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순직 주간


신문의 날은 4월 7일이다. 1896년 독립신문이 창간된 날을 기념해 제정되었다. 그날 즈음하여 필자는 미국 영화 ‘더 포스트’를 관람했다. 40여년간 신문기자 언론인 명패 달고 살아온 필자의 이 영화 관람 소감은 ‘부럽다’ ‘부끄럽다’였다. '아! 그래서 미국이 선진국이고 멋진 나라로구나' 하고 새삼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왜 우리는, 나는 그렇지 못하는가' 하는 부끄러움을 재확인하는 시간이었다.
물론 빛나는 언론인들의 활약이 있는 미국에서도 지금 트럼프대통령과 언론간의 낯 뜨거운 싸움이 빚어지고 있긴 하다. 우리나라에선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방송장악을 위한 온갖 시도가 끊이지 않는다. 지금도 국회에선 공영방송 헤게모니를 놓지 않으려고 방송법 개정과 관련하여 희한한 일이 진행 중이다. 그래서 더 포스트를 본 소회가 더 께림칙하다.

영화에 등장한 멋진 대사들, “인쇄 해!”

최근 국내에서 상영된 영화 ‘더 포스트’(The Post)는 미국의 유력지 워싱턴 포스트가 30여년 동안 미국 국민을 속인 베트남전쟁 개입과 전쟁과정에서의 조작 은폐 사실이 담긴 이른바 ‘펜타곤 페이퍼’를 폭로하고 보도하는 과정의 숨 막히는 실화다. 패전의 치욕을 감추기 위해 제네바협정을 무시하고, 계속 젊은이들을 죽음의 전쟁터로 내보낸 4명의 미국 대통령이 벌인 추악한 행위가 기록되어있다.
뉴욕 타임즈가 최초로 일부를 보도한 이 페이퍼는 미국 법원 판결로 보도가 억제되었으나, 워싱턴 포스트 기자들의 끈질긴 추적,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과 정부의 압력과 협박에 맞선 사주의 용단으로 7천쪽에 달하는 페이퍼를 보도하면서 언론사(史), 미국의 민주주의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으로 기록된다. 이 보도로 ‘더러운 전쟁을 중단하라’는 미국인들의 대대적인 반전 시위가 촉발됐다.
영화 스토리엔 세 영웅이 등장한다. 워싱턴 포스트 여성 발행인인 캐서린 그레이엄(메릴 스트립)과 편집국장 밴 브래들리(톰 행크스), 그리고 미국 연방대법원이다. 여느 영화 같으면 특종 보도 스토리는 편집장이나 기자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겠으나 스필버그감독은 여성 사주 캐서린을 주목했다. 노골적이고 강력한 백악관의 압력, 자칫하면 감옥에 갈지도 모르는 상황, 갓 상장한 회사의 명운이 걸린 순간에 다 만들어 놓은 신문을 찍느냐 마느냐 절체절명의 순간에 사주 캐서린은 “인쇄 해!”라고 외친다. 세기의 특종이 한 여성의 용단에서 탄생한다.

“기사는 역사의 초고(草稿)다. 항상 옳을 수는 없고, 완벽할 수도 없지만 계속 써나가는 것이다” ”기사의 질과 수익은 함께 한다“ 실제로 그녀가 그렇게 말했는지, 시나리오 작가가 만들었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캐서린은 워싱턴 포스트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신문으로 성장시킨 언론사 사주다. 남편의 자살로 경영에 나선 그녀는 ‘신문이 왜 존재하며, 어떤 역할과 책임을 가지며, 무엇으로 승부할 것인가, 그리고 그것을 달성키 위해 발행인은 무얼 해야 하는가’를 알고 있었음을 영화 제작자들은 높이 산 것이 아닐까.
다음은 편집국장 밴 브래들리. 뉴욕 타임즈에 낙종한 그는 이를 만회하기 위한 피나는 노력 끝에 완벽한 문서를 입수한다. “법원의 중지 명령에 낄 수만 있다면 기꺼히 쓸개라도 내주겠다”며 문서 입수에 총력을 기울인다. “정부가 신문기사 정해주면 포스트는 사라지는 것이다” “ 우리가 진다면 이 나라가 지는 것이고 닉슨만 승리한다” “모두를 속이는 그들의 거짓말, 이제 끝내야 한다. 우리가 책임을 묻지 않으면 누가 묻겠는가” “ 신문 발행의 자유를 지키는 길은 발행 뿐이다” “우리만의 상황이 아니다. 모든 신문의 문제다”
영화를 관통하며 캐서린과 브래들리가 쏟아내는 어록들은 언론의 자유와 책무를 웅변한다. 특히 편집국장의 사자후(獅子吼)는 정부뿐만 아니라 사주를 향한 것이기도 했다. 언론사의 사주야 말로 최후의 게이트키퍼이기 때문이다. 이 두 영웅이 펼친 드라마가 한 지방지의 웅비에 그친 것이 아닌, 표현의 자유 신장의 표본이 되는 것이다.

언론은 통치자가 아닌 국민을 섬겨야 한다

자, 마지막 영웅의 차례다. 워싱턴 포스트가 완벽한 취재와 기사화를 마치고 윤전기 버튼만 누르면 되는 순간, 미국 연방대법원은 포스트의 손을 들어줬다. “언론은 통치자가 아닌 국민을 섬겨야 한다” 는 판결문이 나오는 순간 피가 거꾸로 흘렀다.
연방대법원은 미국의 수정헌법 제1조를 들이대며 권력의 협박 강요로부터 언론을, 언론자유를, 국민의 알 권리를 보호했다. 종교의 자유로운 활동을 방해하거나, 언론자유를 막거나, 출판자유를 침해하거나, 평화로운 집회를 방해하거나...이러한 어떠한 행위도, 법으로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수정헌법 제1조의 정신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신문은 민주사회를 지탱하는 공공재(公共財)다

지난 5일 열린 제62회 신문의 날 기념식에서 이병규 한국신문협회회장은 “신문은 민주사회를 지탱하는 공공재임에 변함이 없다”며 “신문은 더 소중히 지켜야 할 우리 사회의 공적자산이란 인식의 대전환이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우리도 서구 선진국처럼 탐사보도나 고품질 심층보도 등은 민주주의 발전에 필수요소라고 보고 지원하는 제도의 확충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미디어진흥기금을 ‘민주주의 펀드’라고 부르는 나라도 있다.
우리나라도 언론진흥재단을 통한 다양한 미디어 지원이 이뤄지고 있으나, 그 규모가 미미하고 정부의 의지도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재원의 확대와 함께 각종 미디어 관련 지원 시스템을 통합, 효율적으로 운용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모습이 바뀌어도 잃어버리거나 변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다. 50년전이나 지금이나 권력과 자본은 여전히 오만하고 부패하기 쉬우며, 언론은 그것을 감시하고 진실을 제대로 알려야한다”(이대현국민대교수)는 경고가 더 포스트와 오버랩 된다. <투데이코리아 논설주간>

필자약력
△(전)동아일보 경제부장, 논설위원
△(전)재정경제부장관 자문 금융발전심의위원
△(현)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관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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