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은경 작가


4월 5일은 식목일이자 청명이고 다음날인 6일은 한식이었다. 4일께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서 3일 날 당겨서 성묘를 갔다. 증조할아버지와 할아버지 두 분의 산소가 나란히 있는 고도 산소와 증조할머니와 할머니 두 분의 산소가 나란히 있는 높은재 산소, 그리고 오래 전에 요절하신 시어머니의 뜸골 산소, 이렇게 다섯 산소를 다녀왔다. 옛날보다는 길이 잘 뚫려 걷는 거리가 많이 단축되니 힘들지도 않고 소풍 나온 것 같이 가볍다. 날씨는 20도가 넘어 화창하고 온 누리에 터져 나온 꽃망울이 사방에 지천이라 절로 입이 벌어졌다. 벚꽃에 매실꽃, 살구꽃, 자두꽃이 화려하다. 고도리가 특히 자두로 유명한 곳이라 만개한 자두꽃을 그날 실컷 봤다. 자두꽃이 벚꽃 피는 시기에 피며 꽃 모양이 복사꽃과 비슷하지만 색깔은 하얗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용전리에 가장 많은 복숭아 과수원의 복사꽃은 꽃망울을 터뜨리기 직전이다.

할아버지 고도 산소에 예전에는 별로 눈에 띠지 않던 분홍빛 진달래가 이곳저곳 보인다. 길 바로 옆보다는 소월의 싯귀 대로 –저만치- 무리지어 피어 있다. 꽃을 보자 좋은 생각이 났다. 몇 가지를 꺾어다가 두 분 산소에 예쁘게 꽂아 드렸다. 남편이 진달래꽃은 꺾꽂이로 옮겨 심을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돌아 올 때 큰 가지 여럿을 꺾어 와서 마당 곳곳에 꽂아 보았다. 또 할아버지 산소 앞에 있는 내 손바닥만 한 아기 소나무 세 그루(?)도 파와서 고택 앞에 심었다. 아 참! 아무 산에서나 파오거나 꺾어 오면 안 되겠지만 남편 할아버지의 산소가 있는 산은 남편 명의의 산이란 걸 말씀드린다. 오늘 심은, 산이 고향인 나무들 중 몇이나 생명을 부지하고 살아남을까? 열심히 물 줘서 다 살리고 싶다.

오후엔 영천 시장 농약사에 가서 호박 모종 세 개와 여러 종류의 꽃씨를 사 왔다. 남편이 뒷 마당에 하나씩 나눠 심었다. 그는 호박잎쌈을 좋아하는지라 벌써부터 침을 삼킨다. 잘 자라줘야 할 텐데.

날씨가 따뜻해지니 지난겨울 심은 시금치가 한 고랑에 가득이다. 게다가 형님이 술술 뿌린 상추씨도 벌써 발아해서 뾰족뾰족 손가락을 내밀고 있다. 시금치는 내가 특히 좋아하는 채소다. 한 소쿠리 가득 뽑아서 살짝 데쳐 간장과 참기름 깨소금에 무치면 다른 반찬이 필요 없다. 하지만 시금치 뿐 일까? 내가 씨를 뿌리지 않아도 저절로 생긴 봄나물이 텃밭 여기저기에 얼굴을 내밀고 있다. 냉이와 쑥, 민들레가 그것이다. 쑥 빼고는 처음엔 분간하기도 힘들었다. 비슷하게 생긴 풀이 왜 그렇게도 많은지........

다음 날, 식목일 전날엔 예보대로 비가 오기 시작했다. 영천 지방엔 20미리 정도 온다는데.... 점심을 먹고 나자 비가 대충 그쳐 마당으로 나갔다. 좁쌀보다 작은 꽃씨를 뿌리고 위에 흙을 덮고 하는 동작을 한 시간 가량 반복했을 것이다. 어떤 꽃을 심었느냐고? 채송화 봉숭아 과꽃 분꽃 접시꽃 맨드라미........ 남편은 어릴 적 보았던 향수어린 꽃씨를 잔뜩 샀다. 사실 난 허브 동산을 만들고 싶었는데. 하지만 허브는 영천의 농약사에 있을만한 놈이 아니다. 언젠가 허브 농원에 가게 되면 그 때 사올 것이다. 그래서 나만의 허브 꽃밭을 만들어야지.

식목일엔 손님이 왔다. 비와서 촉촉해진 땅에 줄 선물을 잔뜩 들고서. 우리가 이사 온 후에 5년생 무궁화 10그루를 가지고 와 심어 주었던 무궁화 전문가인데 약속대로 1-2년생 무궁화 150그루를 가지고 온 것이다. 와아! 드디어 우리 집이 무궁화 하우스가 되는 모양이다. 나라꽃이지만 제대로 대접을 못 받고 있는 무궁화. 백일 동안 핀다는 무궁화, 그것도 아주 덥고 힘든 여름 한 철 내내. 과연 남들에게도 보일만큼 진정 자랑스런 무궁화를 피워낼 수 있을까? 그만치 예쁘게 잘 자라도록 뒷바라지 할 수 있을까?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런 날이 분명히 오겠죠? 여러분도 응원해 주실 거죠?

<작가>
조은경 약력
△2015 계간문예 소설부문 신인상 수상
△소설 '메리고라운드' '환산정' '유적의 거리' '아버지의 땅'등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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