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용규 이사장


우리에게 가장 가보고 싶은 나라를 들어 보라고 하면 아마도 스위스가 첫 번째 나라가 되는게 아닌가 생각 한다. 왜 스위스가 가장 가보고 싶은 나라일까? 아마도 알프스산맥을 가로 지르는 융프라우, 마테호른 같은 산, 레만 호와 같은 호수, 평지나 높은 산악지대나 잘 가꾸어진 정원 같은 푸른 초원,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떼, 꽃으로 장식한 도시와 농촌의 집들이 어우러진 그림 같은 경관을 보여주기 때문이리라. 이들 아름다운 경관을 가꾸고 유지하는 데는 농업이 일조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국토면적이 남한의 반도 안 되는 4만1천㎢, 인구 854만 명, 농가 54천호, 농업인구 약 20만 명(총인구의 약 2.5%), 식량자급율이 50% 정도밖에 안 되는 나라, 국가는 인구의 3%도 안 되는 농업인과 농업을 보호하기 위해 국제무대에서 열심히 싸우고, 국민들은 80%의 지지로 헌법개정(2017. 9. 24)에 “식량안보”를 명기하는데 찬성한다.

스위스는 우리나라와 함께 90년에서 93년까지 우루과이라운드협상에서 관세화 반대에 앞장서 싸웠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관세화를 받았지만 농산물에 상당수준의 고율관세를 부과하는 실리를 취하였다.

그리고 UR 이후 WTO협상준비 단계에서는 농업의 다원적 기능(Multi-functionality of agriculture)을 중시해야 한다는 수입국의 협상그룹인 G6(한국, 일본, EU, 스위스, 노르웨이, 모리셔스의 6개국)를 형성하여 미국, 호주 등 농산물 수출국들과 맞서 싸웠다. 필자가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싸움이 한창인 때인 1996년에 이미 스위스는 “농업의 다원적 기능의 중요성과 직접지불”을 명시한 연방헌법조항(124조)을 국민투표로 명기하였다.

그리고 이를 다시 지난해 9월 24일에는 보다 구체화한 식량안보조항(104조 1∼4항)을 개정안으로 하여 국민투표에서 79%의 압도적 찬성을 얻어 통과시켰다.

이와 같은 농업에 대한 국민들의 압도적 지지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로는 농업이 아름다운 스위스의 자연경관을 유지 보존하여 주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사실 스위스 농가는 상당한 수준의 정부 보조가 없이는 유지할 수 없다.(농업과 식품에 지출하는 정부 지출액에서 농가에 지불하는 직불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2009년 74.3%) 특히, 열악한 환경과 조건이 불리한 지역의 농가일수록 많은 보조금을 주도록 되어 있다. 하나의 예를 들면, 표고 차에 따른 보조금의 차등 지급이 있다. 표고 2,000m에 사는 농가는 표고 1,000m에 사는 농가 보다 훨씬 많은 보조금이 지급되는 등의 방법이다. 실제 농가소득 중 50% 가까이가 정부의 직접지불 보조금이고 심지어는 조건이 불리한 높은 산악지대에 사는 농가는 소득의 90% 이상이 정부 보조금인 경우도 있다. 그들이 열악한 환경인 그 곳에서 살기 때문에 아름다운 스위스를 보러오는 관광객이 끊이지 않고, 많은 국민이 관광에서 얻은 수입의 일부를 농업인들에게 지불하는 것이 아깝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필자가 강하게 느꼈던 또 하나의 스위스 농업의 강점으로 농업상속 제도를 들 수 있겠다. 94년 7월 26일, 제네바와 로잔 사이에 있는 스위스 농민연합회장인 축산(낙농)농가 Sandez씨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그는 20대의 젊은 아들과 함께 농사일을 하고 있었다. 막내아들이라고 하여 왜 장남이 아니냐고 묻자 스위스의 농업상속은 딸, 아들 구별 없이 끝에서부터 영농의사를 타진을 하여 농사짓기를 원하는 자식에게 토지를 포함한 모든 경영권을 한 사람에게 몰아서 이양한다는 것이다. 맏이거나 위의 자식에게 경영권을 주지 않는 이유로 부모와 나이 차가 크게 나지 않아 영농하는데 부모와 견해차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며, 또한 한 자식에게 몰아주는 것은 영세화를 방지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그러면 처음에 물려받아 영농을 하던 자식이 중도에 포기할 경우에는 어떻게 하느냐에 대한 답변으로 모든 재산을 처분하여 전 자식모두에게 균등 배분함으로 분쟁의 소지도 없앨 수 있다고 했다. 지극히 합리적인 방법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 장자 상속이나 자식 수에 따른 균등 배분 등의 방법과는 사뭇 다른 제도이다.

이와 같이 헌법에 식량(곡물)의 비축을 의무화(23조 2항)하고, 식량안보의 중요성(124조 1∼4항)을 명기한 나라, 그리고 농가에게 막대한 정부의 직접지불금을 보조해 주는 것에 찬성하는 국민, 이들 모두가 스위스의 농업이 강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아닌가 한다.

다행히 최근 우리 농협이 1,150만 명의 서명을 받아 정부에 요청, 정부발의 개헌안(129조 1항)에 “식량의 안정적 공급, 농업의 공익적 기능을 바탕으로 농어업인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지원 등 필요한 계획을 시행”토록 명시한 안이 마련되어 있다니 기대가 된다.

우리도 하루빨리 헌법에 “농업의 가치”를 명시하고 농업에 대한 정부지원에 온 국민의 전폭적 지지를 받는 나라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세계농정연구원 이사장>

필자약력
△전)농림부 국제농업국장 (WTO농업협상 수석대표)
△전)산림청 차장
△전)FAO한국협회 회장
저작권자 © 투데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