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帝 해군 납품 광학기업으로 출범… 전후 민간시장서 도약

▲ 일제(日帝) 시기 군수업체로 창립된 니콘.


[투데이코리아=박진영 기자] 니콘(ニコン. Nikon)은 일본 도쿄(東京)에 본사를 둔 미쓰비시(三菱)그룹 계열의 광학기기 회사다.


2014년 온라인 사진 관리·공유 웹사이트 플리커(Flickr)에서의 카메라 브랜드별 서비스 이용빈도 기준으로 니콘의 시장점유율은 9.3%로 3위다. 애플(9.6%)과 경쟁하면서 1위인 캐논(Cannon)의 뒤를 추격하고 있다.


니콘은 한국 시장에서도 큰 사랑을 받는 카메라 제조사로 1970년대부터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계약을 맺고 우주정거장 및 달탐사용 특수카메라를 납품하는 등 세계 카메라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하지만 성장의 이면에는 일제(日帝)강점기 한국인 노동자 강제징용 등 ‘추악한’ 역사가 있다는 분석이 학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 18.1인치 3연장 주포에 니콘 측거의가 장착된 야마토함.


니콘은 시작부터 군사적 필요성에 의해 설립됐다. 19세기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을 단행하고 열강의 반열에 올라선 일제는 20세기 초 독일 해군을 모방해 광학기술 개발에 뛰어든다. 군부는 미쓰비시 측에 광학기업 설립을 요구했으며 이에 따라 1917년 창립된 게 니콘의 전신(前身)인 일본광학공업주식회사다.


니콘은 초기에는 카메라 대신 망원경, 소총 스코프(조준경), 잠망경 등을 생산했다. 니콘의 측거의는 배수량 6만5000톤으로 당시 세계 최대 전함이었던 야마토(大和)함의 18.1인치 3연장 주포에 장착되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제가 패망함에 따라 군납에 의존하고 있던 일본광학도 큰 타격을 입었다.


한때 약 2만명의 종업원을 거느렸던 일본광학은 구조조정 끝에 1천700명까지 인력을 감축하고 민간시장 진출을 도모했다. 이에 따라 항복 이듬해인 1946년 사명을 ‘니콘’으로 바꾸고 2년 뒤 35mm 필름 대응 레인지파인더(RF)식 카메라를 첫 출시했다.


당초 시장 반응은 좋지 않았으나 해외의 한 유명 사진작가가 자신의 카메라에 니콘 렌즈를 사용함에 따라 인지도가 오르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승승장구하는 듯 했으나 또다른 고비가 닥쳤다. 독일의 에른스트 라이츠(Ernst Leitz)사가 RF카메라의 7대 난제를 모두 해결한 제품 ‘라이카(Leica) M3’를 출시하자 시장에서의 니콘 입지가 크게 좁아진 것이다.


▲ 아날로그 카메라의 대명사격이 된 니콘 F3.


라이카M3와 경쟁해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니콘은 방침을 바꿔 일안반사(SLR)식 카메라 개발에 뛰어들어 1959년 ‘니콘F’를 출시했다. 이 제품이 호평을 받으면서 니콘은 비로소 시장에서 입지를 굳힐 수 있었다.


니콘의 SLR카메라는 큰 인기를 얻었다. 플래그십 모델인 F3은 전세계 언론기자들이 애용하는 제품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제품의 셔터 소리는 카메라 음향의 대명사격이 됐다. 지금도 부산 지역매체인 A신문 사옥 1층 로비에는 F3가 전시되고 있다.


니콘은 초창기의 군수업체 노하우를 되살려 1970년대 후반 NASA와 계약하고 우주왕복선, 우주정거장, 달탐사 등에 쓰일 특수카메라를 납품하기도 했다.


강한 내구성, 태양풍에 대한 내성 등 까다로운 요구가 제시됐으나 니콘은 이를 모두 충족시켰다. 지금도 우리 머리 위를 비행하고 있는 국제우주정거장(ISS)에는 니콘 카메라가 장착돼 있다.


니콘은 시대변화에도 발빠르게 대처했다. 1990년대 들어 아날로그 카메라의 시대가 저물고 디지털 카메라의 시대가 오자 1999년 최초의 실용적 디지털 SLR카메라인 ‘D1’을 출시하면서 소위 ‘대박’을 쳤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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