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은경 작가



일본여행을 3박 4일 다녀왔다. 친구들과의 여행인데 나이가 드니 가까운 곳으로 가자고 하는 친구가 많아 일본이 0순위에 꼽힌다. 비싼 일본식 전통 여관이 아니더라도 호텔 온천에서 목욕을 하고 욕의를 입은 채로 맛있는 음식을 먹는 호사를 일본 사람들이 대표관광 상품으로 발전시켜 놓은 것 때문에 많은 한국 사람들이 이 관광을 선택한다. 하지만 사시미를 주로 한 고급 식사를 계속 먹다 보면 내 체질에 변비 비슷한 것이 생겨 상쾌한 기분으로 귀국하게 되지를 않는다.


서울에 돌아오자마자 오래 지체하지 않고 곧 영천으로 돌아왔다. 그 동안 씨 뿌려 가꾸었어도 아직 어려서 먹기가 저어되던 상추가 이젠 넉넉하게 자랐다. 상추를 가득 올려놓고 쌈장을 만들어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일본 사람들은 신선한 채소를 별로 재배하지 않나? 그래서 주로 채소절임을 해 먹나? 만 가지 고급 요리보다 이 상추쌈이 맛있다.


점심을 먹고 마당과 텃밭을 둘러보러 나갔다. 150그루의 무궁화 중에서 아직도 새 잎이 안 나는 것이 전부해서 다섯 그루, 모두 정리했다. 그래도 성적이 좋은 편이라 생각된다. 꽃씨 심은 곳을 살폈지만 싹 튼 것이 보이질 않는다. 사실 따로 꽃밭을 만들지 않고 성근 잔디 위에 뿌린 다음 모래를 살살 뿌렸는데 이 방법은 실패다. 아무래도 고운 흙으로 손질한 정성스런 꽃밭을 따로 만들어야겠다. 퇴비와 비료도 잘 섞어서.


다음 텃밭으로 나가 보았다. 아까 상추 딸 때는 자세히 못 보았기 때문이다. 고랑마다 심은 종류대로 점검한다. 첫 번째 고랑은 옥수수, 형님이 심어준 곳이라 한 구덩이에 두 개씩 씩씩하게 자라고 있다. 두 번째 고랑은 내가 심었던 옥수수, 열흘 이상 지나서 씨를 심었다. 그래야 옥수수 수확도 시간을 두고 할 수 있단다. 구덩이에 싹이 안 튼 놈도 보여 가지런하지를 않다.


다음 고랑에는 매운 고추, 안 매운 고추 합해서 열 그루, 모종으로 심었다. 다음엔 수박, 참외 각 세 모종 씩 인데 이파리 모양이 비슷하게 생겼다. 그런데 웬 일인지 비슷한 놈들을 사 와서 심었는데 그 중 두 그루는 비실비실하다. 다음 고랑은 콩도 있고 쑥갓도 있고 깻잎도 있다. 콩만 씨로 심은 것이다. 형님이 꽃삽으로 푹 떠서 콩 한 알 넣고 파 놓은 흙을 쓱 덮고 이렇게 다섯 알을 심은 것인데 쓱 덮은 놈들에게서 하나도 빠지지 않고 싹이 튼 것이다. 그렇게 신통할 수가 없다. 다음은 가지, 방울토마토, 호박이다. 모두 모종이고 그 중 두 개가 역시 시원찮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 것이 있다.


바로 고구마다. 형님이 내게 모종이랍시고 줄 때부터 비실비실했고 놀랍게도 뿌리가 없었다. 가장이 채로 그냥 심는다니 아니 그럴 수가? 모종 자체가 힘도 없고 잎사귀도 싱싱하지 않고 늘어져 있었다. 이놈들을 세워 심느라고 혼났다. 그랬더니 심었던 날 저녁에 형님이 와 가지고는 뭘 이렇게 심었어? 하시면서 구덩이를 더 수북하게 만들고는 뿌리에 해당하는 줄기 부분을 그 구덩이에 살짝 넣고는 그냥 눕혀 놓았던 것이다. 그 고구마가, 죽어도 할 수 없지 하고 단념했던 고구마가 지금 보니 벌떡 일어나 있고 자색 어린 잎사귀까지 새로 나 있는 것이다. 내가 시골에 와서 많은 자연의 경이에 대해 알게 되었지만 고구마만큼 놀란 적이 없었다. 죽은 듯이 엎드려 있다가 벌떡 일어나다니? 전화로 친구에게 보고했더니 -그래서 여자들이 고구마를 좋아하는 것이구나?- 하면서 미묘한 해석을 내린다.


다음날이 -부처님 오신 날- 이었지만 올해는 절에 가지 못했다. 여독도 있었지만 이 -부처님 오신 날-을 전후해서가 복숭아 적과가 시행되는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복숭아꽃이 잘디잔 열매로 맺어지면 반드시 작은 열매를 따 주어야 큰 열매가 복숭아로 자랄 수 있게 된단다. 그것을 직접 보고 싶었다. 그리고 가능하면 나도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부처님! 올해는 용서해 주실 거죠?

<작가>
조은경 약력
△2015 계간문예 소설부문 신인상 수상
△소설 '메리고라운드' '환산정' '유적의 거리' '아버지의 땅'등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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