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제철 앞서 철강시대 열어… 3대째 이어진 사회환원

<편집자 주> 소비자 권리의식이 높아지고 최근 갑질 기업과 총수 일가에 대한 비난이 고조되면서 기업의 경영환경도 정치 만큼이나 급변하는 시기에는 총수의 경영능력과 리더십에 따라 기업의 미래가 달라진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이라는 엄청난 기업환경의 변화 속에서 총수의 정확한 판단과 경영 역량에 따라 기업이 우뚝 서기도 하지만 때로는 오너리스크로 위기를 겪기도 한다. 본지는 이에따라 건설업계를 비롯,식품 외식업계 ,제조, 금융업계까지 주요 기업의 총수가 걸어온 길과 공과를 점검해 보기로 한다.


▲ 동국제강 로고.


[투데이코리아=이준호 기자] 동국제강(회장 장세주)은 재계순위 45위(2017년 11월 기업 경영성과 평가사이트 CEO스코어 집계 기준)의 대기업집단이다.


지난 3월 한국기업평판연구소의 57개 대기업집단 대상 브랜드평판지수 측정에서 동국제강은 금호아시아나, 대우건설 등 쟁쟁한 기업들을 제치고 27위를 차지할 정도로 재계에서 큰 명성을 얻고 있다.


브랜드평판지수는 주요 기업의 △미디어지수 △소통지수 △사회공헌지수 △소비자지수 등을 종합해 산출한다. 동국제강은 미디어지수에서 약 1천800만, 소통지수에서 약 10만, 커뮤니티지수에서 약 23만, 사회공헌지수에서 약 76만, 소비자지수에서 약 46만을 얻어 종합 1천900만의 브랜드평판지수가 집계됐다. 브랜드평판지수를 통해 해당기업에 대한 소비자들의 긍정·부정 여부 등을 추정할 수 있다.


동국제강은 6.25동란 직후인 1954년 7월 고(故) 장경호 회장(1899~1976)에 의해 설립됐다. 부산 동래 출신인 장 회장은 보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할 즈음 3.1운동이 발생하자 합류했을 정도로 민족독립 의식이 뚜렸한 인물이었다.


일본 경찰 수사망을 피하느라 학업마저 포기한 장 회장은 1920년 부산 초량동 부산중앙시장에 대궁양행을 창업한 것을 시작으로 1935년 남선물산 설립으로 사세를 확장하는 등 사업에서 수완을 보였다.


독립 후인 1949년 조선선재주식회사 설립으로 철강업계에 첫 발을 딛은 뒤 1954년 7월 서울 영등포 당산동에 동국제강을 세움으로써 장장 반세기가 넘는 동국제강 시대를 열었다. 포항제철소가 1968년 설립된 점을 감안하면 대한민국 철강업계의 선구자인 셈이다.


승승장구하던 동국제강은 고(故) 장상태 회장(1927~2001)이 1985년 2월 새 사령탑에 취임하면서 한층 도약했다. 장상태 회장은 선친의 철강보국(鐵鋼報國) 정신을 이어받아 혼신을 다했다.


동국제강은 1986년 2월 국내 최초 갈바륨 설비를 도입한데이어 같은해 3월에는 국내 최초 전기아연도금강판라인(EGL)을 가동했다. 5월에는 시간당 제강생산량에서 월 5만톤으로 세계 최고기록을 달성했다. 노사협력에도 적극 임해 1994년 2월에는 국내 최초로 노조의 항구적 무파업 선언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


3대째 이어진 사회환원 역사


창업주인 고 장경호 회장의 손자이자 고 장상태 회장 장남인 장세주(64) 회장은 이른바 ‘오너3세’다. 동생은 형의 공백 아래 현재 동국제강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장세욱(55) 부회장이다. 장 회장은 1999년 12월 동국제강 사장을 거쳐 선친이 작고한 2001년 회장직에 취임했다.


동국제강은 장 회장 취임 후에도 성장을 이어나갔다. 장 회장은 2005년 중앙기술연구소를 설립하고 기술개발에 전념하는 한편 이듬해 인천 북항, 포항 신항 2부두 등 3개 전용부두를 준공하는 등 공격적 경영에 나섰다.


노력은 성과를 불러왔다. 2009년에는 국내 최초 초고장력 철근 KS인증이라는 쾌거를 거뒀다. 2010년에는 서울 중구에 신사옥인 페럼타워를 준공했다. 2010년에는 가전용 컬러강판이 세계일류상품으로 선정됐고 2011년에는 고급 건재용 컬러강판 럭스틸(Luxteel)을 런칭했다.


2012년에는 인천제강소 1호 압연공장을 가동했고 2012년에는 브라질 CSP제철소를 착공했다. 2015년 1월에는 유니온스틸을 흡수합병하고 사세를 한층 확장했다.


장 회장은 사회환원에도 적극 나섰다. 동국제강은 2005년 1월 산하 송원문화재단을 통해 부산, 대구, 울산, 인천지역 8개 대학에 재학 중인 금속 관련 전공학생 50명을 선발해 총 2억원의 장학금을 지원했다.


같은해 2월에는 부산, 포항, 인천에 거주하는 독거노인, 극빈층 노인 160명을 초청해 경로잔치를 열고 1억6000만원의 생활지원금을 기부했다. 이듬해에는 문화·예술계 지원을 위한 송원아트센터도 개관했다. 센터 설립에는 25억원이 투자됐다.


사회환원은 창업주 시절부터 이어진 동국제강의 오랜 전통이다. 고 장경호 회장의 “이제는 사업 기반이 잡혔으니 내 이름으로 남은 재산 전부를 국가와 사회에 헌납해 그동안 받은 은혜를 갚으려 한다”는 말은 유명하다. 고인은 재임 기간 사재 35억원, 현 시가로 200억원에 달하는 재산을 사회에 환원해 불교문화 진흥에 앞장섰다.


고 장상태 회장도 마찬가지였다. 고인은 주력사업장을 부산에서 포항으로 이전하면서 “부산시민 여러분께 이익을 환원코자 한다”는 말을 남겼다. 말은 곧 실천으로 이어졌다. 대표적 업적이 부산 공장터를 매각하면서 발생한 특별이익금 100억원을 출연해 설립한 송원문화재단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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