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찬 연구원과 토마스 슐츠 교수가 장비와 함께 대화하고 있다. (사진=UNIST)

[투데이코리아=김현호 기자] 화학적 성질을 가진 최소의 단위 입자인 분자를 파악하는 강력한 측정기술이 개발됐다. 레이저 측정만으로 분자의 여러 성질을 파악할 수 있는 세계에서 유일한 기술이다. DNA나 천체물리학에서 연구되는 분자 측정에 기여할 전망이 높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 자연과학부 화학과의 토마스 슐츠 교수팀은 레이저로 분자 고유의 회전을 관측해 분자 구조와 질량을 모두 파악하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했다. 슐츠 교수가 2011년 사이언스(Science)에 처음 보고한 ‘상관 회전 정렬 분광학(Correlated Rotational Alignment Spectroscopy, 이하 CRASY)’를 더욱 향상시킨 후속 기술이다.


CRASY는 레이저를 두 번 쏘아서 분자를 인위적으로 회전시키고 관측하는 기술이다. 첫 번째 레이저는 분자를 회전시키고 두 번째 레이저는 회전하는 분자를 관측한다. 두 번째 레이저로 측정한 정보를 분석하면 분자의 구조뿐 아니라 질량, 에너지, 진동 등에 관한 다양한 정보까지 얻을 수 있다.


슐츠 교수는 “기존 분광학에서는 분자의 구조나 질량 같은 정보를 측정하는 개별 기술이 따로 존재해 측정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었다”며 “한 번만 측정해서 다양한 정보를 얻는 빠르고 손쉬운 기술은 세계에서 CRASY 하나뿐”이라고 강조했다.


분자의 회전은 사람 지문처럼 고유한 지표다. 따라서 어떤 분자가 무엇을 중심축으로 삼고 어떤 방향으로 돌아가는지를 보면 구조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관건은 분자가 회전하는 아주 짧은 순간을 재빠르게 포착하는 데 있다. 이런 장면들을 여러 장 모은 스펙트럼(spectrum)으로 전체 회전을 파악해야 정확한 구조 분석이 가능하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이종찬 UNIST 화학과 석·박사통합과정 연구원은 “분자의 정확한 구조를 알려면 회전 순간순간을 재빠르게 포착한 초고해상도 회전 스펙트럼(spectrum)을 얻어야 한다”며 “몇몇 기술을 추가해 CRASY의 성능을 더 높였다”고 말했다.

분자가 회전하는 찰나의 장면을 세세히 잡으려면 레이저 간격을 조정해 여러 번 측정해야 한다. 분자를 회전시킨 뒤 관측용 레이저를 쏘는 시간 간격을 다르게 하면서 각 순간을 잡아내는 것이다. 이 자료를 모으면 1피코초(ps, 1조분의 1초)마다 찍힌 전체 스펙트럼이 된다. 전체 측정시간은 레이저 이동거리를 늘려서 지연시키는데 일반적으로 거울로 레이저를 반사시켜 멀리 돌아가게 만든다.


하지만 실험실에서 레이저 이동거리를 무한정 늘리기는 어렵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슐츠 교수팀은 작은 거울과 전기신호를 이용하는 방법을 융합해 레이저의 이동거리를 90m까지 늘렸다. 그 결과 측정시간은 300나노초(ns, 10억 분의 1초)까지 지연됐고 그만큼 회전 스펙트럼의 정밀도 높아졌다.


두 레이저 사이의 간격이 300나노초까지 늘어나면 전체 실험 시간이 길어진다. 1피코초마다 관측을 300나노초까지 반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이 문제를 ‘간헐적 샘플링(sparse sampling)’이라는 기술로 해결했다. 매 간격마다 분자 상태를 측정하지 않고 전체 측정 영역 중 극히 일부만 무작위로 선정해 관측한 것이다. 이 덕분에 전체 측정시간이 기존 대비 수십 배 이상 줄었다.


이종찬 연구원은 “기존 방식으로는 하루 동안 16나노초의 스펙트럼을 얻을 수 있었다”며 “간헐적 샘플링은 모든 데이터를 측정하지 않아도 되므로 300나노초의 스펙트럼을 하루에 얻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슐츠 교수는 “이번 연구로 향상된 CRASY는 기존에 분별이 어려웠던 불균일 시료나 동위원소도 별 처리 없이 한 번에 측정할 수 있다”며 “다양한 분자 구조를 더욱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어 향후 다양한 기초 분자과학에 기여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번 연구는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 4월 27일자 온라인판 게재됐으며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중견연구자지원사업’의 지원으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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