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채 주필

최근들어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셀프 재벌개혁’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지난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초대 공정거래위원장으로 발탁된 김 위원장은 취임 이후 줄곧 재벌개혁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그는 재벌 저승사자로 불리는 강성 이미지와는 달리 셀프 개혁 카드를 꺼내 들고 사회와 시장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재벌 스스로 변화의 노력을 기울여 달라고 촉구해 왔다.
김 위원장이 지금까지 강조해 온 재벌개혁 세트는 총수일가가 적은 지분으로 기업집단 전체를 지배하는 순환출자 고리를 단절하는 것을 비롯해 불공정한 하도급 거래 , 기업의 소유·지배구조 유지를 위한 지주회사와 공익재단 이용, 일감 몰아주기로 대표되는 사익편취 등을 시정하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이같은 개혁을 이루기 위해 법률을 통해 재벌을 강제하기보다는 재벌 스스로 셀프개혁을 통해 시정하도록 유도해 왔다.

그 결과, 지난해 282개였던 대기업집단의 순환출자 고리가 올해 41개로 대폭 줄어들고 ‘갑을관계’가 다소 개선되는 등 일정부분 성과가 있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공정위의 말로만 하는 재벌 개혁으로 총수일가가 여전히 그룹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소수 재벌그룹으로 경제력이 집중되고 있다면서 공정위의 재벌개혁 방법이 너무 느슨하고 느리다고 비판한다. 게다가 지주회사가 올해 큰 폭으로 늘기는 했지만 지주회사 전환 과정에서 편법으로 지배력을 확대하는 사례가 여전한 데다 총수 일가가 오히려 허점을 노려 지배력을 확대할 우려가 높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김 위원장이 몸담았던 참여연대조차 공정위의 재벌개혁 의지에 의문을 제기하고 나섰다. 참여연대는 최근 논평을 통해 "역사상 재벌의 자발적인 노력으로 개혁이 이뤄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전제하고 “공정위는 ‘기계적 중립자’가 아니라 ‘재벌 개혁의 추진기관’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면서 재벌개혁의 속도전을 강하게 주문했다.

참여연대의 이같은 비판은 재벌개혁은 통상 국민 지지도가 높은 정권 초반에 단행되어야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데 자발적인 기업의 변화를 기다리다간 개혁의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겠다. 문 대통령 지지율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정권에 힘이 실린 지금 재벌개혁을 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취임 이후 견지해온 셀프 재벌개혁을 계속 흔들림없이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는 "취임 초기부터 팔을 비틀어 하는 재벌개혁은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실패하는 길로 들어선다“며 1987년 민주화 이후 30년간 역대정권이 수차례 재벌개혁을 시도했지만 실패한 것은 정권 초기 몰아치듯 강제한 방법이 가장 큰 이유라고 강조한다. 특히 “대기업은 한국경제의 중요한 자산인 만큼 재벌개혁이 대기업집단의 생산능력을 무너뜨리는 방향으로 가서는 안된다”며 “변화가 필요하지만 그 틀을 하나로 고정하면 각 그룹의 특수한 사정이 반영되지 못하고 의도하지 않았던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지금의 여소야대 국회에서 재벌 개혁 법안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현실적인 판단도 그가 셀프 개혁을 추진하는 하나의 이유일 것이라는 추론도 나오고 있다.

사실 개혁은 강요가 아니라 자발적 의지로 이뤄질 때 부작용이 적고 효과가 가장 크다. 그런 의미에서 재벌을 무조건 윽박지르지 않으려는 김 위원장의 합리적 자세가 돋보인다. 그러나 재벌들의 셀프 개혁이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지 않을 경우 비판에 직면할 수 밖에 없다.

재벌기업들은 과거 산업화 과정에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국민의 희생을 토대로 성장해 마침내 세계를 무대로 경쟁하는 글로벌 기업이 됐다. 하지만 성장의 열매가 국민 전체로 분배되기 보다는 일감 몰아주기 등을 통해 우월적 지위를 앞세운 재벌기업으로 흘러들어가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특히 고용의 대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중소기업이 지금보다 '평평한 운동장'에서 대등하게 거래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힘 있는 대기업들의 몫이라 하겠다.

이젠 재벌들이 전향적 자세로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가시적인 자체 개혁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김 위원장이 제시한 재벌 개혁 세트는 시대적 요구로 어느 누가 공정거래위원장이 되더라도 추진해야 하는 사항이다.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새 정부의 힘이 빠질 것이라는 판단아래 소나기가 지나가기만 기다린다면 더 큰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투데이 코리아 주필>
필자약력
△전)연합뉴스 경제부장, 논설위원실장
△전)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
△전)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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