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코리아=권규홍 기자]


<편집자 주> 소비자 권리의식이 높아지고 지난해 갑질 기업과 총수에 대한 비난이 고조되면서 기업의 경영환경도 정치 만큼이나 급변하는 시기에 총수의 경영능력과 리더십에 따라 기업의 미래가 달라진다. 총수의 정확한 판단과 경영 역량에 따라 기업이 우뚝 서기도 하지만 때로는 오너리스크로 위기를 겪기도 한다. 본지는 이에따라 건설업계를 비롯,식품 외식업계 ,제조, 금융업계까지 주요 기업의 총수가 걸어온 길과 공과를 점검해 보기로 한다.


▲ 호반건설 김상열 회장



도전자 김상열

전남 보성에서 나고 자란 김상열 회장. 어릴 적 집안형편이 너무 좋지 않아 고등학교도 6년만에 겨우 졸업한 김 회장은 어렵게 조선대 건축공학과로 진학한 뒤 졸업후 조그만 중소건설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회사를 다니던 김 회장은 창업에 도전하기로 마음먹고 1989년 28살의 나이로 자본금 1억에 직원 5명이라는 초라한 규모로 광주에서 호반건설의 첫 간판을 내걸었다.

한국전쟁을 치른 후 산업 기반이 초토화된 대한민국. 국가 경제 발전을 위해 급속한 산업화를 맞게 된 대한민국은 정부 주도로 삼성, 현대, 대우등 대기업들을 중점적으로 키우는 정책을 내세워 대형 건설사에 아파트 건설 물량을 몰아주었다. 대기업들은 그들만의 리그를 확고히 하며 건설업계를 장악해갔다. 이런 상황에서 사실상 호남출신의 김 회장이 설자리는 그만큼 좁아 보였다.

하지만 김 회장은 창업과 함께 광주 북구 변두리에 149가구 규모의 '호반맨션아파트'를 내놓으며 사업을 시작했다. 초창기엔 인적이 거의 없는 변두리에 있는 아파트 건설로 부동산 시장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운 좋게도 때 마침 인근에 학교들이 대거 이전하게 되면서 호반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1998년 국가 부도사태로 모든 국민이 어려웠던 IMF시기, 조금씩 회사를 확장하던 호반건설은 IMF 영향으로 가격이 대폭 하락한 땅을 매입하여 호반의 자체 아파트 브랜드인 '호반리젠시빌'을 런칭하게 된다.

호반은 부동산 매입 전략에서 차별화를 두며 승승장구했다. 호반은 계열사를 한꺼번에 동원해 가성비가 뛰어난 택지를 낙찰받는 방식으로 시간과 비용을 아끼며 부동산 시장에 적절한 가격에 분양물량을 풀어 구매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호반은 이 같은 경영전략을 성장동력으로 사세 확장을 하기 시작한다.


▲ 광명에 런칭한 호반 베르디움 (출처=호반건설 )

▲ 사람들이 북새통을 이룬 호반 건설의 모델하우스



김 회장의 경영전략도 빛을 발했다. 김 회장은 미분양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분양률 90% 원칙’과 ‘무차입 경영’을 내세우며 회사의 내실을 다졌다. 분양률 90% 원칙이란 이미 분양된 아파트의 분양률이 90%를 넘지 않으면 다음 신규 분양을 하지 않는 방식. 호반은 이 같은 정책으로 인해 미분양사태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었다. 또한 회사의 채무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경영전략을 내세우며 회사의 자본금을 점차 늘여나갔다.

호반은 지속적인 성장세에 힘입어 광주를 벗어나 울산, 대전, 천안, 전주 등지로 사업을 확장했다. 2001년엔 같은 광주 지역을 기반으로 한 남광건설과 손잡고 함께 경기도 여주의 ‘대영루미나 컨트리 클럽’을 매입하여 ‘스카이 밸리 리조트’를 런칭 했다.

수도권으로의 사업 확장도 순조롭게 이뤄지자 호반은 전국구 기업이 되기 위해 아예 본사를 서울 강남구로 이전하는 초강수를 두며 본격적으로 수도권 공략에 나섰다.

수도권에 진출한 호반은 이후 새로운 아파트 브랜드 '호반 베르디움'을 런칭했고 IMF 때처럼 2008년에 닥친 세계경제위기 이후 오히려 공격적인 영업으로 기업을 키워나갔다. 2009년, 2010년, 2014년에는 전국 주택공급실적 1위에 오르는 실적을 올리며 사세가 크게 확장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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