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무 회장


누구나 남이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보람과 행복을 느끼기 마련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반드시 내 이익만을 위한 것은 아닐 겁니다.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하게 되면 당연히 본연의 임무가 따르기 때문이지요. 즉, 공직자는 국민을 위해 일하고, 의사는 환자를 위해 일하고, 교사는 학생을 위해 일하고, 신문 방송은 국민의 눈과 귀가 되며, 버스와 택시는 시민의 발이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다만, 마지못해서가 아니라, 내가 내 일의 주인으로서, 목표와 확신을 가지고 일해야지 보람과 행복을 느끼고, 즐겁고 신명나게 일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일이 사실은 나를 위해 하는 일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꼭 필요한 일이 되고, 그 일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행복을 주는 참 좋은 일이기도 합니다. 결국 다른 사람의 행복 속에 내 일의 참된 가치가 있다는 것이지요. 내 일로 인해 다른 사람이 행복해진다고 느낄 때,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동시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되고, 나 스스로도 행복과 보람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그런 일을 하면서도 언제나 내 이익만 앞세운다면 늘 불안하고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되기 쉽겠지요. 내가 내 일의 주인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주인의식입니다.

일을 통해 얻는 보람과 행복뿐만 아니라 일 자체의 성과도 주인의식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엄청나게 달라집니다. 특히 누가 시켜서 마지못해 하는 일은 그냥 ‘시간 때우기’에 가깝게 되어 생산성이 거의 바닥 수준이 되고 말지요. 누가 거저 가져다주는 일의 경우에도 비슷한 결과가 많이 나타납니다. 개도국에 지원되는 원조에 의한 사업이 대표적인 예로 흔히 거론되고 있지요. 자기가 스스로 해내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원인분석이 됩니다. 그만큼 일에 대한 주인의식(Ownership)과 동기부여(Motivation), 자발적 참여(Self Participation)가 중요하다는 뜻이겠지요. 우리 새마을 운동의 경험과 교훈이 바로 그것이기도 합니다.

‘수처작주(隨處作主), 입처개진(立處皆眞)’이라는 말은 당나라 선불교의 고승 중 한분인 임제(臨濟) 선사의 가르침 중에 나옵니다. “어디든지 그곳에 따라 스스로 주인이 되어라. 그러면 서있는 곳 모두가 참(眞)이니라.” 라는 뜻이지요. 임제 의현(義玄) 스님은 한국 불교 조계종이 초대 조사로 받들고 있는 조계산(曹溪山) 육조(六祖) 혜능(惠能) 대사의 5대 법손으로, 임제종의 창시자입니다. 고려 말에 우리 선불교의 중시조인 태고(太古) 보우(普愚) 스님이 당·송 때의 임제종의 선법을 받아온 이후 우리나라 선불교는 오늘날까지도 임제종의 법맥을 이어오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선불교의 교과서로 유명한 서산대사 청허당(淸虛堂) 휴정(休靜) 스님의 ‘선가구감(禪家龜鑑)’ 89절에 ‘따로 임제종의 종지를 밝힘’이란 별도의 절을 두고 있고, 그 책의 발문(跋文)을 쓴 사명대사 유정(惟政) 스님이 스스로 임제 26세라고 밝히고 있을 정도입니다.

임제 스님의 가르침을 현대식으로 표현한다면, “어디에 있든지 스스로 자기 삶의 주인이 되라는 ‘주인의식’이 모든 진리와 통하는 지름길이다.”일 것입니다. 저는 이 가르침이, 염화시중(拈花示衆)의 미소로써 교외별전(敎外別傳)의 선종(禪宗)의 길을 열어주신 부처님과 마하가섭(摩訶迦葉)의 뜻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연꽃이 일상의 더러움 속에서도 청정한 아름다움을 피워내듯이, 세상의 혼탁함 속에서 자신의 삶의 고단함을 이겨내면서, 동시에 뭇 중생의 삶에도 희망과 행복을 주는, 살아있는 참선(參禪)이 바로 ‘주인의식’ 그 자체가 아닐까? 하는 믿음이지요. 오늘날 우리가 처해 있는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줄 수 있는 것도 다름 아닌 ‘수처작주’의 ‘주인의식’이라고 저는 굳게 믿습니다. <투데이코리아 회장>

필자 약력
△전)농림수산부 기획관리실장
△전)세계식량농업기구(FAO)한국협회 회장
△전)농어업농어촌 특별대책위원회 위원장
△전)한국농어촌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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