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은경 작가

졸릴 듯이 날씨가 따뜻해진 어느 날 형님한테서 전화가 왔다.
-내일 고추 심는 날인데 여럿이서 점심 먹을 자리로 그 집 평상 좀 쓸 수 있을까?-
-아! 물론이죠. 쓰세요. 제가 커피도 타 드릴께요.-
우리 집은 지대가 좀 높아서 형님네 밭이 잘 내려다보인다. 이번에 고추 농사를 한다고 하시더니 드디어 일이 시작되는 모양이다. 고추는 모종이겠지?
점심때가 되어 아주버님이 봉고트럭을 운전해서 일꾼들 여섯 명을 태우고 오셨다. 밭 바로 옆에 관정이 있고 관정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시설물 안에 전기가 있어 전기밥솥으로 밥도 하고 국도 끓여 왔단다. 우리 집은 시원한 평상만 빌려 주면 된다고 하신다. 농사는 이렇게 짓는 모양이다. 일꾼들을 모으고 밥도 같이 먹고 참도 해 줘 가면서 말이다. 식사가 끝날 즈음 커피도 타 드리고 과일도 깎아 내 갔다. 형님은 고추 모종 몇 개 빼서 주겠다고 하더니 고구마, 땅콩 모종도 주신단다. 우리 텃밭에도 무언가 심을 날이 드디어 온 것이다. 사실 얼마 전에 옥수수 씨앗을 사 놓고도 아직 심지 못 했다. 엄두가 안 났다. 텃밭은 지난 겨울 배추 농사를 짓고 나서 일부만 갈아 시금치를 심었었고 그 시금치를 다 먹지 못해 꽃이 피었다. 그래서 형님은 거기서 시금치 씨를 받자고 말했다.
다음날 형님이 우리 텃밭을 봐 주러 왔다. 검은 비닐로 덮은 부분에서 배추를 재배했던 구덩이 옆을 뚫고 옥수수 알갱이를 둘씩 심었다. 배추 심었던 곳은 비료가 다 소진됐을 거니까 딴 데 심는단다. 형님 하는 것을 보고 흉내는 냈지만 내가 심은 쪽은 발아가 되지 않을 것만 같다. 알록이옥수수라는 제품을 샀는데 우리가 일상 보던 옥수수 씨알이 아니다. 자주색이다. 병충해를 예방하려고 약품 처리를 해서 그런 색깔이 되었단다. 고구마모종이라는 것의 모습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뿌리도 없고 비실비실한 가지뿐이다.
-이걸 그대로 심어요?- -그럼, 그냥 심어- 고구마는 그래도 산단다. 형님 밭에 가 봤더니 그 비실비실한 놈들을 쓰러진 채로 가득 심어놓았다. -가운데 두툼하게 둔덕을 만들어 놔야 돼. 고구마는- 그래서 흙을 모아 작은 무덤처럼 만들어 놨다. 잎사귀 뜯어 먹으라고 케일도 두 모종, 참외도 두 모종, 토마토도 두 모종, 오이, 땅콩, 가지는 세 모종 씩이다. 비료도 조금, 퇴비도 조금 해서 흙과 섞어서 구덩이를 만드는 것도 힘들고, 심는 방법도 확신이 안 드니 머뭇댄다. 형님처럼 잽싸게 손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게다가 애써 심어 놓았는데 옆에 있는 잡초 때문에 잘 보이지도 않는다. 틈틈이 잡초 제거도 했다. 안 하던 일에 하루 종일 땀을 흘렸다.
남편이 뭘 그렇게 열심히 하냐고 한다. 당신은 귀농주부가 아냐. 귀촌주부란 말이야.
하지만 귀에 쟁쟁 도는 말이 있다. -그래도 봄에 씨를 뿌려야지, 가을에 거두지. -
-최소한 로또를 사기는 해야지, 돈벼락을 맞을 꿈이라도 꾸지. - 친구가 한 말이다.
텃밭을 왔다 갔다 하면서 토마토도 따 먹고 옥수수, 고구마도 쪄먹는 맛을 느끼려면 지금 고생 좀 하는 수밖에 없다. 도시에 살면서 남들이 많이 하는 텃밭 체험도 하지 못했다.
이제 드디어 시골 맛을 보게 된 것이다. 지난 가을 배추 농사는 형님 덕에 엉겁결에 풍년이었다. 유감스럽게도 배추 값은 헐했지만 말이다. 이번 여름 농사는 순전히 내가 먹을 것만 심는다. 슈퍼에 가서 채소를 고르지 않고 대신 텃밭을 들락거리면서 반찬을 만들 수 있을까? 과연? 옥수수는 흙을 너무 얇게 덮은 것 같고 고구마는 너무 깊게 묻은 것 같다. 내 마음을 아는지 남편이 말했다. -초보 농부가 처음부터 너무 잘 하면 어쩌려고?- 그렇겠지?
격려가 필요해요. 뽀빠이!
<작가>
조은경 약력
△2015 계간문예 소설부문 신인상 수상
△소설 '메리고라운드' '환산정' '유적의 거리' '아버지의 땅'등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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