편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판촉활동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1990년대부터 시작된 ‘대구전쟁’은 약 2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끝나지 않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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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국의 대표적 서민요리인 ‘피시 앤드 칩스’. 현지인들은 신문지에 싸먹는 것을 최고로 친다.
     

    바이킹 ‘베르세르크(광전사)’의 입맛까지 사로잡은 대구

    대구는 사실 우리 민족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사랑받은 생선이다. 서구권에서 가장 유명한 대구 요리는 아무래도 영국의 ‘피시 앤드 칩스(Fish and Chips)’다. 단순하기로 유명한 영국요리답게 피시 앤드 칩스는 말 그대로 물고기(Fish)를 튀긴(Chip) 것이다. 대구와 감자를 함께 튀긴 채 나오는 게 일반적이다.

    대구는 중세 서양판 흉노, 몽골족이라 할 수 있는 바이킹(Viking)의 전투식량으로 쓰이기도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바이킹이 살던 북유럽은 춥기로 유명한 곳이다. 자연스럽게 대규모 농사는 사실상 불가능했으며 북유럽 남성들은 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해 특유의 곡선형이 특징인 선박 롱십(longship. 당대 현지어로 랑스킵)을 타고 서유럽, 멀게는 남유럽까지 ‘털러’ 나섰다.

    롱십은 길이가 평균 25m에 불과할 정도로 소형선박이었기에 사람과 약탈물만 겨우 실을 수 있는 크기였다. 제대로 된 식량을 넉넉히 실을만한 면적의 여유가 없었기에 바이킹은 함내 보존식으로 말린 대구를 널판지처럼 쌓아 갖고 다녔다. 이 말린 대구가 없었다면 바이킹의 유럽 원정과 왕조 건설도, 빈란드(Vinland)사가의 전설도, ‘그린란드(Greenland)’ 발견이라는 희대의 사기극도 존재할 수 없었다.

    부연하자면 당초 약탈에 열중했던 각 바이킹 부족들은 영국 등지에 정착해 노르만 왕조 등의 시대를 열었다. 빈란드사가는 아이슬란드에서 기록된 두 서사시인 ‘그린란드 사가’ ‘붉은 머리 에리크 사가’를 통칭하는 말로 바이킹의 빈란드(지금의 북미대륙) 발견을 담고 있지만 진위여부를 둘러싼 학계 의견은 분분하다.

    그린란드는 이 동토의 땅을 처음 발견한 인물이자 ‘붉은 머리 에리크(Erik)’의 아버지인 ‘붉은 수염 에리크’가 이주자 모집을 위해 ‘허위로’ 붙인 이름이다. 그러나 99%가 얼음으로 뒤덮인 이 땅에도 ‘1%’의 따뜻한 지역이 있어 완전사기는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3.jpg▲ 3차 대구전쟁 과정에서 교전 중인 영국·아이슬란드 군함.
     

    英·아이슬란드 전쟁까지 야기한 ‘전범’ 대구

    대구는 인류 전쟁사에도 길이 남을 ‘족적’을 남겼다. 영국과 아이슬란드는 이름 그대로 ‘피 터지는’ 대구전쟁을 1958~1976년 사이 벌인 바 있다.

    발단은 1945년 발표된 미국의 ‘대륙붕 선언’이었다. 당시 대구잡이로 생계를 이어나가면서 은근슬쩍 조업을 방해하는 영국을 곱게 보지 않던 아이슬란드인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어업전관수역을 기존 3해리에서 4해리로 늘렸다가 1958년 아예 12해리로 늘리겠다고 선포했다. 이에 영국이 강력항의하면서 자국 선단에 구축함 등을 호위로 붙여 아이슬란드 수역에 파견함으로써 대구전쟁의 막이 올랐다.

    그해 10월 아이슬란드 경비정이 영국 선단에 3발의 위협사격을 가하면서 긴장은 고조됐다. 11월에는 양국 군함 대치상황까지 발생했지만 1961년 영국 정부가 아이슬란드 어업전관수역을 12해리로 인정하고 대신 분쟁 재발 시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하기로 제안함으로써 1차 대구전쟁은 다소 싱겁게 끝났다.

    하지만 바이킹의 피를 이어 받은 ‘근성의’ 아이슬란드인들은 약 10년 뒤인 1972년 어업전관수역을 무려 50해리로 늘리겠다는 폭탄선언을 했다. 영국은 약속대로 ICJ 제소를 경고했지만 아이슬란드 정부가 거부함에 따라 2차 대구전쟁이 시작됐다.

    제대로 된 해군전력이라고는 갖추지 못했던 아이슬란드였지만 해양경비대 총전력인 경비정 6척을 동원해 커터로 영국 트롤어선 그물을 자르는 등 영해사수에 나섰다. 1년 간 영국 어선 68척, 그리고 어느새 영국 뒤를 따라 아이슬란드 영해로 들어온 서독 어선 15척이 피해를 입자 영국은 미국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군함을 파견하기로 했다.

    미국은 아이슬란드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나토)를 탈퇴해 소련 영향력 하에 들어갈 가능성을 우려했지만 영국이 순순히 물러서기에는 대구가 갖는 경제력이 엄청났다. 또 한 때 로열네이비(Royal Navy)를 앞세워 전세계를 정복했던 영국이 보기에 아이슬란드 해상전력은 그야말로 ‘당나라군대’ 수준이었다.

    급기야 1973년 5월 아이슬란드 경비정이 영국 어선에 함포 4발을 명중시키는 상황이 발생했다. 같은해 8월에는 영국 선박과 충돌한 아이슬란드 경비정에서 수병 1명이 사망하는 최악의 사태가 빚어졌다. 설상가상 아이슬란드가 나토 탈퇴를 선언하자 위기를 느낀 미국이 중재에 나서 이번에도 영국이 양보하는 것으로 2차 대구전쟁은 아슬아슬하게 막을 내렸다.

    하지만 한번 불 붙은 양국 감정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1974년 전세계를 덮친 중동발 오일쇼크(Oil Shock)는 3차 대구전쟁의 도화선을 당겼다. 무역적자 1억5천만달러를 기록하는 등 경제파탄 위기를 맞은 아이슬란드가 영국과의 협약은 ‘쌈 싸먹고’ 1975년 어업전관수역을 200해리로 대폭 확대하겠다는 일방적 선언을 내놓은 것이다.

    1~3차 대구전쟁 중 가장 치열했던 것이 3차 대구전쟁이다. 양국은 해상전력을 총동원해 선체충돌, 함포사격 등 치열한 교전을 벌였다. 이번에도 ‘냉전카드’를 꺼내든 아이슬란드는 미국으로부터 애쉬빌급 고속정 수입이 거부당하자 소련의 미르카급 호위함을 구매하겠다면서 소련과 접촉하는 대형사고를 쳤다.

    소련이 아이슬란드에 활주로와 잠수함·미사일기지를 건설하고 유럽 전역에 핵공격 위협을 가하는 악몽에 시달리던 나토는 이번에도 개입해 피 말리는 심정으로 양국 화해를 주선했다. 그러나 영국은 이번에는 쉽사리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1976년 또다시 양국 함정이 충돌하고 아이슬란드가 영국과의 국교를 단절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갈 데 까지 갈 것 같던’ 이 3차 대구전쟁이 전환점을 맞은 건 영국 내부의 자국 비판여론이었다. 대구 조업량 좀 늘리겠다고 우방국을 적국으로 돌려 전유럽에 핵전쟁 위기를 불러올 수는 없다는 지적이 이어진 것이다. 결국 이번에도 영국이 아이슬란드에 ‘항복’함으로써 장장 약 20년을 끌어온 대구전쟁은 완전한 종결을 맞을 수 있었다.

    지금도 아이슬란드인들은 무적의 로열네이비를 꺾었다는 착각 아닌 자부심에 빠져 매년 6월17일인 내셔널데이(독립기념일)에서 대구전쟁에서의 승리를 기념하고 있다. 물론 전쟁 와중에도 양국 어선 그물에 정신없이 빨려들어가 튀김옷을 입어야 했던 대구들이 과연 누구 편을 들었을지는 알 수 없지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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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코칼럼
  • [박현채 칼럼]무서운 싱크홀 하루 2.6개씩 발생
  • 박현채 주필|2018-09-21
  • 멀쩡하던 땅이 갑자기 침하하면서 사람과 자동차, 건물 등을 빨아들이는 싱크홀(sink hole)이 하루 평균 2.6개씩 생기고 있다. 차를 몰고 가던 도중 갑자기 도로가 움푹 꺼지면서 깊은 구덩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거나, 내가 살고 있는 집이 한순간에 커다란 구멍 속으로 사라지는 상상을 하게 되면 모골이 송연해 진다. 2005년 전남 무안군에서는 전날까지 멀쩡했던 30평이나 되는 방앗간 창고가 하룻밤 사이 19m 깊이의 땅속으로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했고, 2008년 충북 음성군 꽃동네에서는 천둥치는 듯한 굉음과 함께 땅에 구멍이 생겨 건물이 무너져 내렸다. 또 2010년에는 충북 청원군의 마을 저수지에 구멍이 생겨 물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최근에는 지난달 31일 서울 금천구 가산동에서 구덩이 크기가 90평이나 되는 깊이 6m의 대형 싱크홀이 발생했다. 또한 지난 5일에는 의정부시 사패산 화룡사 입구에서 싱크홀이 발생, 그곳을 지나던 지게차가 통째로 빠졌고 10일에는 경남 창원에서 깊이 2m의 싱크홀이 발생하는 등 크고 작은 싱크홀 사고가 빈발하고 있다. 그 중에는 원인 불명인 경우도 상당수였다. 싱크홀은 자연적으로 발생하거나 인공적으로 생긴다. 자연 발생 싱크홀은 주로 물에 잘 녹는 석회암과 백운암, 암염 지대에서 주성분이 지하수에 녹으면서 발생한다. 다행히도 우리나라는 국토 대부분이 단단한 화강암과 편마암층으로 이뤄져 있어 땅 속에 빈 공간이 잘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최근들어 도심에서 인공적인 지반침하 현상이 자주 일어난다. 인구 밀집지역인 도심지에서 발견되는 싱크홀은 지하수 네트워크에 이상이 생기면서 만들어진다. 무분별한 지하수 개발이나 지하철, 대형 건축공사 등으로 지하수를 너무 많이 빼내게 되면 지하수위가 낮아져 땅속에 공간이 생기게 되고 이 공간이 위에서 누르는 압력을 버텨내지 못하게 되면 한순간에 지표가 무너져 내린다. 사라지는 지하수의 양이 많을수록 싱크홀의 크기도 커진다. 또한 지표수 물길을 다른 곳으로 돌릴 경우 메마른 흙에 물이 흥건해 지면서 지반 약화로 땅이 내려앉을 수 있고 파손된 상.하수관이나 빗물 연결관에서 새어 나온 물이 주변 흙에 스며들어 싱크홀이 생기기도 한다. 또한 지하수가 너무 잘 흘러도 싱크홀이 생길 수 있다. 흐르는 지하수가 수로 주변의 점토와 모래 등을 깎아내 지하수 길이 점점 커지기 때문이다. 자연현상으로 나타나는 싱크홀은 불가항력적인 측면이 있지만 인공적으로 생기는 싱크홀은 사전 예방하면 막을 수 있는 인재다. 싱크홀은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최근 5년간 전국에서 4500여 건이 발생했다. 연도별로는 2013년 898건, 2014년 858건, 2015년 1036건, 2016년 828건, 2017년 960건으로 해마다 900건 안팎의 지반침하가 발생하고 있다. 이중 서울이 3581건으로 전체의 78%를 차지, 가장 많다. 이어 경기도 255건(5.6%), 광주 109건(2.4%), 대전 84건(1.8%), 충북도 82건(1.8%) 순이다. 싱크홀의 주요 원인은 노후 하수관 손상이 3027건(66%)으로 가장 많았고 관로공사 등이 1434건(31%), 상수관 손상이 119건(3%)으로 뒤를 이었다. 노후 상·하수관의 파손으로 물이 흘러나오면서 지하의 흙이 쓸려 내려가 싱크홀을 유발하는 것이다. 여름철인 6~8월의 월평균 발생건수가 350~500여 건으로 겨울철의 100여 건, 봄·가을의 200여 건에 비해 월등히 많은 것은 집중호우 등으로 지반이 약해지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한반도가 아열대성 기후로 바뀌면서 집중호우에 따른 지질 변화가 예상돼 앞으로 땅 꺼짐 현상은 더욱 빈번하게 일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자연 발생 싱크홀과는 달리 인구밀집지역인 도심에서 생기는 싱크홀은 엄청난 인명 및 재산피해를 가져올 수 있다. 구체적인 발생 원인을 규명해 근원적인 방지책을 마련하지 않은채 단순히 구덩이를 흙으로 메우는 땜질식 복구는 대재앙을 자초할 수 있다. 특히 지반이 약한 한강 매립지로, 싱크홀 발생이 잦은 잠실과 여의도 지역에서는 보다 철저하고 확실한 원인 규명이 있어야 하겠다. 이젠 노후 상·하수관로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통합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돼야 한다. 아직까지도 30년 이상 지난 노후 지하 시설물의 현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또한 지하시설물 안전 점검을 주기적으로 실시, 땅 꺼짐 현상을 사전 예방해야 한다. 아울러 도심 지반침하가 주변 부실공사에서 비롯된 경우가 대거 늘어나고 있는 만큼 공사현장도 보다 엄격하게 관리해 나가야 하겠다. &lt;투데이코리아 주필&gt; 필자약력 △전)연합뉴스 경제부장, 논설위원실장 △전)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 △전)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 [김성기 칼럼]집값 대책인지, 세금 더 걷겠다는 건지
  • 김성기 부회장|2018-09-14
  • 서울 아파트 값이 급등하면서 정부가 잇달아 대책을 내놓고 있으나 종합부동산세를 비롯한 보유세 중과에 치중해 실효성에 의문이 든다. 정부는 13일 발표한 종합대책에서 종부세를 대폭 강화해 다주택 보유자는 물론 1주택이라도 비싼 주택에 사는 국민에게는 부담을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주택임대사업자의 신규취득주택에 대해서도 세제혜택을 축소하고 금융규제 조이겠다고 밝혔다. 특히 서울과 세종시 등의 다주택보유자에 대해서는 종부세 세율을 최대 3.2%까지 중과하고 종부세 부과에 3억~6억원 구간을 신설하는 방안을 공개했다. 부동산 대책에 단골로 나오는 양도세와 보유세 강화, 대출규제 등을 모두 동원, 수요를 억제하고 공급도 늘려 보겠다는 처방이다. 당장 서울 집값이 뛰고 있는 주요인으로 지목된 공급부족에 대해서는 “수도권 내 교통여건 등이 좋은 지역을 선정해 30만 가구규모의 공공택지를 개발하겠다”고 개괄적인 방안만 제시했다. 하지만 집값 잡겠다며 세금을 집중적으로 올리는 게 과연 적절한 대책인지, 실수요자들에게 과도한 세금을 물리는 게 아닌지 의문을 지울 수 없다. 최근 주택 값의 변동을 보면 투기수요가 앞장서 활개를 치기보다는 수년간 지속된 저금리 체제에서 조율되지 않은 설익은 대책발표와 안이한 수급 전망, 현실에 맞지 않는 세금중과가 겹쳐 움직인 부분이 매우 커 보인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시기에 여의도.용산개발계획을 밝혀 불길을 당겼고 정부는 집값 잡겠다며 연소득 7000만원 이상 가구에 대해 전세자금 대출보증을 제한키로 했다가 거센 반발에 밀려 철회하는 소동을 빚었다. 한 여당의원은 경기도의 신규 택지개발후보지 자료를 언론에 유출해 시장을 혼란에 빠뜨렸다. 정부가 혼선을 빚는 사이 서울 아파트값은 호가를 중심으로 급등세를 보였다. 집을 팔겠다는 매도세는 사라지고 사겠다는 수요가 몰려 9월 첫째주 서울지역 아파트 매수우위지수는 171.6을 기록, 2003년 지수집계 이후 최고치를 보였다.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올해 4월 양도세 중과조치가 시행된 이후 서울 아파트 매물이 뚝 끊겨 지난 3월 1만4600여건에 달했던 거래건수가 4월부터 평균 5700여건으로 급감했다. 지난해 발표된 부동산 대책에서 올해 3월까지 단기적으로 아파트 매물을 늘려 가격 안정을 유도하기 위해 시한을 정해 양도세 강화를 예고했던 것인데 시장 반응은 냉담했다. 사실 지금 처럼 보유세와 거래세가 모두 큰 부담으로 작용하는 세제 속에서는 시장에 매물이 몰려나올 여지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 실수요 1주택자는 생활 여건에 큰 변동이 없는 한 대부분 이전을 꺼리고 다주택자는 매매주택의 전세 보증금을 내주고 높은 양도세까지 물어야 하기 때문 그 부담이 너무 크다. 자칫 보증금에 세금 물고 나면 빚을 내야하는 형편에 몰릴 수도 있다. 종부세나 재산세 등 보유세가 높은 국가에서는 양도세가 거의 없어 최소한 거래에는 큰 부담이 없도록 배려하고 있다. 종부세 부담을 확대한 조치는 이번 정부 대책의 속내가 집값 안정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재정수입을 확대하려는 데 있는 것인지 헷갈린다. 종부세 강화는 은퇴생활자나 중산층의 부담까지 늘려 조세저항을 부를 우려가 없지 않다. 막상 부담이 늘어나는 실수요자 입장에서는 실제로 투기 근처에도 가본 일이 없는데 정책과 부동산 시장이 이상하게 돌아가 갑자기 세금이 오르면 반발하게 마련이다. 정부는 늘어나는 세액이 얼마 안 된다고 강변하지만 수입이 뻔한 형편에 생활물가와 건강보험료 등 각종 부담금까지 오르고 있어 그 부담이 적지 않다. 정부는 종부세 강화로 예상되는 4100억원 가량의 세수 증가분을 서민주거안정대책에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방침이 그러할 뿐이지 실제로 꼬리표가 없는 돈이 어디서 어디로 가는지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일자리 대책에 들어가는 돈이 54조원에 이르고 남북정상회담 이후 판문점 선언 이행에 천문학적인 재정이 투입된다고 한다. 밑빠진 독에 물붓기 처럼 들어가는 돈을 세금으로 채워야하니 종부세를 더 내게 된 국민 입장에서는 뭔가 뒤통수를 맞는 느낌이 들지 않겠나. &lt;투데이코리아 부회장&gt; 필자약력 △전)국민일보 논설실장,발행인 겸 대표이사 △전)한국신문협회 이사(2013년) △전)한국신문상 심사위원회 위원장
  • [권순직 칼럼]기업은 타도 대상인가
  • 권순직 논설주간|2018-09-13
  • 정권이 바뀌면 거의 예외 없이 기업, 기업인은 한차례 곤욕을 치른다. 이른바 기업 길들이기다. 정권 당사자들은 ‘길들이기가 아니라 사회 정의를 확립하는 작업’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기업인들은 길들이기라고 여긴다. 그리고 태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그 기간 숨죽이고 잔뜩 움츠리며 지낸다. 이 정부 들어 유난히 기업들이 힘들어하는 것은 정권 주류가 대부분 반기업 정서를 갖는 운동권 및 시민운동가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보니 기업들은 투자에 소극적이고, 보신에 더 신경을 쓰는 모습이다. 여기에다 대기업 오너들의 눈살 찌뿌리게 하는 갑질은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됐고, 정부 눈치 보기에 급급한 인상이다. 고용위기에 처한 정부 입맛 맞춰주느라 재벌들은 거액의 투자계획, 인원 채용계획을 앞 다투어 발표한다. 뜯어놓고 보면 늘상 하는 정도이지 투자나 채용을 특별히 늘리는 수준도 아니다. 그것도 정부에 인심 쓰듯 발표해놓고 실행은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이다. 누가 체크할 수도 없고, 이행하지 않았다고 나무랄 수도 없는 일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재벌기업에 대한 뿌리 깊은 반감은 이유가 있다. 1960년대 이후 압축경재성장 과정에서 정부는 재벌위주의 정책을 폈다. 자연히 재벌에 대한 갖가지 특혜가 주어졌고, 이를 자양분으로 크게 성장한 기업들이 성정 과실을 합당할 만큼 사회에 환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재벌과 권력간의 유착 비리는 온 국민이 보아온 사실이다. 기업 오너들의 책임의식 결여도 문제다. 2세 3세로의 경영세습 과정에서 일부 기업은 유능한 후계자로 이어졌지만 상당수는 함량미달 낮은 수준의 세습자가 기업을 맡고 있는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눈살 찌뿌리게 하는 갑질 비리가 터져 나온다. 세 번째는 많은 기업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지만 그들이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 그간 받아온 혜택에 부합할 만큼 기여하지 못하는 데 대한 국민들의 반감이 큰 것이다. 여기에 반기업 정서가 강한 정권실세들로부터 압박을 받는 것이 최근 우리 기업들 둘러싼 분위기다. 기업의 사회적 기여를 격려 유도해야 자, 그러면 기업은 타도 대상인가. 필자는 전두환군사정권 시절 국재 재벌랭킹 8위였던 국제그룹이 하루아침에 해체되는 것을 목격했다. 이 무렵 삼성그룹 창업자인 이병철회장을 인터뷰하는 자리에서 “국제그룹 해체를 어떻게 보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무척 의외였다. “양정모회장은 자격없는 경영인이다”였다. 같은 기업인으로서의 동정심이 아닌, 가혹한 평가였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이회장은 “전후 사정이야 어찌됐든 양회장이 거느린 종업원이 10만명이 넘는데, 그들의 직장이 불안해졌고, 가족을 합하면 30~40여만명의 국민이 앞날을 걱정하게 만든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지금은 알차고 큰 규모의 기업으로 성장한 한 기업인 이야기. 중소기업을 하던 그의 아내는 월말만 되면 배가 아파 앓아누워야 했다. 월말이면 친정에 가서 돈을 빌려다가 종업원 월급을 지급해야 하니 앓을 수밖에 없었다. 시일이 흘러 이 기업은 탄탄해졌고, 친정으로 돈 빌리려 갈 일이 없어졌는 데도 이 사장 사모님은 월말 배앓이가 상당기간 지속됐다. 최근 고 최종현SK회장 20주기 추도 행사가 이목을 끌었다. 고려대와 연세대 두 대학 총장이 동시에 신문에 기고문을 싣고 최회장을 추모했다. 그들은 최회장이 세운 장학재단으로부터 장학금을 받아 유학했다. 최회장이 세운 한국고등교육재단은 지난 44년간 3,700여명의 인재에게 유학비와 체재비를 지원했다. 아무 조건도 없다. 그간 해외 명문대 박사만도 740명에 이른다.인재 양성에 대한 고인의 집념과 파격적인 장학금 지원은 알게 모르게 우리 사회에 많은 공헌을 했을 것이다. 과거 우리 역사에서도 많은 부자들의 사회 기여를 볼 수 있다. 손꼽히는 부자요 명문가였던 우당 이회영선생 일가는 전재산을 독립운동에 쓰고 자신들은 험하고 어려운 생활을 한 것은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쥬의 표상이다. 경주 최부자 얘기도 유명하다. 광활한 농지 소유자였던 최부자는 인근 10리안에서 굶어죽는 사람이 나와선 안된다며 베풂을 실현했다. 6.25전쟁이 터져 공산주의가 사회를 지배하던 시절 밤이면 부자들을 인민재판정에 불러 심판하고 죽이는 일이 빚어지던 때, 부자이면서도 가난한 이웃을 보살폈던 사람들은 공산주의자들이 앞장서서 보호해준 사례는 전국 곳곳에 널려있다. 그렇다고 지금 우리 사회에서 기업들의 사회적 책임, 기여가 없느냐. 아니다. 수많은 기업들이 엄청난 규모의 사회적 책임(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을 수행하고 있다. 재단을 만들기도 하고 다양한 형태의 기금을 조성, 이웃과 함께하고 국가 사회에 기여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다만 그 규모가 국민의 요구 또는 선진국에서 이뤄지는 만큼 행하여지느냐는 좀 더 살펴볼 일이다. 어쨌든 기업으로선 좀 억울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정부나 국민들도 기업을 매도하지만 말고 그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유도할 필요가 있다. 기업을 타도대상으로만 봐선 안 될 것이다. &lt;투데이코리아 논설주간&gt; 필자약력 △전)동아일보 경제부장. 논설위원 △전)재정경제부장관 자문 금융발전심의위원 △현)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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