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은경 작가


아침이 환하게 밝았다. 오랜만에. 며칠 동안 봄비가 오느라고 아침인지 저녁인지 모르게 우중충했기에 오늘 아침의 햇님은 더욱 반가웠다. 남편이 어제 출장 갔으므로 아침은 나 혼자 먹게 된다. 잘 차린 상 대신 먹고 싶던 케이크며 과일이며 커피로 아침을 대신할 수 있어 신난다. -자주는 아니어도 가끔 몸에 나쁘다는 것을 먹으면 기분 좋거든- 이렇게 생각하며 식사를 하기 전에 잠깐 마당을 돌아보러 나갔다.

나가자마자 맞아주는 새 소리. 오늘 따라 더 명랑하고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지난번 심었던 150그루의 무궁화나무에서 새 순이 나왔나 점검해보고 싶어졌다. 작대기 꽂아놓은 듯 했던 열 두 그루의 나무들도 비속에서 씩씩하게 자라 순을 뾰족 내놓기 시작했을 것이다.

집 주위에 둘러쳐져 있는 돌 틈 속에서 선물처럼 진홍색 꽃을 피워낸 영산홍도 살펴보아야겠다. 꽃나무 못지않게, 아니 더 크게 자란 잡초들이 꽃을 가로막은 모습이 몇 개 눈에 띄었던 것이다. 고택 툇마루 밑에서 꽃삽을 꺼내고 장갑도 준비한다. 아니 이럴 수가. 영산홍 한 가지가 산더미 같은 풀 속에서 초록 잎을 힘겹게 몇 개 내보이고 있다. 이러면 안 되지. 나는 잡초를 제거하기 시작한다. 잡초가 이렇게 무성하게 자란 줄은 몰랐다. 더구나 심은 지 얼마 안 되는 어린 나무들을 거의 밀림 수준으로 가로막고 있는 줄 몰랐다. 새로 심은 나무들을 살려 줘야지. 나는 잡초들을 뽑고, 삽질해서 캐고, 모아 놓고 멀리 던지고........를 반복했다. 이 반복이란 노동은 힘들기도 하지만 몰두하면 순수하게 빠지게 된다. 일하면서 나는 길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명상을 병행했다. 명상이란 현재에 온전히 머무르는 것이라고 했던가.

그러는 사이 3사관학교 학생들의 것이 틀림없는 우렁찬 구령 소리와 빠른 구보 소리가 들렸다. 단체로 사격연습을 하는 듯 총소리도 들렸다. 사이사이 –음메에에-하는 소들의 울음소리도 들렸다. 이 곳 용전리에는 소 키우는 집이 상당히 많은 것 같다. 축사가 많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평소에는 안 들리던 소 울음소리가 오늘 따라 크게, 오래 들렸다. 조금 있다가 장사하는 분의 마이크가 울렸다.

-찢어진 방충망 고쳐 드립니다. 고장 난 로라 갈아드립니다. 연락번호는 011........- 그 아저씨의 말은 아주 잘 들렸다. 사투리가 별로 없어서인가? 연이어서 마을 공지 사항이 있는지 이장님의 발표가 있었는데 그 말은 마이크가 웅웅거려서 잘 들리지 않았다. 사이사이 우리 집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시장기가 들었다. 그렇지, 나는 아침밥을 안 먹고 마당에 나온 것이었다. 시간이 얼추 많이 갔을 것 같았지만 몇 시가 됐을지 도통 가늠이 되질 않았다. 이젠 집에 들어가 보아야지. 들어가면서 모과나무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아니........웬? 모과꽃이 만발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본 모과꽃이었다. 장미과로 알고 있었는데 사과꽃과 거의 흡사했다. 엷은 핑크의 모과꽃, 비 오기 전에 유기질 비료를 듬뿍 줬었는데 그 덕분인가? 가을에 모과가 많이 열리면 좋겠다. 이제 몸을 돌려 현관으로 향했다. 현관 바로 앞에서, 요전에 장에서 사 온 목단이 엷고 우아한 꽃잎을 수줍게 벌리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아니 이 꽃은 내가 아침에 나올 때까지만 해도 봉오리 상태가 아니었던가? 현관문을 열려다 말고 나는 목단의 모습에 눈을 뺏겼다. 이 놈 역시 엷은 핑크빛이었다. 모과 꽃과 같은 색깔의........ 그러자 마을 입구 사과밭의 만발한 연분홍 꽃들 생각이 났다. 집안에 들어갔더니 10시가 지나있었다. 두 시간 이상을 마당에서 몰입한 상태로 보낸 것이다. 언뜻 휴대폰이 생각나서 들여다보았다. 남편에게서 7번의 전화가 와 있었다. 깜빡 잊었던 것이다. 미안했지만 자연에서 보낸 시간이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자연 속의 몰입에 축복을!

<작가>
조은경 약력
△2015 계간문예 소설부문 신인상 수상
△소설 '메리고라운드' '환산정' '유적의 거리' '아버지의 땅'등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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