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미안해,벤자민’ 펴낸 구경미 작가

2008년 새해, '미안해 벤자민'으로 간만에 팬들에게 귀환인사를 한 구경미 작가와 만났다. 소설집 '노는 인간(초판 2005년)'을 통해 그는 백수, 백조 내지는 다른 사람들과 유리된 인물상을 그려 내고, 또 그들을 통해 사람들을 관찰하고 세상을 들여다 봤다.

그러한 지난 번 소설집 '노는 인간'에 대해 손정수 교수는 “이 숨고르기가 어떤 새로운 방향을 준비하는 과정이었는지는 이후의 작품들을 통해 확인해야 할 듯 하다. '새로운 삶'을 향한 의욕이 현실화되는 순간을 목격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평가한 바 있다. 이번 '미안해, 벤자민'에서도 백수 혹은 백조가 등장하고, 주인공들은 물론 등장인물 대부분이 나른하거나 멍한 구석이 있다. 그럼에도, 이전의 단편들과는 뭔가 다른 게 있다.

'미안해, 벤자민'에서는 정신병원에 다녀온 주인공,그녀를 불안하게 만든다는 이유로 사설교도소에 갇힌 사채업자, 사채업자를 가둔 사설교도소 운영자 등이 얽힌다. 교도소 운영자는 그녀가 자신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음에 낙담하고, 그런 그를 지켜보는 교도소 관리인은 누구인지에게 모를 “잘해 주세요”라는 말을 뇌까린다. 그리고 주인공은, 글 말미에서 처음처럼 여전히 세상에서 얼떨떨한 상태이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자신없지만, 배낭을 챙겨매고 주체적으로 길을 나선다.

◆왜 '노는 인간'들에게 애정을 갖나?

글마다 그녀는 백수(백조) 캐릭터를 등장시키거나 적어도 사회와 잘 어울리지 못하는 부유하는 듯한 인간형(예를 들어 정신병자)을 내세운다. 이런 캐릭터에 천착하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지 묻자, 그녀는 “내가 가장 잘 아는 부류라 그런 것 같다. 소설가들은 자기가 잘 아는 부류를 다루는 경향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자신이 만사태평하고 세상사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평가를 주변에서 받는다고도 덧붙인다. 하지만 단순히 백수를 잘 알거나, 자기 성격이 만사태평형이라서 백수를 다루는 게 아닐 게다.

역시 그녀는 농담처럼 운을 뗀 '잘 알아서'라는 설명 뒤에 “모든 사람들이 지금은 아니지만 백수의 시절을 거쳐 왔고 백수가 될 수 있고, 사회에서 가장 불안한 사람들이 백수”라는 인식을 드러낸다. 다른 작품에 등장한 백수와 다른 인간형을 선보이고 싶었다는 이야기다. “다른 작품들에 보면 백수를 보면 좌절감에 빠진 백수가 나온다. 발버둥치지만 점점 빠져나오지 못한다. 그와 다른 '만족하는 백수'랄까 다른 백수 유형을 그려보고 싶었다”는 게 그녀의 변이다.

◆다름에 대해 인정해 주는 사회 원해

그녀의 이런 인식은 글에 투영되면서, 단순히 '일이 없는 혹은 일하지 않는' 사람이 '사회의 부적응자' 취급을 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데 머물지 않고 지나친 노동을 요구하는 사회, 누구나 일을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대한 문제의식으로까지 확대되어 읽힌다.

“노동이 꼭 사람을 파괴하는 건 아니나, 직업에 지나치게 빠져들어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다면 문제”라고 그녀는 이야기한다. “지금 사회가 지나친 노동을 요구하는 것 같다. 지나친 노동을 요구하는 것 같다. 거기에 대고 역설(逆說)로 파고들어 가 보고 싶었다”고 이야기하는 표정에서는 항상 등장하는 나른한 주

인공의 표정 대신 재기가 번득인다.

“현재 사회가 웰빙을 강조하는 것 같아도 노동의 강도는 오히려 더 세졌다. 인격이 오히려 파괴되는 게 아닌가? 난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

“잘해 주세요”라는 표현에 대해서도 그녀는 “이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라고 규정한다. “이해,포용,사회의 모든 것을 다 포용하라는 것 등을 포함한다”는 설명이다. 그런 차원에서 그녀는 사회와 삶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작가다. 그런 맥락에서 사회가 저평가하는 정신병자나 백수를 꾸준히 택하는 게 아닐까? 그래서 다음 글은 어떤 소재로 어떤 주인공을 내세워 풀어갈지 모르지만, “각박하고 답답한 사회에 숨구멍을 하나 뚫는다는 기분으로” 계속 글을 쓰겠다고 한다.

◆간단명료하면서도 능청스러운 문체가 매력

쓰는 글마다 그녀는 간단명료한 문장을 선보였다. 요새 유행하는 인터넷 소설처럼 문장파괴까지 치닫는 극단적 가벼움의 글도 아니고, 그렇다고 소설가 김훈과 유사한 칼로 깎은 듯한 문체도 아닌, 명료한 문장이다.

그녀의 팬들은 문체가 딱딱하면서도 유머가 곳곳에서 나오는 편이라고 평가한단다. 사회 부적응자면서도 기죽지 않는 독특한 군상들이 풀어가는, 명료한 문장들의 이야기가 그녀의 소설이다.

◆뭔가 내 안에 충분히 고여야 쓴다

그녀는 9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20대 후반의 나이로 신춘문예 등단, 데뷔가 나이에 비해서 늦은 편은 아니었다. 그녀는 이런 말에 “요즈음 문단에 나온 사람들 기준으로는 늦은 편인데, 그때 기준으로는 늦은 편은 아니었다”고 부언한다.

“어릴 때부터 소설을 쓰려고 했고, 대학 내내 준비했다”는 그녀는 그러나, 대학 시절(경남대학교 국문과 졸)에는 모교에 소설을 쓰는 교수가 없었고, 문인을 지망하는 선배들 중에도 시를 쓰는 사람은 있었어도 소설을 쓰는 사람들은 없었다고 이야기한다. 정형화된 등단 코스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걸어 비로소 문단에 합류한 셈인데, 이런 독립군적인 경험도 소설이 '다름'과 '존중'을 끊임없이 파고드는 데 원인으로 작용했을 터이다.

그녀는 다작을 하지 않는다. 이제 등단한지도 햇수로 10년. 이 기간 동안 동인들과의 작품집 1권에 단편소설을 묶은 소설집 1권, 그리고 장편소설을 이제 막 한 권 보탰으니 10년간 세 권, 거의 3년에 한 권꼴로 책을 낸 셈이다. 하루에 두세 시간 쓰는 게 전부라는데. “그 이상을 쓰면 밀도가 떨어진다”는 게 변명 아닌 변명이다.

“뭔가 내 안에 고여 있어야 쓸 수 있는 게 글이다”라고 말하는 그녀는 자신의 더딘 속도에도 안달복달하지 않고, 조용히 소설거리가 쌓이고 소설이 풀려나오기를 기다리는 사람같다. 바닷물을 염전에 가둬두면 소금이 어디선가 저절로 오는 것처럼 하얗게 엉기듯, 그녀도 충분한 시간을 들여 내면에 뭔가가 고이기를 기다린다. 그래서 그녀는 “다작을 부러워하지는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다만 “대작을 쓰고 싶은 생각은 있고, 지금의 과정을 거쳐 언젠가 대작도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기다림의 미학을 이야기한다.

“좀 더 부지런해져야지”라며 웃지만, 모두가 빨리 가는 사회, 획일적 기준이 통용되고 서로 으르렁거리는 사회에서,부적응자들을 내세워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 잘해 주세요”라는 이야기를 거는 그녀의 느린 행보도 나름대로 의미있어 보인다. '노는 인간'의 그저 나른하고 유리된 인간형이 '미안해, 벤자민'에서는 좀 더 바깥과 소통되는 인간형으로 업그레이드됐듯, 다음 작품에서 그녀가 선보일 변화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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