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은경 작가


오늘 택배가 왔다. 전북 김제에 있는 친지가 광활 농협의 지평선 감자 한 상자를 보내준 것이다. 열어보니 햇감자처럼 예쁘게 생겼다. -아니 어떻게 이렇게 잘 보관할 수가 있어?- 내가 말하니 이게 바로 햇감자라고 남편이 말한다. 그 곳 하우스에서 재배했다는 것이다. 내 입이 그만 크게 벌어지고 말았다. 겨울도 없이 농사를 짓는 농부들도 있구나. 우리 용전리는 복숭아 농사가 대세라 온실이나 하우스 같은 것은 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언젠가는 복숭아나무 주위로 하우스나 온실 같은 시설을 만들어 사시사철 복숭아를 수확하기도 할 수 있다는 걸까? 하여간 그 꿈은 잠시 접어두고 나는 포근포근하게 보이는 감자에 눈이 갔다. 그 순간 우리 집 앞을 대추나무집 할머니가 지나가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다른 때라면 비닐 팩을 하나 꺼내 열 개쯤은 나눠 드렸을 텐데 오늘은 그저 인사만 했다. 남편이 감자를 너무나 좋아해서 그냥 손이 나가지 않았다. 이런 일은 아주 드문 일이다.

마침 오늘 가마솥에 쓰레기를 처리하기 위해 불을 때기로 계획했었다. 시골에선 쓰레기를 대충 집에서 처리한다. 대충이라는 말이 조금 위험하다. 주로 개인 소각로를 시장에서 사서 사용하는데 집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태운다. 종이류는 괜찮지만 플라스틱까지 태우는 것은 금물이다. 시골의 대기질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태우는 주인에게도 심각한 해를 입힐 것임에 틀림없다. 다른 마을은 보통 마을회관 앞에 분리수거를 위한 장소가 있다는데 용전리에는 그것이 없다. 지난번에 이장님한테 얘기를 했는데 아직인 모양이다.

이왕 가마솥에 물을 부어 쓰레기를 태운다면 그 물에다 감자를 넣어 쪄야겠다. 다 끓이고 나서는 재 속에 감자를 넣어 구워 먹기도 해야겠다. 솥에 물을 넣어 청소한 후에 버리고 두어 번 물을 가득 끓여 버리고 했다. 겨우내 쓰지 않던 가마솥이기 때문이다. 이젠 불 피우는 것도 어렵지 않고 재미있기만 하다. 펄펄 끓는 물을 주위에 버리려니 남편이 –잡초에다 뿌리지.- 한마디 한다. -어차피 뽑을 거잖아.- 그런데 왜 잡초에 안 뿌리게 되지? 생각해 보니 살아있는 잡초를 삶아 죽이는 것 같아서다. 즉 잔인한 것 같아서다. 아니, 뿌리째 뽑는 것은 괜찮고 끓는 물을 뿌려 죽이는 것은 잔인한 것일까?

잡초 중에 예쁜 꽃을 피워 주는 놈들도 있다. 그런데 잡초는 제거해야 할 대상에 들어있다. 어제도 아주버님이 오시더니 가마솥 앞에 있는 민들레 한 그루를 가리키며 –이거, 키웁니까?- 하신다. 물론 농담일 것이다. 양지바른 곳에 자리해선지 민들레가 보통 민들레의 몇 배는 되게 크다. 진짜 공들여 키운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쑥스럽게 웃었더니 아주버님은 낫으로 몇 번 선을 그어 민들레를 깨끗이 없애 버렸다. 없어지니까 그 쪽이 깨끗해 보이긴 했지만 왠지 안쓰럽게 생각된다.

쓰레기는 폐비닐을 따로 모았고 페트병과 유리병도 따로 모았다. 차에 싣고 큰 길 쓰레기 처리장에 가져갈 예정이다. 내친 김에 고택 청소에 들어갔다. 아니? 툇마루에 송화 가루가 그득하다. 아주버님은 5월이 다 가야 송화 가루가 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도 안 치울 수 있나? 비로 싹싹 쓸었다. 대단한 양이다.

감자는 포근포근하게 삶겨진 감자, 쫄깃쫄깃하게 구워진 감자 모두 맛있었다. 배불리 먹어도 얼마큼 지나면 위장을 비워주는, 소화 잘 되는 고마운 감자다. 원래 맛있는 감자였겠지만 가마솥을 만나서 더욱 맛있어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가마솥이라니? 서울에 있었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이제 고구마도 수확해서 먹고 토마토도 손쉽게 따먹을 수 있게 되겠지? 분명 슈퍼에서 사 먹는 맛과는 판이하게 다를 것이다. 내가 먹는 야채의 이력을 다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이런 저런 멋이 시골에서 사는 맛일 것이다. 정말 좋다.

귀촌주부 파이팅!

<작가>
조은경 약력
△2015 계간문예 소설부문 신인상 수상
△소설 '메리고라운드' '환산정' '유적의 거리' '아버지의 땅'등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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