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불감증에 걸린 대한항공

▲ 인천공항을 이륙하는 대한항공

[투데이코리아=권규홍 기자] 국책 항공사로 나라를 대표한다는 항공사인 대한항공.

대한항공은 땅콩항공 회항사태로 불렸던 지난 2014년 오너일가가 저지른 황당한 회항 사건에 이어 잦은 사고로 또 다시 안전성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지난 6일 대한항공의 KE011 기종 여객기 한 대는 인천공항에서 미국으로 출발하기 위해 견인차량에 의해 이동 중 다른 항공기와 충돌하는 사고가 벌어졌다.


이 사고로 여객기는 동체 일부가 파손되었고 갑작스레 벌어진 사고로 놀란 탑승승객 전원은 사고 직후 하차하여 대체 비행기가 마련되기까지 무려 3시간이 넘게 기다려야만 했다. 결국 대한항공은 해당 여객기를 교체했다.


대한항공측 과실로 인한 운행 지연은 지난 4일에도 발생했다. 방콕행 여객기 한대가 항공기 내부 연결 문제로 지연되면서 무려 14시간 가까이 출발하지 못했다.

이날 방콕으로 떠나려던 수많은 승객들은 대한항공의 실수로 다음 날에야 비행기를 잡아 겨우 출발할수 있었다. 여행을 계획했던 승객들은 호텔예약을 비롯한 현지 여행 일정을 모두 날리거나 여행 계획을 긴급히 수정할 수밖에 없어 막대한 손해를 보았다.

▲ 창업주 조중훈 초대 회장



기나긴 사건사고의 역사

대한항공의 역사는 기나긴 사건사고의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국책 항공사 답지않게 안전성면에서 그다지 달갑지 않는 점수를 받아와 국민들이 불안해하며 타는 항공사라는 오명을 안고 있다.
대한항공은 해방 후 트럭 한 대로 사업을 시작했던 창업주 조중훈 회장이 운수업의 확장을 위해 1960년 ‘한국항공’이라는 민간 항공회사를 세운 것이 시초로 한국항공은 당시 해외여행이 불가였던 국가정책에 따라 만성적자를 보고 있었는데 이후 출범한 박정희 정부의 항공 사업 지원을 통해 공기업이었던 ‘대한항공공사’와 합병한 것이 대한항공의 시작이다.

하지만 60-80년대 냉전시기 대한항공은 국적기 답게 정치적, 군사적으로 대립관계였던 소련, 북한등 공산권 국가들과 자주 엮이며 잦은 사건 사고에 휘말렸다.

북한 간첩이 기장을 권총으로 협박해 납북해 간 YS-11기 납북사건을 비롯해 소련 영공을 침범했다는 이유로 소련 공군에 의해 격추된 대한항공 902기 격추사건, 일본 훗카이도 근방에서 역시 같은 이유로 격추되어 승객전원이 사망한 대한항공 007 사건, 그 유명한 남파간첩 김현희에 의한 대한항공 858편 폭파사고등으로 전 세계에 악명을 떨쳤다.
하지만 소련이 해체하고 난 뒤에도 대한항공은 잦은 사건, 사고로 인해 스스로의 명예를 깍아 먹었으며 수많은 승객들이 사망했다.

정비사의 실수로 인한 사건사고를 비롯해 엔진 과열사고, 조종사의 조종미숙으로 인한 오버런 사고, 충돌사고, 동체착륙 사고등 잦은 사건으로 사회면에 자주 등장하던 대한항공.

특히 97년에 벌어진 KE801기 괌 추락사고는 무려 228명의 사망객이 나오는 대 참사를 기록하며 악명을 떨쳤다.


▲ 충돌 사고로 인해 산산 조각난 대한항공기 (출처=MBC)

특히 사건 직후 블랙박스를 통해 드러난 사고 원인으로 당시 조종 승무원들이 서열 싸움으로 인해 위기상황을 앞에 두고도 서로 책임을 미뤘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승무원 관리를 제대로 하지도 못했다는 비난을 받았으며 외국 항공사들의 항공기 사고 교육 프로그램에서 한국의 상명하복식 유교문화의 폐해로 소개 되기도 하는 등 적잖은 국가 망신 사례로 기록되었다.


이 사건 이후 반사이익을 얻은 아시아나 항공은 그 뒤로 승승장구하며 대한항공과 맞먹는 규모의 항공사로 성장할 수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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