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설 50주년을 맞은 예비군

[투데이코리아=권규홍.유한일 기자] 지난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남북 정상회담을 가지고 역사적인 ‘판문점 선언’을 발표 했다. 비핵화를 초점을 맞춘 이번 회담의 합의가 매우 성공적이었던 만큼, 이후 남북관계에 있어 급격한 변화가 예고되고 남북간 경제, 문화, 민간분야의 교류협력이 확산될 것으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국민,특히 남성들에게 가장 관심사로 작용하는 것은 군 문제 일 것이다. 최근 남·북정상회담 이후 유력하게 논의되고 있는 종전 선언이 본격적으로 논의되면 징집제인 현재의 군 제도가 모병제로 바뀔수 있을것인지, 전역을 후에도 실시되는 예비군이 과연 어떤 식으로 변모할지도 관심사다.



▲ 평양 대동강에 전시되어 있는 푸에블로함



북한의 연이은 도발로 이루어진 예비군 창설

전시, 사변 등의 유사시를 대비한 예비 병력을 의미하는 예비군이 올해로 창설 50주년을 맞이했다. 우리나라 예비군의 시초는 북한의 연이은 도발로 급작스럽게 이뤄졌다. 북한은 1968년 1월 21일 김신조를 비롯한 124부대원 31명을 남한으로 침투시켜 청와대를 공격할 것을 지시했다. 이른바 ‘1.21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당시 이들은 방첩부대원으로 위장해 관문을 돌파해가며 훈련중이니 길을 열라며 청와대로 진입하려 했으나 자하문을 지키고 있던 종로경찰서 최규식 서장 등 경찰 제지에 걸리자 군인과 경찰을 사살하고 도주해 국민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이 사건이 벌어진 뒤 이틀뒤인 1월 23일 동해상 원산 앞바다에선 미국의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가 북한 당국에 피랍되며 82명의 미군인들이 포로로 잡히는 사건까지 연달아 벌어져 당시 한반도는 그야말로 전쟁의 위기 직전까지 내몰렸다.

1.21 사태 당시 우리 군·경은 무장공비 중 29명을 사살했고 1명은 북으로 도망갔다. 나머지 1명은 우리 군에 투항하며 포로가 되었는데 바로 김신조 씨였다. 김신조 씨는 당시 기자회견 자리에서 “우리 31명의 임무는 박정희 모가지 떼러 왔수다”라며 침투 목적을 밝혀 우리 국민들을 경악하게 했다. 이 사건들을 계기로 박정희 전 대통령은 우리 국민의 안보의식을 고취하고 북한의 ‘4대 군사노선’에 대응한다며 1968년 4월1일 250만명의 향토예비군을 창설하기에 이른다.

▲ 현재 목사로 헌신하고 있는 김신조 씨

크고 작은 작전에 투입 된 향토예비군

예비군은 창설 이후 크고 작은 활약을 하며 현역군인들을 뒷받침 하는 혁혁한 공로들을 세웠다. 1968년 7월 예비군들은 무안 허사도에 침투한 무장공비 2명을 사살했으며 현역과 함께 작전에 투입돼 11월 2일 울진·삼척지역에 침투한 무장공비 120명 중 107명을 사살하고 7명을 생포했다. 또 주문진 무장공비 침투 시 8명을 사살하는 등 크고 작은 작전과 재해복구 등에서 역할을 수행하며 국민들에게 믿음을 주었다.

하지만 예비군들이 매번 공로를 세운것은 아니었다. 1996년 강릉무장공비 침투사건이 당시 예비군들의 실수로 인해 많은 인명이 희생된 사례도 있다. 사건 당시 전시체제나 다름없었던 강원도 일대를 포위하기 위해 현역군인들을 비롯해 예비군도 소집되었는데 당시 예비군들은 급하게 소집되는 바람에 제대로된 훈련도 받지 못하고 열악한 환경에 강제로 투입되었다. 그 속에서 예비군들은 특수요원들로 구성된 무장공비의 빠른 발을 따라 잡지 못하고 번번히 공비들을 놓쳤다.
또한 당시 작전에 투입된 현역들은 “두려움과 추위에 휩싸인 예비군들이 야간보초를 설 때 모닥불을 피워댔는데 이는 자신의 위치를 알려준 행위였기에 멀리서 은폐하고 있던 공비들을 다른길로 도망가게 만들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사건 이후 북한의 무장공비을 이용한 무력 침투가 잦아들기 시작하면서 현재의 예비군 편성은 훈련 위주로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1988년 국방부는 동원예비군을 제 1전투군, 일반예비군을 지역전투군으로 재편하는 훈련 연한제를 도입했다. 이후 1999년 읍·면·동 병무조직이 폐지됨에 따라 예비군 편성책임이 병무청으로 이관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모의 전투 훈련중인 예비군들


병역의 의무, 이후에도 소집되는 대한건아들

국방부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예비군에 소속된 인원은 약 290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현재의 예비군 제도를 살펴보면 군을 전역한 인원은 전역 다음해부터 1~4년차까지 2박 3일 동원훈련을 받고 일부 동원 미지정 참가자들은 4일의 훈련을 받는것으로 되어 있다.

이후 5~6년차는 소속 예비군 중대에서 전, 후반기 각각 1회씩 연 2회의 훈련을 받으며 7~8년차 예비군들의 경우 예비군의 소집을 점검하는 훈련인 소집 점검 훈련을 받는다. 즉 육군 기준 복무기간 21개월을 포함, 약 10년을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며 병역의 의무 이상의 것을 소화하고 있다.

이에 예비군제도가 이뤄진 이래 사회 각계 각층에선 긴 예비군 기간과 시간 때우기에 급급한 현행 훈련 체계, 생업을 포기하고 경제적 손실을 감당하면서 까지 훈련에 참가해야 하는 현행 제도에 지속적으로 불만을 제기하며 예비군 훈련에 대한 적절성과 현실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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