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무 회장


프랑스 사회의 시민의식을 대표하는 ‘똘레랑스’라는 말은 ‘관용’을 뜻하는 불어입니다. 다른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자유, 다른 사람의 정치적, 종교적 자유와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의미이지요. 일본에는 ‘메이와쿠(迷惑)’라는 문화가 있습니다. 남에게 폐를 끼치는 불쾌함이나 괴로움을 뜻하는 이 말에서 비롯된 이 문화는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도록 상대를 배려하고 질서를 지키는 것이 기본이라지요.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된 점은 남의 행복을 존중하고 지켜줄 때 나의 행복도 지켜진다는 단순한 진리라고 생각됩니다.


예로부터 우리 사회는 ‘정’이 많은 사회라고 합니다. 자신의 것을 이웃에게 선뜻 베풀고 나누며, 서로 배려하고 양보하는 마음이 바로 ‘정’이지요. ‘정’에서 비롯된 협동과 신뢰의 정신이 우리 사회의 발전을 이끌어 온 원동력이었다고 저는 믿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정을 나누고 베푸는 활동’을 확대해 나가는 것입니다. 특히 오늘날 점점 소외되고 비어가는 농어촌의 행복 충전(充塡)을 위해 이러한 활동이 더욱 절실히 요청되고 있습니다.

제가 농어촌공사 사장 재임시절 경기도 화성시의 작은 농촌마을에서 작지만 의미 있는 행사가 열려서 직접 참석했었습니다. 3년째 계속된 ‘행복한 진짓상’의 2016년도 첫 배달행사였지요. ‘행복한 진짓상’은 혼자 살면서 끼니를 해결하기 어려운 농어촌지역 어르신들에게 매주 밑반찬을 배달하면서 안부를 묻고 적적함을 달래주는 사회공헌활동입니다. 자원봉사자들은 대부분 같은 마을에 거주하는 주민들이고 식재료도 현지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활용한다지요.


매주 꾸준히 도시락을 준비하고 직접 방문해 안부를 살피려면 많은 정성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요. 가까이 살고 있는 마을주민들의 참여가 절실한 이유입니다. ‘행복한 진짓상’에 대한 어르신들의 만족도는 95%로 매우 높았다지요. 주민의 관심과 참여로 홀로되신 어르신을 보살피면서 농어촌 공동체의 기능을 활성화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였습니다.

‘식구(食口)’는 말 그대로 ‘밥을 같이 먹는 사람들’입니다. 가족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한, 가장 기본적인 공동체를 뜻하지요. 최근에 ‘식구 없는 식구’, 혼자 밥 먹는 ‘혼밥 족’, 도시의 1인 가구, 농어촌의 독거노인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답니다. 농어촌에는 마을회관에서 같이 생활하는 ‘마을식구’가 늘고 있지요. 공동체 생활이라도 할 수 있으면 다행인데 이마저 어렵다면 혼자서 끼니를 해결하기가 이만저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행복한 진짓상’은 농어촌이 고령화되고 독거노인이 급증하는 추세에 대응해서 독거노인의 건강과 고독감 해소를 위해 더욱 확대되어야 활동이라고 생각됩니다.


행사가 열린 마을은 순우리말 이름인 ‘물꽃마을’로 불리고 있는 ‘수화리(水花里)’였는데, 폐교를 활용한 미술관에서 수도권의 어린이들의 다양한 농촌체험활동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여느 시골마을과는 달리 어린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재잘거리는 아름다운 시끄러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도시와 농어촌이 교류하고 어르신과 어린이들이 서로 소통하고 어울려 살아가는 새로운 공동체가 바로 농어촌의 행복을 충전시키는 핵심가치라는 사실을 이 작은 농촌마을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행복충전이라는 말을 즐겨합니다. 충전을 위해서는 먼저 방전을 해야 하지요. 이기심을 먼저 비워야 대신 행복이 가득 찰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욕심을 비우고 자신의 것을 선뜻 나눌 때 타인의 행복은 물론 자신의 행복까지 가득 채울 수 있다는 의미지요.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자세, 남의 행복을 더 생각하는 따뜻한 ‘정’이 바로 우리 사회가 모두 함께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투데이코리아 회장>

필자 약력
△전)농림수산부 기획관리실장
△전)세계식량농업기구(FAO)한국협회 회장
△전)농어업농어촌 특별대책위원회 위원장
△전)한국농어촌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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