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순직 주간


인구절벽(人口絶壁, Demographic cliff)이란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지난 2014년이다. 미국의 경제학자 해리 덴트가 제시한 개념으로 생산가능인력인 15세에서 64세 사이의 인구비율이 급속히 줄어드는 현상을 말한다. 소비를 많이 하는 40대 중후반 인구가 급감하는 인구절벽 현상이 발생하면 소비는 물론 생산의 대대적인 위축을 초래, 경제활동에 심각한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

전 세계에서 심각한 인구절벽이 우려되는 나라 가운데 우리나라가 우선순위로 꼽힌다. 해리 덴트는 2015년 10월 세계지식인포럼에서 ‘한국이 2018년경 인구절벽에 직면해 경제불황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며 이민촉진과 출산 육아장려책이 시급하다고 경고했다. 미국 뉴욕 타임즈는 ‘한국의 최대 적은 북핵이 아니라 인구’라고 지적하는가 하면, 유엔미래보고서(2009년)는 인구 감소로 가장 먼저 소멸되는 나라중의 하나로 한국을 꼽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인구 재앙에 대한 우려는 이미 심각한 단계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작년 국내 출생아는 35만7700명으로 30년 새 반토막이 났다. 6.25전쟁때도 한해 50만명 넘게 태어났다. 가임여성 1명이 평생 동안 낳을 수 있는 평균자녀수인 합계출산율이 작년에 1.05명으로 통계청이 통계를 잡기 시작한 1970년 이후 최저치다. 현재의 인구수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합계출산율(2.1명)의 절반수준이다. 우리 합계출산율 1.05명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 평균1.68명(2015년)을 크게 밑돌며, 대표적인 저출산국가인 일본(1.46명) 싱가포르(1.24명)에도 못미친다. 출생아수가 사망자수를 밑돌면 ‘도시가, 나라가 죽어간다’고 말한다. 국가소멸이라는 비관적인 용어가 비단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지구촌 도처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는 곧바로 저성장과 일자리감소로 이어지고, 그 영향으로 결혼을 아예 않겠다는 비혼(非婚) 과 혼인 연령이 늦춰지는 만혼(晩婚) 현상이 두드러지며, 다시 저출산 저성장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된다. 이같은 저출산과 급속한 고령화 현상이 우리나라에서 현재 진행중이다. 지난해 인구 1000명당 혼인 건수는 5.2건으로 역대 최저수준이다. 비혼 못지않게 결혼의 고령화 현상도 심각하다. 작년 남자 초혼연령은 32.9세, 여성은 30.2세로 만혼 추세가 급속하고, 이는 곧 저출산 인구감소로 이어진다.

이처럼 만혼과 비혼이 급증하는 것은 고용사정이 악화하면서 수입에 대한 우려가 커진데다 집값이 오르면서 결혼 후의 안정적인 생활이 힘들고 자녀 양육환경 열악, 교육비 부담 등에 관한 걱정이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젊은이들의 40%이상은 ‘굳이 결혼을 해야 할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점도 큰 문제다.

성과 없는 저출산 대책

정부가 저출산 문제를 국가 의제로 설정, 대응에 나선 것은 2005년부터다. 적정인구를 유지하고 국가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저출산 고령사회기본법을 만들고 지난 12년간 무려 126조원의 재정을 투입했으나 출생아수는 오히려 줄어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저출산 탈피에서 실패했다. 역대 정부마다 무상보육 출산휴가제 단축근로제 아동수당확대 등의 대책을 내놓았지만 백약이 무효인 셈이다.

궁리 끝에 최근 정부에서 흘러나온 방안들도 다양하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파격적인 수준의 자녀 양육비 지원이 필요하다고 보고, 천문학적인 재원마련을 위해 가칭 ‘저출산 극복을 위한 목적세’(저출산세) 도입을 검토한다는 것이다. 세계 유례가 없는 실험이다. 저출산세가 신설된다면 출산 양육수당은 물론 주거비 교육비 지원도 가능할 것이고, 결혼한 부부가 아이를 둘 이상 낳을 경우 둘째 아이부터 1억원짜리 바우처(이용권)를 주는 대책도 생각해볼만 하다는 아이디어다. 국가가 소멸할지도 모르는 판에 목적세 라도 신설해서 돌파구를 찾아보자는 구상은 있을 수 있겠으나 쉽지 않은 과제다.

일본의 처절한 저출산 대책

일본의 저출산 극복을 위한 노력은 역사가 오래됐다. 1989년 출산율이 1.57명으로 떨어진 이른바 ‘1.57쇼크’로 일본 사회가 충격을 받은 뒤 1990년대부터 줄기차게 인구대책을 펴왔으나 실패를 거듭했다. 1999년엔 톱스타 여배우의 남편을 홍보대사로 등장시켜 ‘육아를 돌보지 않는 남자를 아빠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캠페인까지 벌인 적이 있다. 아베정부는 저출산 극복을 최우선 국가정책 어젠다로 설정하고 ‘모든 실행 가능한 실험을 통해 일본 사회에 1억명의 인구가 활동할 수 있도록 하자’는 목표를 내걸었다. 총리 직속으로 2015년 이른바 ‘1억 총활약 추진실’이 만들어져 저출산 극복 작업을 총괄한다.

추진실 측은 그들의 목표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싶지만 현실적인 이유로 못낳는 상황을 정부가 모두 제거해준다’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일본의 대책에는 청년실업대책은 물론이고 임금인상 노동시간단축 여성정책 비정규직처우개선 등이 망라되어있다. 이러한 정책들은 모두 우리에게도 눈에 익은 것들이다. 최근 일본에선 일과 생활의 균형을 이룬다는 워라밸(Work & life balance)의 정착을 위해 벼라별 방안들이 동원된다고 한다. 직장 퇴근시간에 드론을 띄워 정시 퇴근을 독려하는가 하면, 프리미엄 금요일이라 해서 매주 금요일 오후 세시면 퇴근하도록 하고, 워라밸에 협조하지 않는 기업을 블랙기업으로 감시한다는 것이다.

사실 일본의 1억 총활약 계획을 보면 우리의 갖가지 정책들과 엇비슷하다. 그러나 엄청나게 다른 한 측면을 간과해선 안될 것이다. 우리가 교훈으로 삼아야 할 대목이다. 우리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 중인 최저임금 인상, 근무시간 단축,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청년일자리 창출, 아동수당 확대 등도 모두 일본의 1억 총활약 계획에 들어있다. 이런 문제들을 일본은 저출산 극복, 인구절벽 대응책으로 접근하면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낸다는 사실이다. 반면 우리는 같은 정책을 갖고도 근로자를 위한 정책, 양극화 극복을 위한 대책, 분배의 확대 등에 초점이 맞춰지다 보니 국민들의 호응이 낮고 반발도 심한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나라가 사라질 위험을 초래하고 있다는 저출산 문제를 극복하자는데 무조건 반대만 할 국민이 있을 것인가. 물론 인구절벽이라는 근본적이고 장기적이며 피부에 와락 와닿지 않는 어젠다를 내세우기 보다 노동자 우대를 내세우는 정책이 표를 얻는데는 훨씬 유리할 것이다. 정치권이나 위정당국이 국가 백년대계를 위하기보다 눈앞의 선거나 포퓰리즘에 더 비중을 둔다면 불행이다. 눈앞으로 다가온 남북정상회담등 국가적인 대형 행사 못지않게 인구절벽 문제 또한 중요하다. 이 문제 하나만 제대로 된 방향을 제시하고 초석을 놓아도 문재인정부는 후세에 좋은 평가를 받을 것이다. <투데이코리아 논설주간>

필자약력
△전)동아일보 경제부장, 논설위원
△전)재정경제부장관 자문 금융발전심의위원
△현)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관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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