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병기 교수

지난 정부 농정의 키-워드는 뭐니 뭐니 해도 6차산업이다. 농업의 6차산업화로 부가가치를 제고하고, 나아가 농촌에 활력도 같이 불어넣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6차산업이 무기력에 빠진 농업을 살리고, 무너져 내리는 농촌도 구하는 그야말로 전가의 보도인양 그렇게 등장하였다. 6차산업이 새로운 농정의 대명사였다. 급기야는 우리 농정이 온통 6차산업 일색으로 각색되다시피 하면서 여기에 모든 농정의 역량을 쏟게 된다. 6차산업 육성에 많은 예산이 배분되었음은 물론이고, 지방자치단체마다 6차산업 육성 기구를 설치하는 등 그야말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였다.

6차산업이란 1차산업과 2차산업 3차산업의 1,2,3 숫자를 더하든지 곱하든지 해도 6이 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잘 아시다시피 농업 자체만으로는 부가가치가 낮으니, 여기에 가공과 같은 2차산업 활동을 더하고, 다시 여기에 판매, 숙박서비스와 같은 3차산업 활동까지 보태면 농업 및 농촌의 소득을 효과적으로 끌어올리는 하나의 방편이 될 수 있다고 하는 것이 6차산업 생각의 골자다. 1차, 2차, 3차산업이 융·복합된 6차산업이 어려운 농업, 농어촌의 위기를 헤쳐 가는 하나의 매력적인 전략산업으로 등장하는 배경이다.

그렇게 떠들썩하게 6차산업을 띄웠지만 무엇이 바뀌었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6차산업 도입에 따른 다양한 사업 활동으로 분주해야 할 농촌이지만 실상은 여전히 적막감만 감돈다. 지금처럼 그렇게 무덤덤하게 남의 일 바라보듯 뒷짐 지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말만 요란했지 아무런 결실도 못 맺은 채로 뒷전으로 밀려나면서 이제는 어정쩡하게 연명하고 있는 그런 처지가 되었다. 아직 어떤 수확을 기대하기에 시기상조라고 강변해 봐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무엇을 기대하기에 6차산업의 프레임 자체가 영 미덥지가 않다는 것이다.

6차산업 육성전략이 제자리를 못 찾고 표류하는 것은 무엇보다 그 뿌리를 관념에 두고 있는 데서 비롯되는 현상으로 이해한다. 정책은 무릇 구체적 실재를 다루어야 한다. 그래야만 실재를 실제로 바꾸는 변화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6차산업이란 현실적으로 실재가 있는 개념으로 보기 어렵다. 농업생산활동에 가공 등 2차산업을 접목하고, 여기에 3차산업인 판매, 숙박활동까지 합쳐 융복합시킨 하나의 산업, 소위 6차산업이란 것을 실제로 상정하기 쉽지 않다. 6차산업이란 실재가 아니고 관념이라는 것이다.

6차산업을 1,2,3차 산업의 융·복합으로 창출된 새로운 산업으로 보기 어렵다면 그것은 단지 1차, 2차, 3차 산업 활동들이 단순히 서로 합쳐서 이루어지는 경제활동을 의미하는데 지나지 않는다. 농업활동에 단순한 형태의 가공과 숙박·판매와 같은 2,3차산업 활동들이 단지 보태진다고 해서 과연 침체된 농촌경제를 살리는 어떤 잠재력을 거기서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손 치더라도 노인들만이 남아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농촌에서 1,2,3차 산업이 결합된 이러한 경제활동의 활성화가 과연 가능한 것이기는 한 건가? 지금까지 쭉 장려해왔지만 별반 효과를 못 거두었던 기존의 농산물가공, 직거래, 숙박 등 활동들과 6차산업의 그것과는 무엇이 다른가? 더욱이 보편적 경제원리로 인식되고 있는 분화와 전문화에 역행하는 이러한 주장의 합리적 근거는 무엇인가? 6차산업은 이런 저런 물음에 그 어떤 대답도 하지 않고 있다. 관념이 다시 관념을 낳는 꼴이다.

이제 6차산업을 아무리 설명해도 곧이 곧 대로 듣는 사람도 없고, 말하는 사람조차 자기가 한 말의 의미를 스스로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속 빈 강정 같은 빈껍데기 정책으로 전락하고 있다. 칸트는 ‘직관 없는 개념’은 공허하다고 했다. 경험에 바탕을 두지 않은 사유는 내용이 없어 공허하다는 것이다. 현실과 유리된 관념에 의존해서는 현실 문제를 극복하고, 또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는 실질적인 정책대안 마련이 어려움을 지적하고 있다. 관념 농정이 공허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검정되지 않은 설익은 관념적 정책들이 난무하면서 농정이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6차산업 정책이 그 단적인 사례다. 농정의 신뢰 회복이 시급한 과제임을 말해주고 있다. 빨리 갈려고 마음만 앞서는 바람에 헛디디고, 또 강박관념에 쫓겨 서두르면서 보이는 갈지자 행보 속에서 신뢰를 구하기란 연목구어다. 신뢰는 어떻든 그 정책이 내세우는 기대한 효과를 가시적으로 보여주는데서 쌓인다. 그것이 국민에 대한, 농민에 대한 약속이기 때문이다.
정책이 약속한 그 무엇을 실제로 보여주려면 기본적으로 농정의 입장이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한다. 충분히 검정이 된 후에 따져보면서 신중하게 도입되고 추진될 때 비로소 실질적인 작은 성과라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적 담론에 치우치고, 성급한 아이디어에 의존하는 관념농정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이다. 돌다리도 두드려보는 그런 심정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앞을 향해 걸어가는 믿음 가는 농정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해 본다. <협성대 교수>
필자약력
△협성대학교 인문사회과학대학 학장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신활력사업 자문위원회 위원
△한국농어업․농어촌특별대책위원회 제2분과위원
△한국농어촌공사 비상임이사
△한국농어촌유산학회 회장

키워드

#6차산업 #관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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