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채 주필


‘침묵의 살인자’로 불리는 미세먼지가 연일 한반도를 강타하고 있다. 마치 독가스로 가득찬 통속에 갇혀 있는 느낌이다. 미세먼지로 인해 수도권에서만 연간 1만 5000여명이 조기사망한다고 하나 마스크를 쓰는 것 이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
환경부는 미세먼지가 불편 단계를 넘어 공포 수준에 도달하자 지난해부터 비상저감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고농도 미세먼지 발생시 행정·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차량 2부제와 사업장·공사장 조업단축을 내리는 것 등이 주요 골자다. 그런데도 초미세먼지 농도는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차량 2부제를 실시해도 초미세먼지는 0.57% 밖에 줄어들지 않고 노후 석탄발전소 가동을 중단해도 저감효과가 1~2%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 조치는 시행 근거가 과학적이지 않다.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으니 공공부문이라도 나서서 뭐라도 해 보자는 모양새다. 그래도 정부가 ‘서민 생선’ 고등어를 미세먼지 주범으로 거론한 것이나 지하철 요금 무료제 시행으로 이틀간 150억 원의 혈세를 날린 서울시의 미세먼지 대책보다는 낫다고 자위하는 것이 정신건강상 좋을 것 같다.

우리나라는 대기 질이 나쁘기로 정평이 나있다. 미국 예일대와 컬럼비아대 연구진이 공동 조사한 '환경성과지수(EPI) 2016'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공기질 부문에서 조사대상 180개국중 173위로 최하위권이었다. 전 세계 5천여 개 도시의 대기오염 실태를 모니터링해 발표하는 다국적 커뮤니티 '에어 비주얼'도 지난해 3월 21일 서울의 공기품질지수가 전세계 주요 도시중 인도 뉴델리에 이어 두 번째로 나빴다고 밝혔다. 악명 높은 중국 베이징보다도 나빠진 것이다.

이처럼 공기질이 나쁜 것은 국내에서 배출된 오염물질에 중국 등 외국에서 날아온 것까지 더해지면서 농도가 짙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내 난방 수요가 급증하는 겨울철에는 더욱 심해진다. 그래서 지난 겨울에는 ‘삼한사온(三寒四溫)’이라는 말이 자취를 감추고 그 대신 3일간 춥고 4일간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린다는 ‘삼한사미(三寒四微)’라는 신조어가 유행했다. 혹독한 한파가 몰아치다가 누그러져 따뜻하다 싶으면 어김없이 미세먼지가 찾아왔다. 북쪽 시베리아에서 차가운 북풍이 몰아칠 때는 편서풍이 차단돼 중국의 미세먼지 유입도 차단되나 북풍이 밀려나 따뜻해지면 편서풍을 타고 한반도로 대거 유입된다. 특히 봄철 해빙기에는 고비사막 등지에서 메마른 황사까지 겹쳐 날아온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납득할 만한 증거가 없다'면서 미세먼지 발생에 대한 책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2016년 조사에서 중국에만 존재하는 납 성분이 검출되는 등 국내에 떠도는 미세 먼지중 상당량이 중국에서 날아온 것임을 입증하는 여러 건의 연구 결과가 있는데도 말이다. 최근 한반도를 뒤덮은 미세 먼지중 상당량이 중국에서 왔음을 과학적으로 입증한 또 하나의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지난해 춘절(설) 기간중 중국에서 사용된 폭죽 성분을 국내에서 다량 검출, 미세 먼지가 중국에서 대거 유입됐음을 입증해 냈다. 중국인들은 춘절이 되면 악귀를 쫓는다면서 집집마다 폭죽을 터뜨리는 풍속이 있으나 한국에는 없다.

구체적인 증거가 또 하나 등장한 만큼 정부는 대책 마련을 중국측에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 2016년에 발행된 ‘중국 내 석탄화력발전소의 공간적 분포’ 연구에 따르면 한반도와 인접한 산둥성과 저장성 일대의 석탄발전용량이 1998년만 해도 각각 10GW 정도였으나 2011년에는 각 65GW 선으로 6배 이상 증가했다. 경제발전으로 공장도 대거 늘어났다.

물론 중국도 대기오염이 심각해 지자 지난 5년간 미세먼지와의 전쟁을 벌였다.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생태환경을 개선, 2035년까지 미세먼지의 전국 평균 농도를 35㎍ 아래로 내릴 계획이다. 20년은 더 지나야 중국발 미세먼지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때까지 마냥 손놓고 기다릴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처지다. 미세먼지 감축을 위한 양국간 공조와 협력을 서둘러야 한다. 국제공조도 병행, 동북아시아 국가들이 힘을 합쳐 유럽의 환경기준처럼 ‘동북아 환경기준’을 설정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국내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를 줄이려는 노력이 배가돼야 한다. 환경부는 지난달 하순께 초미세먼지의 일 평균 기준을 50㎍에서 35㎍으로 낮추는 등 환경 기준과 경보관련 기준 등을 선진국 수준으로 높였다. 하지만 근본적인 공기 질 개선없이 경각심만 높이고 땜질식 처방만 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중국은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인공강우 실험을 하고 있고, 이를 실제로 적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우리도 현행 미세먼지 비상저감 대책을 전면 재검토하는 등 보다 적극적이고 혁명적인 근원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하겠다.<투데이코리아 주필>
필자약력
△전)연합뉴스 경제부장, 논설위원실장
△전)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
△전)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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