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순직 주간

사후(死後) 찬사에 토를 달지 않는 게 우리네 미덕이다. 며칠 전 LG그룹 구본무회장이 별세하자 매스컴에서 쏟아진 고인에 대한 추모는 다소 과공(過恭)이라 할 만큼 칭송 일변도였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시비 걸지 않는다. 공감한다는 의미다. LG그룹이라고, 구본무회장이라고 완벽했을 리 없었을 것이고, 수많은 산하 근로자나 중소 하청업체에게 눈물 흘리게 한 일이 없을 리 없겠으나 과(過)보다 공이 더 컸기 때문에 고인에 대한 칭송이 자자한 것이리라.
여기에 덧붙여 요즘 국민들을 열나게 만드는 재벌 갑질 때문에 구본무회장에 대한 존경과 애정이 더 빛을 발휘했다고 볼 수도 있다. 가히 구본무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고인의 아름다운 퇴장이다. 명복을 빈다.
고인의 생전을 기리는 방송에서는 1년전 청문회에서의 모습이 나온다. “국회에서 입법으로 막아주십시오” 재벌들이 박근혜정부에 막대한 자금을 댄 것을 추궁하던 국회의원이 “앞으로도 정권에 돈을 주겠느냐”고 질문하자 구회장의 답변이 이랬다. 당당했다. 우리나라 재벌은 정부나 국회 언론에 항상 저자세다. 그럼에도 서슬 퍼런 국회 청문회에서 국회의원에게 반박성 발언을 서슴치 않았다.
LG그룹 오너가 수사기관에 불려나가면서 포토라인에 선 것을 본 기억이 없다. 정경유착이나 스캔들에 별로 관계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비교적 수준 높은 정도경영을 해왔음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촛불 탄핵사태 이후 많은 기업들이 뇌물수수 혐의로 수사기관을 오갔지만 LG는 빠졌다. 물론 권력에 돈은 줬다. 하지만 댓가를 놓고 거래는 없었다는 의미다. 돈은 주되 반대급부를 요구할 것이 없었기 때문이리라.
57년 동업자와 아름다운 이별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선 동업이 성공하기 어려운 것으로 여겨져 왔다. LG그룹은 구(具)씨와 허(許)씨 동업으로 창업, 57년간을 이어오다가 지난 2003년 분리했다. 동업을 청산한 것. 이때 ‘아름다운 이별’이라는 찬사가 붙었고, 우리 경제사에 성공한 동업 스토리를 남겼다. 특히 분리 과정에서 알토란 같은 에너지 건설 유통 보험 업종을 과감히 떼어주어 재계를 놀라게 했다. 뿐만 아니라 LG는 분리한 그룹과는 같은 업종으로 경쟁하지 않는다는 신사협정을 맺고 유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구씨 자손들이 있지만 가족간, 친척간 경영권 다툼이나 재산 싸움이 있었다는 소문이 없다. 재산다툼은 물론이고 정경유착 스캔들도 거의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LG는 우리 재벌 역사에서 의미있는 역사를 써가고 있다고 보여진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우리나라의 부자들도 많다. 모두 악덕이고 갑질만 하는 것은 아니다. 경주 최부자 전설은 아름답다. 자기 집에서 십리 안에는 굶어 죽는 사람이 있어선 안된다는 신조로 이웃과 함께 했다. 이회령선생은 많은 형제들이 전재산을 독립운동에 쏟고 어렵게 어렵게 살다 갔다. 6.25전쟁이 터지고 전국은 낮엔 태극기, 밤엔 인공기가 나부끼는 시대가 있었다. 당시 밤엔 주로 노동자 머슴 성분의 공산주의자들이 득세, 부잣집을 털거나 떵떵거리던 지주들을 인민재판에 끌어내 죽이기도 하고 괴롭히기도 했다. 이때 지주이면서도 머슴이나 가난한 이웃에게 따뜻한 베풂을 실현한 사람들은 온전했다. 전국 어느 곳엘 가도 이런 일화가 있다. 구본무회장을 보내면서 새삼 청부(淸富)를 생각해본다. <투데이코리아 논설주간>
필자약력
△전)동아일보 경제부장. 논설위원
△전)재정경제부장관 자문 금융발전심의위원
△현)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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