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여 갈등 속 서울시도 사실상 손 놔… 정치·사회적 문제로까지 비화 조짐

▲ 지난 2016년 4월20일 노량진수산시장 정상화 촉구 집회를 가진 어민들.


[투데이코리아=오주한 기자] 노량진수산시장 신시장 이전을 둘러싼 수협과 일부 상인 간 갈등은 2016년 3월16일 신축건물이 개장하면서부터 불거지기 시작했다.


수협은 시장 현대화 사업을 통해 하루 평균 3만명 수준인 관광객을 2020년까지 4만명으로 늘릴 수 있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크게 낙후된 시설 탓에 생선 썩는 냄새 등 비린내가 심한 구시장 대신 신시장으로 옮겨 외국인을 위한 관광코스도 만든다는 계획이었다.


이를 위해 수협은 2006년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해 명분을 확보하는 한편 2층 경매 관람로, 3층 포토존·카페, 4층 분수대, 5층 식당가 조성 등 구체적 운영방침도 수립했다.


반면 이전을 거부한 상인들은 신시장이 시장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건물 천장이 낮아 수산물 냄새가 심하고, 가게 면적이 기존 7㎡에서 5㎡로 줄어들게 되며, 2층의 경우 손님 접근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이에 수협은 구시장에서 영업을 지속하는 상인들을 무단점유자로 간주하고 무단점유사용료를 내게 하는 한편 명도소송까지 제기했다. 법원은 1~2심에서 수협 측 손을 들어줬다.


수협은 신축건물 개장 직후인 3월22일, 4월1일에는 용역을 동원해 구시장 입구봉쇄를 시도하기도 했다. 구시장 상인들에게 얼음공급을 중단하는 조치도 취했다.


갈등이 격화되자 결국 일은 터졌다. 4월4일 오후 1시30분께 영등포구의 한 노래방에서 상인 측 비대위 부위원장 김모 씨가 수협중앙회 최모 경영본부장, 김모 TF팀장에게 횟칼을 휘두른 것이었다. 최 본부장, 김 팀장은 각각 허벅지, 어깨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범행 직후 수산시장으로 도주한 김 씨는 다시 용역직원 나모 씨에게 흉기를 휘두르다 검거됐다. 세 명 모두 부상으로 그쳤지만 자칫 살해사건으로 이어질 수 있는 아찔한 사건이었다.


이 사건이 벌어진지 불과 3일만인 4월7일에는 신시장을 이용하려는 손님을 구시장 상인이 흉기로 위협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사건은 손님들에 의해 동영상으로 촬영돼 유튜브에 오르기도 했다.


▲ 최근 용역 개입설이 불거지면서 운동권 학생들까지 노량진수산시장 사태에 가세했다.


“수협, 용역 불렀다” 소문에 운동권도 가세


수협과 상인 간 갈등은 신축건물 개장으로부터 약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봉합되지 않고 있다.


이전 거부 상인들은 “상인들을 죽이려고 하고 오직 돈에 미친 수협을 규탄한다” “수협의 이 만행은 갑의 횡포에 가까운 행동으로서 돈벌이에 눈이 먼 수협의 갑질” “신시장은 좁고 임대료가 비싸 장사를 할 수 없다” 등 규탄을 쏟아냈다. 수협 측은 “수산물 위생문제, 소비자 안전, 먹거리 권리를 위한 조치”라고 반박했다.


김임권 수협중앙회장은 상인들에게 양보할 만큼 양보했다는 입장이다. 그는 “두 차례 대화에서 판매면적, 임대료 관련 300억원 상당의 제안을 하는 등 양보를 많이 했다”며 “(잔류 상인들은) 적잖은 수입을 올리고 여러가지를 누리는 사람들로 보호할 약자로 보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수협은 판매장 협소 문제는 신축건물 2층 옥외주차장을 판매장으로 용도변경해 1000평을 추가로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비싼 임대료와 관련해서는 영업안정화 때까지 협의를 통해 3~6개월 임대료를 면제하기로 했다. 고객접근성 제고를 위해 엘리베이터 1대를 추가설치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그러나 이전 거부 상인들은 이마저도 거부했다. 비상대책총연합회 관계자는 “한 건물에서도 도로를 앞에 두고 있는지, 옆에 두고 있는지에 따라 상권이 달라진다”며 “하물며 1층, 2층은 (차이가) 말할 것도 없다”고 주장했다.


갈등이 장기화되면서 지난달 8일에는 구시장 주차장을 폐쇄하려는 수협 관계자들과 구시장 상인들 간 물리적 충돌이 빚어져 수 명이 부상당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급기야 지난달 말에는 수협 측에서 다시 용역 직원 300여 명을 불러들였다는 소문이 상인들 사이에서 확산되기 시작했다.


소문이 돌면서 노량진수산시장 사태는 정치·사회적 문제로까지 비화되고 있다. 서울 소재 주요 신학대에 재학 중인 운동권 학생들이 지난달 28일과 30일 각각 집결해 용역 측과 충돌을 대비하는 상황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시위 현장에서는 국정농단 혐의로 구속된 최순실 씨가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 사업에 개입했다는 주장과 함께 박원순 서울시장 개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서울시는 작년 10~12월 사이 다섯 차례에 걸쳐 갈등조정위원회를 열었으나 결렬이 반복되자 사실상 손을 놓은 상태다.


이 사이 노량진수산시장 매출은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수협에 따르면 매출액은 2016년 3천37억원, 작년 3천163억원을 기록했다. 구시장 시절에 비해 10% 가량 줄어든 규모다. 상인들은 이대로 갈 경우 구시장은 물론 신시장까지도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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