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렴,소신,보수적 성향......요직 맡길 외인부대로 적격

처음에는 자신은 대통령감이 아니라고 했다. 국회의원 정도면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평했다. 국회의장은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언론에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당을 구하기 위해서” 대선주자로 나섰다. 그러다가 당내 경선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대선 패배 이후 그는 자신을 '차출'했던 당의 당적을 버렸다. 이에 그치지 않고 다른 정당으로 소속을 바꿀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돈다.

'미스터 쓴소리'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조순형 무소속 의원의 이야기다. 그가 구하기 위해서 나섰던 당은 민주당이고, 이제는 한나라당행에 대한 이야기가 나돈다. 한나라당 영입과 함께 그의 국회의장 도전설, 이명박 차지 정권의 법무부 장관 내정설 등이 나돈다.

◆각당 벌집 쑤셔놓은 듯

그의 한나라당행 검토 소문에 정계는 벌집을 쑤신 듯 하다. 일단 친정 민주당이 가장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유종필 민주당 대변인(최고위원)은 “또 하나의 철새가 되려는 것이냐”고 몰아붙였다. 총선을 준비 중인 이용섭 건교부 장관은 아예 조 의원을 정면 겨냥해, “정계를 은퇴하시라”고 강공을 폈다. 한나라당에서도 '협상설'을 부인했다.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는 “한나라당 입당을 제안한 적도, 타진받은 적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주변을 통해 계속해서 한나라당 타진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한나라당과 대립각을 세웠던 장전형 전 민주당 대변인이 일찌감치 한나라당에 가 있는 것을 일종의 '메신저' 역할로 보기 때문이다. 그에게 18대 공천을 보장해 주는 것을 조 의원 자신의 거취 문제와 '패키지'로 묶어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구체적인 이야기까지 나도는 것은 조 의원이 장 전 대변인과 깊은 인연을 맺은 데다가 조 의원이 워낙에 책임감 있게 사람을 챙기기 때문.

한 마디로 그가 현재 재보궐로 뱃지를 단(6선인 그는 지난 2002년 탄핵 역풍으로 잠시 야인 생활을 하다가 재보선으로 다시 국회에 돌아왔다) 성북 을 지역구 대신 자신이 과거 갖고 있던 강북 을에서 다시 출마하고 싶어한다는 것과 과거 인연이 있던 장 전 대변인의 지역구 공천을 보장받기 위해서 '평소에 안 하던 일'을 하고 있다는 소리로 요약된다.

이것만 보면, 철새라고 요약해도 할 말이 없을 듯도 하다. 그러나, 단지 '철새정치인으로 변질됐다'라는 것만으로 각당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것인가?철새라도 깎아내려도 파워가 너무 크다는 데 문제가 있다.

◆사생활 깨끗하고 청렴, 정치적 색채 일부 보수적

조 의원은 사생활에 흠잡을 데가 없고, 청렴하다고 평가받고 있다. 그는 민주당 당내 대선후보 경선 때에도 돈을 안 쓰는 깨끗한 캠프를 꾸렸다.

그는 민주당에 몸담아 일견 범여권으로 분류될 수도 있지만, 대통합민주신당(구 열린우리당)의 대체적인 노선과는 분리되는 길을 걸어왔다. 이를 테면 사학법 등 몇몇 부분에서 그는 보수적인 시각을 견지했다. 탄핵 문제로 노무현 대통령과 악연을 맺기도 했다. 이런 부분만 떼놓고 보면 한나라당과 크게 비교되지 않는다.

오히려 조 의원은 지난 여름, “잡탕식 대통합엔 관심없고 참여할 의사도 없다”고 일갈해 대통합민주신당 및 범여권과 선을 긋기도 했다. 이런 점만 놓고 보면 그가 한나라당행을 택하거나 이명박 정부에서 일한다고 해도 전혀 이해못할 구도는 아니다. 철새가 아니라 원래 있을 자리를 찾아간다는 식으로 유권자들에게 이해받을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

◆신민주포럼 등 수도권 민주당 몰고 움직일 수도

조 의원의 친정격인 민주당은 이번 대선에서의 대패로 수습이 불가능할 정도로 내상을 입었다. 한때 접었던 대통합신당과의 합당 문제를 강경파 박상천 민주당 대표가 먼저 다시 꺼내든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박 대표와 그를 따르는 호남권 민주당과는 반대로 박 대표 퇴진을 요구하다 탈당한 김영환 전 의원과 아직 당내에 있는 김경재 전 의원 및 비례대표 등 '신민주포럼' 인사들은 조순형 의원을 중심으로 한나라당과 접촉을 넓혀가는 중으로 알려졌다.

조 의원은 이르면 1월말, 신민주포럼 인사 100여명과 함께 한나라당에 집단으로 입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소리까지 나온다.

이렇게 대단위로 이동이 있다면 단순한 철새 정도가 아니라 정치적 대변혁의 페이지를 쓴다고 볼 수 있다. 호남정당, DJ당의 이미지가 아직 남아있는 민주당을 둘로 쪼개 정치적 지향을 따라 이동한다는 상징성이 있기 때문이다.

◆MB, 조순형 풀어 朴,姜 잡으려나?

더욱이 조순형 의원의 입당 추진에 “당을 왔다갔다 하는 건 좋아보이지 않는다”며 한나라당에서 볼멘 소리가 나오는 것은 단순히 어느 소집단이 유입되고 그 집단의 리더가 껄끄럽기 때문이 아니다.

현재 친박계열에서는 적어도 이들 80명은 공천하라는 식으로 이명박 당선자 측을 압박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각에서는 강 대표측도 약간의 지분을 요구하고 있다는 소리까지 들린다. 이 당선자측으로서는 “공정한 심사를 통한 공천”을 외치고 있지만 이런 압력을 완전히 무시하기도 어렵다. 아무리 이명박 당선자가 청와대의 다음 주인이 될 상황이라 해도, 친박계열의 인적구성의 질과 양은 무시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한나라당 공천으로 18대 국회의원직에 도전할 상당수 인사는 친이가 아닌 친박일 수 밖에 없고, 그렇다면 정권을 잡고 있다 해도, 국회에 어느 정도 거리감이 있는 인사들로 채워지게 되는 상황이 생겨 이 당선자로서는 국정운영에 여당의 눈치까지 때때로 봐야 하는 답답한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이럴 바에야 아예 '외인부대'를 풀어 지분을 요구하는 집단들과 경쟁을 붙여 어느 정도 이이제이를 하는 것도 적당한 방안이다. 공천이 평소 이 당선자가 갈구하는 대로 “여론조사 등 공정한 조사를 통해 이뤄진다면” 조순형 의원과 그가 몰고올 인사들이라고 해서 당내 역학관계에 따라서 공천에 배제될 사유가 없다. 그렇다면 이들이 총선 정국에서 움직이고, 실제로 그 중 일부가 원내에 진출해 독자적으로 행동한다면 그것은 실상 그만큼 친박계열을 견제했다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차기 국회에서는 한나라당이 '허니문 효과'로 다수파가 될 것이 분명한 가운데, 이들을 어떻게 움직여야 되는가라는 문제, 즉 국회의장이 누가 되는가가 이 당선자에게는 남아 있다. 또 요직 중 하나인 법무부장관 역시 검찰 등 여러 조직을 거느리는 핵심부처라 선뜻 아무에게나 줄 자리는 아니다. 이런 중요한 자리들의 경우, 원래 자신과 가장 가깝거나 철학이 비슷한 사람들을 영입하는 게 전례다. 그러나, 조 의원 같은 강골에 '쓴소리'를 잘 하는 스타일의 정치인을 이런 자리에 앉혀 놓으면 100%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공정성을 갖고 알아서 일할 묘수일 수 있다.

결국 조순형 의원의 몫은 조 의원 스스로가 철새행각을 하며 부풀렸다기 보다는 한나라당 등 여의도 주변의 상황이 키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나라당 내 사정이 복잡해 질 수록, 그리고 다른 정당들의 셈법이 복잡해질 수록 조 의원의 몸값은 더 올라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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