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채 주필

지친 현대인에게 여유와 활력을 가져다 주는 대표적인 기호식품중의 하나가 커피다. 최근들어 커피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 지면서 각종 유해설과 유익설이 교차하고 있지만 매혹적인 커피 향과 중독성 때문인지 지난해 국내 커피시장 규모가 10조원을 돌파했다. 10년 전에 비해 3배 이상 커져 증가 속도가 무척 가파르다. 국민 전체가 지난 1년 동안 마신 커피를 잔수로 따지면 약 265억잔이나 된다. 1인당 연간 512잔을 마신 셈이다.
커피의 유래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나 증거는 없다. 단지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을 통해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커피를 먹어왔던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인류가 커피를 음료로 만들어 마시기 시작한 것은 대략 15세기경이다. 예멘의 이슬람 교도들이 예배할 때 졸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음료로 만들어 마시기 시작했고 예멘을 통해 이슬람의 중심지인 메카로 전해졌다고 한다. 당시 커피는 졸음 해소뿐만 아니라 담석, 통풍, 천연두, 홍역, 기침 등에 효험이 있는 것으로 전해지면서 다양한 민간요법 질병 치료제로 각광을 받았고 실제로 의사들에 의해 처방되기도 했다.
그러나 중세 유럽의 기독교 사회에서는 이슬람 교도들이 마신다는 이유로 커피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다. 이들은 커피를 ‘이교도의 음료’, ‘악마의 유혹’, ‘사악한 검은 나무의 썩은 물’ 등으로 부르며 비하했다. 그러던 커피가 십자군 전쟁중 유럽으로 전파됐고 르네상스 시절 유럽의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커피의 맛과 효과에 열광하면서 널리 사랑받기 시작했다.
커피가 인기를 끌기 시작했지만 대량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물만 부으면 마실 수 있는 인스턴트 커피가 등장하면서 부터다. 인스턴트 커피는 커피 주산지인 브라질에 경제 위기가 도래하면서 상품화됐다. 1920년대 말 브라질에서는 유례 없는 커피콩 풍작으로 시세가 폭락, 생산 농민들이 몰락 위기에 처하게 됐다. 브라질 정부는 남아도는 원두를 해결하기 위해 식품회사인 네슬레에 가공식품을 만들어줄 것을 요청, 네슬레가 네스카페(Nescafe)라는 인스턴트 커피를 최초로 내놓게 됐다. 그 후 네스카페는 인스턴트 커피의 대명사가 됐다.
우리나라에 커피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은 한국전쟁이 계기가 됐다. 미군의 전투식량에 포함된 인스턴트 커피가 유출되면서 시중에 대거 유통되기 시작했다. 미군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수시로 전투를 치러야 하는 군인들이 졸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전투식량에 인스턴트 커피를 포함시켰던 것이다.
그러니 국내 커피시장은 값싼 인스턴트 커피 위주로 성장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1999년 스타벅스를 선두로 다양한 커피전문점이 등장하면서 고가의 브랜드 커피가 순식간에 시장을 장악했다. 특히 된장녀를 묘사할 때 스타벅스 커피 잔을 들고 돌아다니는 모습이 등장, 커피전문점이 허세의 상징으로 자리하면서 값비싼 원두커피 시장이 급성장했다. 이젠 매장에서 직접 원두를 로스팅(roasting)하는 이른바 '로스터리 카페'가 늘어나는 등 국내 커피시장도 소비자들의 취향 변화에 따라 점점 고급화·다양화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커피는 다량의 카페인이 함유돼 있어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지나치게 많은 섭취는 독이 되지만, 하루에 3~4잔 정도는 오히려 건강에 좋을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면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 지금까지 입증된 커피의 효능은 각성효과를 비롯해 노화를 막는 항산화와 항암, 다이어트, 기억력 개선 효과, 간 건강 향상, 당뇨. 치매. 심장병, 우울증 예방, 스트레스와 숙취 해소, 입 냄새 제거 효과 등 실로 다양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위암 원인인 장상피화생 진단율을 높이기도 하고 커피 속 카페스테롤이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일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또한 블랙커피만 마시면 위장과 심장에 좋지않고 동맥경화증에 걸리기 쉽다는 보고가 있는가 하면 치아상실 위험이 높다는 유해론도 만만치 않다.
소설 ‘고리오 영감’ 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대문호인 발자크는 빠르게 돈을 벌기 위해 블랙커피를 물처럼 마셔가며 작업을 하다 지나친 카페인 과다로 결혼한 지 5개월 만에 죽고 말았다. 그는 33살에 유부녀인 한스키 폴란드 백작부인에게 첫눈에 반해 청혼을 한다. 백작부인은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그의 열정에 감복, 나이 많은 남편이 죽고 나면 발자크와 결혼하기로 약속해 준다. 발자크는 백작부인이었던 여성과 결혼하려면 그에 걸맞은 지위와 재산이 필요하다고 생각, 커피를 하루에 수십 잔씩 마시면서 잠자는 시간도 아껴가며 마구 글을 써댔다. 그는 청혼한지 18년만인 51세에 꿈에 그리던 백작부인과의 결혼에 성공했으나 결혼 5개월 만에 죽고 말았다. 그가 평생 마신 커피는 무려 5만 잔이나 됐다고 한다.
사실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일이 잡히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특히 연휴에서 복귀한 월요일에는 모닝커피 한잔이 무척 생각난다. 지난해 커피 판매량이 소주 판매량 3조7000억원의 거의 3배가 됐다고 하니 이해가 간다. 그래서 은은한 커피 향을 뿌리치기가 담배 끊기보다 어렵다는 얘기가 나오나 보다. <투데이코리아 주필>
필자약력
△전)연합뉴스 경제부장, 논설위원실장
△전)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
△전)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키워드

#커피 #발자크
저작권자 © 투데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