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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순직 칼럼]신문의 날, 더 포스트(The Post)

    기사입력 2018.04.12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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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순직주간.png▲ 권순직 주간
     
       
              
     
    신문의 날은 4월 7일이다. 1896년 독립신문이 창간된 날을 기념해 제정되었다. 그날 즈음하여 필자는 미국 영화 ‘더 포스트’를 관람했다. 40여년간 신문기자 언론인 명패 달고 살아온 필자의 이 영화 관람 소감은 ‘부럽다’ ‘부끄럽다’였다. '아! 그래서 미국이 선진국이고 멋진 나라로구나' 하고 새삼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왜 우리는, 나는 그렇지 못하는가' 하는 부끄러움을 재확인하는 시간이었다.
    물론 빛나는 언론인들의 활약이 있는 미국에서도 지금 트럼프대통령과 언론간의 낯 뜨거운 싸움이 빚어지고 있긴 하다. 우리나라에선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방송장악을 위한 온갖 시도가 끊이지 않는다. 지금도 국회에선 공영방송 헤게모니를 놓지 않으려고 방송법 개정과 관련하여 희한한 일이 진행 중이다. 그래서 더 포스트를 본 소회가 더 께림칙하다.
     
    영화에 등장한 멋진 대사들, “인쇄 해!”
     
    최근 국내에서 상영된 영화 ‘더 포스트’(The Post)는 미국의 유력지 워싱턴 포스트가 30여년 동안 미국 국민을 속인 베트남전쟁 개입과 전쟁과정에서의 조작 은폐 사실이 담긴 이른바 ‘펜타곤 페이퍼’를 폭로하고 보도하는 과정의 숨 막히는 실화다. 패전의 치욕을 감추기 위해 제네바협정을 무시하고, 계속 젊은이들을 죽음의 전쟁터로 내보낸 4명의 미국 대통령이 벌인 추악한 행위가 기록되어있다.
    뉴욕 타임즈가 최초로 일부를 보도한 이 페이퍼는 미국 법원 판결로 보도가 억제되었으나, 워싱턴 포스트 기자들의 끈질긴 추적,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과 정부의 압력과 협박에 맞선 사주의 용단으로 7천쪽에 달하는 페이퍼를 보도하면서 언론사(史), 미국의 민주주의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으로 기록된다. 이 보도로 ‘더러운 전쟁을 중단하라’는 미국인들의 대대적인 반전 시위가 촉발됐다.
    영화 스토리엔 세 영웅이 등장한다. 워싱턴 포스트 여성 발행인인 캐서린 그레이엄(메릴 스트립)과 편집국장 밴 브래들리(톰 행크스), 그리고 미국 연방대법원이다. 여느 영화 같으면 특종 보도 스토리는 편집장이나 기자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겠으나 스필버그감독은 여성 사주 캐서린을 주목했다. 노골적이고 강력한 백악관의 압력, 자칫하면 감옥에 갈지도 모르는 상황, 갓 상장한 회사의 명운이 걸린 순간에 다 만들어 놓은 신문을 찍느냐 마느냐 절체절명의 순간에 사주 캐서린은 “인쇄 해!”라고 외친다. 세기의 특종이 한 여성의 용단에서 탄생한다.
     
    “기사는 역사의 초고(草稿)다. 항상 옳을 수는 없고, 완벽할 수도 없지만 계속 써나가는 것이다” ”기사의 질과 수익은 함께 한다“ 실제로 그녀가 그렇게 말했는지, 시나리오 작가가 만들었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캐서린은 워싱턴 포스트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신문으로 성장시킨 언론사 사주다. 남편의 자살로 경영에 나선 그녀는 ‘신문이 왜 존재하며, 어떤 역할과 책임을 가지며, 무엇으로 승부할 것인가, 그리고 그것을 달성키 위해 발행인은 무얼 해야 하는가’를 알고 있었음을 영화 제작자들은 높이 산 것이 아닐까.
    다음은 편집국장 밴 브래들리. 뉴욕 타임즈에 낙종한 그는 이를 만회하기 위한 피나는 노력 끝에 완벽한 문서를 입수한다. “법원의 중지 명령에 낄 수만 있다면 기꺼히 쓸개라도 내주겠다”며 문서 입수에 총력을 기울인다. “정부가 신문기사 정해주면 포스트는 사라지는 것이다” “ 우리가 진다면 이 나라가 지는 것이고 닉슨만 승리한다” “모두를 속이는 그들의 거짓말, 이제 끝내야 한다. 우리가 책임을 묻지 않으면 누가 묻겠는가” “ 신문 발행의 자유를 지키는 길은 발행 뿐이다” “우리만의 상황이 아니다. 모든 신문의 문제다”
    영화를 관통하며 캐서린과 브래들리가 쏟아내는 어록들은 언론의 자유와 책무를 웅변한다. 특히 편집국장의 사자후(獅子吼)는 정부뿐만 아니라 사주를 향한 것이기도 했다. 언론사의 사주야 말로 최후의 게이트키퍼이기 때문이다. 이 두 영웅이 펼친 드라마가 한 지방지의 웅비에 그친 것이 아닌, 표현의 자유 신장의 표본이 되는 것이다.
     
    언론은 통치자가 아닌 국민을 섬겨야 한다
     
    자, 마지막 영웅의 차례다. 워싱턴 포스트가 완벽한 취재와 기사화를 마치고 윤전기 버튼만 누르면 되는 순간, 미국 연방대법원은 포스트의 손을 들어줬다. “언론은 통치자가 아닌 국민을 섬겨야 한다” 는 판결문이 나오는 순간 피가 거꾸로 흘렀다.
    연방대법원은 미국의 수정헌법 제1조를 들이대며 권력의 협박 강요로부터 언론을, 언론자유를, 국민의 알 권리를 보호했다. 종교의 자유로운 활동을 방해하거나, 언론자유를 막거나, 출판자유를 침해하거나, 평화로운 집회를 방해하거나...이러한 어떠한 행위도, 법으로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수정헌법 제1조의 정신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신문은 민주사회를 지탱하는 공공재(公共財)다
     
    지난 5일 열린 제62회 신문의 날 기념식에서 이병규 한국신문협회회장은 “신문은 민주사회를 지탱하는 공공재임에 변함이 없다”며 “신문은 더 소중히 지켜야 할 우리 사회의 공적자산이란 인식의 대전환이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우리도 서구 선진국처럼 탐사보도나 고품질 심층보도 등은 민주주의 발전에 필수요소라고 보고 지원하는 제도의 확충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미디어진흥기금을 ‘민주주의 펀드’라고 부르는 나라도 있다.
    우리나라도 언론진흥재단을 통한 다양한 미디어 지원이 이뤄지고 있으나, 그 규모가 미미하고 정부의 의지도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재원의 확대와 함께 각종 미디어 관련 지원 시스템을 통합, 효율적으로 운용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모습이 바뀌어도 잃어버리거나 변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다. 50년전이나 지금이나 권력과 자본은 여전히 오만하고 부패하기 쉬우며, 언론은 그것을 감시하고 진실을 제대로 알려야한다”(이대현국민대교수)는 경고가 더 포스트와 오버랩 된다. <투데이코리아 논설주간>
     
    필자약력
    △(전)동아일보 경제부장, 논설위원
    △(전)재정경제부장관 자문 금융발전심의위원
    △(현)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관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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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코칼럼
  • [김성기 칼럼]‘脫원전’ 국민투표까지 갈 필요 없다
  • 김성기 부회장|2018-12-07
  • 대만이 지난 11월 탈(脫)원전 정책을 채택한 지 2년 만에 국민투표를 통해 정책을 폐기하자 국내에서도 비현실적인 탈원전 정책을 재고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과학적인 근거도 없이 막연한 불안감을 부추겨 탈원전으로 가는 정책은 에너지 수급에 중대한 장애를 초래, 나라의 장래를 크게 위협한다는 지적이다. 대만의 탈원전 정책 폐기를 주도한 대만 칭화대 원자과학원의 예쭝광 교수는 국민투표 직후 국내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원자력에 대한 막연한 공포와 불안, 유언비어에 현혹됐던 국민이 작년 대정전과 심각한 대기 오염을 겪으면서 원전 필요성을 깨닫게 됐다”고 전했다. 대만은 11월 24일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진 국민투표에서 찬성 59.5%대 반대 40.5%로 탈원전 폐기를 선택했다. 대만은 환태평양지진대에 들어 있어 지진이 자주 발생하고 국민의 막연한 원전사고 불안감도 높았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불안감은 최고조에 달해 유언비어가 난무했고 2016년 탈원전 정책을 공약으로 내건 민진당 정권이 탄생했다. 그러나 예 교수를 비롯한 대만 과학자들은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며 원전의 안전성을 강조했다. 또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원전이 대기오염 방지에도 적합하다는 점을 대만 국민에게 널리 알려 탈원전 폐기를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 국내에서도 에너지 관련 학회를 중심으로 과학자들이 나서 꾸준히 탈원전 정책의 허상과 문제점을 지적해왔다. 지난달 하순에는 57개 대학 교수 210명이 가입한 ‘에너지 정책 합리화를 추구하는 교수협의회’가 국민투표를 촉구하는 대정부 성명을 냈다. 이들은 정부가 “국민의사와 전문가 의견을 반영하는 절차도 없이 무책임한 환경단체의 비현실적 주장만 반영했다”며 “정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국민의 의사를 묻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정부는 “대만 사례는 우리와 다르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정부가 어떤 의미에서 그런 반응을 보였는지 모르겠으나 우리나라가 지질과 자연환경, 과학기술 수준 및 원전 안전도 등에서 대만 사례와는 크게 다른 게 사실이다. 최근 크고 작은 지진이 발생했지만 대만 사례처럼 원전 안전을 직접 위협할 수준이 아니며 원전 건설과 운영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을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다. 우리가 훨씬 더 안전하게 원전을 가동할 수 있는 여건을 갖췄다는 말이다. 정부와 관련 업계도 한국 원전의 기술수준과 안전성을 앞세워 해외진출을 홍보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규 원전 건설 백지화와 노후 원전 수명연장 불허, 월성 1호기 조기폐쇄 등 탈원전을 선거 공약으로 내세워 집권했다. 취임후 신고리 원전 5, 6호기 공사를 중단시켰다가 공론화위원회의 배심원단 공론조사를 받아들여 공사를 재개했다. 공론화위원회는 약 60%의 공사재개 찬성으로 나타난 공론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막연하게 앞으로 원전비중을 축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정부는 이후 지난해 말 제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탈원전 정책을 포함시켰고 한국수력원자력의 자발적인 사업포기로 신규 원전 4기 백지화, 월성 1호기 조기폐쇄를 구체화했다. 에너지 정책의 방향을 확고하게 세운다는 의미에서 탈원전에 대한 국민투표가 바람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문재인 정부가 추진해온 탈원전 절차를 감안하면 국민투표가 본래 취지와는 달리 정권의 명운을 건 치열한 정쟁으로 변질될 우려가 높다. 에너지 정책이 소위 ‘적폐청산’ 대상으로 떠올라 온갖 논쟁과 들쑤시기가 난무하고 또 하나의 거리 투쟁을 불러올 수도 있다. 지난 8월과 11월 원자력학회 등에서 실시한 두 차례 여론조사에서 원전 이용에 찬성한 응답이 70% 안팎으로 높게 나타났다. 여론의 흐름은 이미 방향이 잡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뻔한 흐름을 놓고 분쟁을 일삼기보다 그동안 정부가 취해온 정책의 역순으로 나아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현실에 맞게 수정하면서 원전의 안전도 요구를 대폭 강화해 국민 신뢰를 높이고 정책을 정상화해야 한다. 한수원의 정상화도 반드시 요구되는 부분이다. &lt;투데이코리아 부회장&gt; 필자약력 △전)국민일보 논설실장,발행인 겸 대표이사 △전)한국신문협회 이사(2013년) △전)한국신문상 심사위원회 위원장
  • [권순직 칼럼]국가 부도의 날
  • 권순직 논설주간|2018-12-06
  • 영화 ‘국가부도의 날’이 개봉 10일도 안되어 관객 6백만 명을 돌파하는 등 흥행이 성공적이다. 20여년 전 우리나라를 치욕의 현장으로 만든 이른바 IMF(국재통화기금)사태를 주재로 한 이 영화에 관객이 몰리고, 국민들이 뜨거운 관심을 보이는 것은 당시의 악몽을 떠올리며 지금의 팍팍한 삶이 겹쳐지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국가가 부도 위기에 몰려있던 당시의 상황을 재연하고 IMF와 협상과정을 그린 이 영화는 픽션과 넌픽션을 가미한 팩션이라고는 하지만 사실과는 많이 달랐다. 극적인 재미에 더 비중을 두어 그랬겠지만, 영화를 보고 난 뒤의 생각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우리시대의 사건을 너무 흥미 위주로 하지 않았나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어쨌든 여러 측면에서 우리 국민에게 던지는 교훈은 적지 않다. 우리 정부가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하고, 그 댓가로 금융 통화정책은 물론이고 기업구조조정 등 모든 정책을 IMF승인을 받아야한다는 내용의 양해각서를 체결하고서야 겨우 국가부도를 모면한 사건이다. 경제주권을 3년간 IMF에 넘겨준 것으로 그야말로 국치(國恥)였다. 하지만 국민들은 고개 숙이고 감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참담함을 감출 수 없었던 협상내용을 간략히 살펴보자. 국회는 IMF기준에 맞춰 세입 세출을 맞춰야하고, 정부는 이 틀 안에서 정책을 수립한다는 내용이다. 심지어 국방 통일 문화정책까지 그들의 승인을 받아야했다. 이 양해각서는 국무위원의 서명도 모자라 국회의장과 대선 후보자들에게까지 서약을 받아갔다. 주권국가 국민으로서는 도저히 감내하기 힘든 굴욕이었고, 국민이 지도자를 잘못 선택하면 어떠한 댓가를 치러야 하는지를 절감했다. 사태 1년전인 1996년 12월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 선진국 클럽에 들어갔다며 샴페인을 터뜨린다. 그러나 이 잔치는 한해도 못넘기고 재앙으로 다가온다. 1997년에 들어서면서 한달에 1천3백여개의 사상초유 기업 연쇄부도 사태가 빚어지는가 하면 한보 삼미 진로 기아자동차 등 재벌그룹이 도산위기에 몰리며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등 경제난이 심각해진다. 은행과 제2금융권의 부실로 이어진다. 여기에다 태국 바트화의 폭락 등 동남아시아 각국의 외환위기가 국내 외환 및 증시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다. 기업의 대량 부도와 주가폭락 등으로 곳곳에서 적신호가 켜졌지만 당시 경제팀은 “우리나라는 경제의 기초체력이 튼튼하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다”는 ‘강한 펀더멘털론’을 펼치며 경고음을 무시했다. 이처럼 곪을대로 곪은 경제체질을 놓고 건강하다며 내외로부터 다가오는 위기를 강건너 불보듯 한 정부 때문에 호미로 막을 위기를 가래로도 못막는 사태를 초래했던 것이다. 이것이 IMF사태의 본질이다. IMF사태의 여파는 그야말로 참혹했다. 기업의 대량 도산과 은행 및 종금사의 퇴출, 그에 따른 곳곳에서의 무더기 해고, 고공행진을 하는 실업률에 자살하는 인구가 급증하고 가정의 붕괴가 줄을 이었다.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지는 상황이다. 자, 그럼 국가부도의 날 영화가 지금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뭔가. 필자는 두가지를 생각했다. 첫째, 우리는 IMF사태를 조기에 성공적으로 극복했다는 것을 자랑으로 삼아왔다. 물론 전 국민들이 뼈를 깎는 노력과 고통을 감내하여 경제를 안정시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당시 위기를 초래하고, 안이한 대처로 상황을 악화시킨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명확히 하지 않았다. 실패의 교훈을 얻는데 소홀했다. 둘째, 정책대응에 실패한 정책당국자에 대한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지 않았다. 정책의 실패에 형사책임을 묻기가 어렵다는 시각이 있지만, 실패한 정책이나 적절하지 못한 정책대응의 책임소재는 분명히 가려놓았어야 했다. 이 영화가 오늘도 빚어지고 있는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정책당국자들이 한번쯤 심사숙고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lt;투데이코리아 논설주간&gt; 필자약력 △전)동아일보 경제부장. 논설위원 △전)재정경제부장관 자문 금융발전심의위원 △현)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운영위원
  • [박현채 칼럼]철밥통을 걷어찬 이웅렬 회장
  • 박현채 주필|2018-11-30
  • 재벌 총수는 임기가 없는 만년 직장이다. 올해 62세로 적어도 10년은 더 회장직을 수행할 수 있는데도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이 철밥통을 걷어찼다. 1996년 코오롱 경영권을 승계한지 23년 만에 스스로 그룹 회장직을 비롯해 주요 계열사 직책을 모두 내려놓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새로운 창업의 길을 선택했다. 사실 그룹 오너의 퇴진 자체는 큰 이슈가 아니다. 갑질 논란이나 경영 실패 등 그룹을 둘러싼 잡음으로 자의반 타의반으로 경영에서 물러났다가 사태가 진정되면 슬며시 다시 돌아오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그럴만한 특별한 사유가 없는데도 이 회장 스스로 퇴임을 선언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고 있다. 그러다 보니 그의 갑작스러운 은퇴선언 배경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창업주인 할아버지 이원만, 2세 아버지 이동찬의 뒤를 이어 자산기준 재계 순위 31위의 코오롱 그룹을 이끌어 온 그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덕분에 특별하게 살아왔지만, 그동안 금수저를 물고 있느라 이가 다 금이 간 듯하다”면서 '3세 경영자' 자리가 결코 쉽지 않았음을 토로했다. 이 회장은 "세상이 변하고 있고, 변하지 못하면 도태된다"고 전제하고 "매년 시무식 때마다 환골탈태의 각오를 다졌지만 미래의 승자가 될 준비는 턱없이 부족하다. 불현듯 내가 바로 걸림돌이구나, 내가 스스로 비켜야 진정으로 변화가 일어나겠구나 생각했다"고 밝혔다. 기업 환경의 급속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앞장서 달렸으나 한계를 느꼈음을 고백한 것이다. 그러면서 “이제 그 특권도, 책임감도 내려놓는다”며 홀가분해 했다. 검은색 터틀넥 셔츠에 청바지 차림으로 연단에 올라 은퇴선언을 한 것도 이러한 기분 탓이 아닌가 생각된다. 본인의 변화 속도가 느려 회사에 걸림돌이 된다고 느껴 퇴임을 결심했다는 이 회장의 솔직한 고백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다른 재벌 기업과 총수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 반세기동안 재벌의 오너 중심 지배구조는 과감한 의사결정, 빠른 추진력 등의 장점으로 산업화에 크게 기여했다. 한강의 기적을 이끈 주역으로 칭송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지구촌의 산업 생태계가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있는데도 대마불사라는 말만 믿고 안주하다가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변화의 물결에 올라타지 못하고 흔들리고 있다. 조선이 그렇고, 해운이 그렇고, 자동차가 그렇다. 기득권의 벽에 둘러싸여 작은 변화도 거부한 채 친인척 일감 몰아주기 등으로 자신들의 철옹성 지키기에만 몰두해 왔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오너 독단’의 폐해를 경계하며 스스로 그 그물을 제거한 이 회장의 ‘자의적 조기 퇴진’ 결정이 우리 기업문화를 돌아보는 신선한 자극제가 돼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 회장은 “이제 저는 청년 이웅열로 돌아가 새롭게 창업의 길을 가겠다”면서 “그동안 쌓은 경험과 지식을 코오롱 밖에서 펼쳐 보겠다”고 창업 의사를 내비쳤다. 스타트업은 대마가 아니라서 망해도 좋으니 마음껏 뜻을 펼쳐 보겠다는 얘기다. 번듯한 사업체를 놔두고 험난한 창업의 길을 택할 필요가 없는데도 이를 선택했다. 이 회장은 29일 신문방송편집인협회 회장단 초청 간담회에서 “창업 아이템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구체적인 아이템을 꼽지는 않았지만 주저 없이 “플랫폼 사업이 중요한 것 같다”고 답했다. 그는 “지난해 미국 실리콘밸리에 가서 블록체인을 공부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며 “앞으로 1년 정도 4차 산업 분야 인사들을 많이 만날 것”이라고 밝혀 블록체인 등 4차 산업혁명 관련 분야에 관심을 두고 있음을 내비쳤다. 이 회장은 “천천히 공부하며 창업을 준비하겠다. 창업 시기는 이르면 내년 상반기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1년이 넘을 수도 있다”고 말하고 “여러분들이 궁금해 하시는 그 모든 것들을 앞으로 행동으로 보여드리겠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는 경영권을 바로 아들에게 승계하지 않고 전문경영인에 맡긴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아들을 코오롱인더스트리 전무로 승진시켜 그룹의 패션사업을 총괄토록 했다. 경영수업을 받게 한 것이다. 언제 외아들인 이규호(35) 전무에게 경영권을 물려줄 것이냐는 질문에 “나중에 능력이 있다고 판단이 돼야 가능하다”며 “나는 기회를 주는 거다. (아들은) 현재 주요 회사 지분도 전혀 없다”고 답했다. 이 회장은 “아들에게 스스로 (능력을) 키우지 않으면 사회가 너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며 “하지만 나보다 훨씬 능력이 뛰어난 아들을 믿는다”고 말해 이 전무에 대한 애정과 신뢰를 아끼지 않았다. 또한 이 회장의 전격 퇴진이 당장 코오롱의 소유구조나 경영 근간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그는 그룹 지주사인 ㈜코오롱의 지분 49.74%를 보유하고 있는 1대 주주이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시장에선 이 회장의 퇴진을 4세 경영체제로 가는 징검다리에 불과하다면서 오너 경영이 언제든 재개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그의 ‘자의적 조기 퇴진’을 주목하는 것은 그 결정이 재벌가의 대물림 경영 관행에 익숙한 우리 기업문화를 뒤돌아보는 신선한 자극이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lt;투데이코리아 주필&gt; 필자약력 △전)연합뉴스 경제부장, 논설위원실장 △전)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 △전)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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