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무 회장


축구경기에 전반전과 후반전이 있습니다. 승부가 나지 않을 경우에는 연장전도 하지요. 우리 인생살이도 전반전과 후반전, 그리고 연장전까지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갓 쉰이 된 1998년 3월, 27년간 근무한 농림부에서 명예퇴직을 했던 때가 생각납니다. 1995년에 과로사 증상으로 사무실에서 쓰러진 후에 좀처럼 건강이 회복되지 않던 차에 정부조직 개편으로 인해 농림부 1급 지위가 한 자리 줄어서, 부득이 제가 당시 김성훈 장관님께 특별히 허락을 받아 명예퇴직을 신청하게 되었던 것이지요. 그 나이에 그만두고 나니 가족들은 다들 건강회복이 최우선이라고, 잘 된 일이라고 위로해주었지만 마음 한편으로 막막하고 불안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 무렵 저보다 조금 먼저 공직을 그만둔 선배로부터 소위 ‘전반전과 후반전 이론’에 대해 설명을 들었을 때 정말 “아! 그렇구나. 이제 전반전이 끝난 것이구나” 하는 안도와 함께 앞으로 살아갈 길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론의 골자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사람의 일생을 당시 남성의 평균수명을 대충 75세 정도로 보고 삼등분을 한다. 첫 번째 삼분의 일인 25세까지가 ‘인생 준비기’인데 경기 전에 훈련과 체력단련 등 필요한 준비를 하는 시기이다. 그 다음 삼분의 일인 50세까지가 ‘전반전’, 그 이후 마지막 삼분의 일인 75세까지가 ‘후반전’이다. 전반전과 후반전 사이에는 잠시 쉬는 ‘하프 타임’이 있다” “전반전이 끝난 뒤에 ‘축구에서 핸드볼로’처럼 경기 종목을 바꾸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반면 코트를 바꾸는 것은 불가피하다. 전반전에는 좀 잘못하여도 후반전에 만회가 가능하지만 후반전에는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으니 더욱 신중해야 한다. 전반전 보다는 아무래도 후반전에 체력이 달리게 마련이니까 체력 안배를 잘해야 한다. 전반전에 익힌 경험이 후반전에 도움이 되니까 이를 잘 활용해야 한다”

저는 그 이론을 믿기로 했습니다. 사실 다른 대안이 없기도 했었지요. 하프 타임에는 중국 연변과기대에서 경제정책론 강의를 하면서 ‘동북아농업개발원’ 원장을 했는데, 1년 정도 지나니까 운명처럼 후반전이 시작되더군요. 당시 이탈리아 농무관 노 경상 씨로부터 FAO 필리핀 주재대표 자리를 확보해 놓았으니 해보라는 것입니다. 덕분에 1999년 9월부터 4년 반 마닐라에 주재하게 되어 제 인생 후반전이 열렸습니다. 노 경상씨에게 늦었지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저의 농정 전반전이 대한민국 국내 문제에 국한되었다면, 후반전은 코트를 세계무대로 옮긴 셈이 된 것이지요.

마닐라에 있던 2002년에 농림부 재직 당시의 동료였던 최 용규, 조 방환 선생들과 함께 ‘세계농정연구원’을 설립해서 이사장을 맡는 한편, ‘아태농정포럼(Asia­Pacific Agriculture Forum, APAP Forum)’을 설립, 의장으로서 후반전을 위한 제 나름의 인적 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이 포럼은 올해로 17년째인데, 매년 8월말 경에 한국에서 본 포럼, 3월말 경 나라를 순회하면서 라운드테이블 미팅을 개최해 왔습니다. 지난 3월말에 열린 태국 치앙마이 라운드테이블의 주제는 ‘포용적이고 지속가능한 농어촌 구조개선(Inclusive and Sustainable Rural Transformation)’이었습니다.

2004년 2월에 귀국, ‘FAO한국협회’ 회장직을 비롯해서 ‘통일농수산사업단’ 상임대표 등을 맡아서 주로 국제적인 일과 남북 농업협력에 관한 일을 해오다가, 2013년 9월부터 3년간 농어촌공사 사장으로 재임하면서도 해외사업에 주력하려고 노력했었습니다. 저의 후반전은 전반전을 27년으로 본다면 2026년에야 끝날 것 같습니다. 아직 8년이 남았네요. 건강이 허락한다면 연장전에도 한번 도전해볼 생각입니다. 이제는 ‘백세 시대’인지라 75세 인생을 전제로 했던 종전의 이 이론도 수정이 되어야 할 듯합니다. <투데이코리아 회장>

필자 약력
△전)농림수산부 기획관리실장
△전)세계식량농업기구(FAO)한국협회 회장
△전)농어업농어촌 특별대책위원회 위원장
△전)한국농어촌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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