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채 주필

전국의 빈집 수가 100만 호를 넘어섰다. 다들 내 집 마련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다고 하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이렇게 빈집이 늘어나고 있으니 아이러니라 아니할 수 없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국에 비어있는 집은 112만호 (2016년 11월1일 기준)나 되고 이 가운데 아파트가 58만 호로 51.8%를 차지했다. 이는 전체 주택 1669만 2000호의 6.7% 수준이다. 빈 집 가운데 지은 지 30년이 넘은 '낡은 빈 집'은 33만7000호(30.1%)로 전년보다 2만3000호 증가했다. 낡은 빈 집 10곳 중 8곳(80.7%)은 아파트가 아닌 주택이다. 고령화가 심한 농·어촌에서 노인이 혼자 살다가 사망하면 사람이 살지 않는 주택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빈집이 시골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도시에 빈집이 더 많다. 일례로 부산 영도구에는 총 4개 동에 250가구나 되는 아파트 단지에 고작 10여 가구만 사는 곳이 있다. 2010년 이후 인구 정체와 고령화, 도시공간의 외연적 확산에 따른 거주민 이주 등으로 구도심 공동화 현상이 촉발되면서 도시에 빈집이 늘어나고 있다. 서울에도 빈집이 7만9000 호나 된다. 2050년엔 31만 호로 늘어나 전체의 5.6%를 차지할 것이라고 한다. 그래도 일본의 도쿄보다는 적다. 도쿄는 전체 주택의 11%인 81만 호가 빈집으로 남아있어 서울의 10배나 된다.
한국국토정보공사는 앞으로 빈 집 확산 현상이 가속화돼 2035년엔 148만 가구로 늘어나고 2050년에는 302만 호로 전제의 10% 선을 넘어설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경제·인구 구조 면에서 시차를 두고 일본을 따라가고 있어 ‘빈집 문제’도 그렇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는 것이다. 일본 국토교통성에 따르면 1980년대 중후반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일본의 빈집은 최근 10년간 두 배로 증가했다. 빈 집은 총 820만 가구(2013년 말 기준)로 전체의 13.5%나 된다.
부동산은 기본적으로 재산가치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버려지는 빈집이 늘어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지역 땅값이 대단위 재개발이나 재건축을 할 수 있을 만큼 높지 않는 등 여건이 미달되는데다 수익보다 유지비용이 더 많이 들어가 집주인들이 그대로 방치해 놓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기존 주택을 재활용하기 보다는 건물을 새로 짓는 정부의 대단지 공급위주 정책으로 인해 주택 과잉공급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도 빈집이 늘어나는 이유가 되고 있다.
빈집은 지역의 경관과 이미지를 해치는 것은 물론이고 붕괴나 화재 등 안전사고 위험과 범죄 발생, 주거환경 악화 및 주변지역 슬럼화 등 부정적 영향을 유발한다. 불과 몇 가구의 빈집만 생기면 주변의 집들도 모두 빈집화하면서 일대가 급속도로 폐허로 변해 사회문제로 대두된다. 그런데도 빈집은 사유 재산이라 강제 철거가 어려운데다 건물이 있는 부지가 나대지보다 재산세 부담이 적어 집주인들이 건물을 그대로 방치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이젠 우리나라도 빈집 급증을 막기 위해 본격적으로 관리를 해야 할 단계에 돌입했다. 주택 과잉 공급이 저출산과 고령화, 저성장, 생산가능인구 감소 등과 한데 어우러지면서 일본처럼 '빈집 쇼크'가 발생할 수 있는 여건이 무르익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정부도 ‘빈집 및 소규모 주택 정비에 관한 특례법’(일명 빈집법)을 제정, 지난 2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대규모 개발 사업 대신 소규모 주택정비를 활성화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이 법에 따르면 안전사고나 범죄 발생의 우려가 높은 경우, 지자체장 직권으로 빈집을 철거할 수도 있다.
이젠 주택시장의 관심이 대단위 재개발·재건축에서 '소규모 주택정비사업'으로 변할 것으로 전망된다. 벌써부터 중소 건설사는 물론이고 낙후지역 주민들도 소규모 정비사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신규 택지개발이 주춤한 상태에서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 중도금 대출 규제 등 각종 부동산 규제 정책이 쏟아지는 상황이 전개되면서 소규모 정비사업이 새로운 활로로 부상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소규모 주택정비사업은 주민 중심의 추진위가 구성돼 업체를 선정하는 대규모 재건축과는 달리 사업 추진 의사를 가진 정비업체가 먼저 주민에게 접근해 사업을 추진하는 관계로 사업성이 높은 곳을 중심으로 정비업체가 난립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이젠 지자체가 조례를 만들어 이런 난개발을 막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하겠다.
또한 지자체는 이번 특별법 시행을 계기로 도심 속의 흉물로 방치된 빈집을 리모델링하거나 200가구 이하의 소규모 재건축을 통해 저소득층이나 학생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임대해 주거 불균형을 해소하고 전 월세 가격을 진정시키는 데 앞장서야 한다. 또한 가로주택 정비사업도 활성화해 노인복지시설 등 공용시설을 확충하고 주차장과 쉼터 등 주민들을 위한 공간도 적극 조성해 나가야 하겠다. <투데이코리아 주필>


필자약력
△전)연합뉴스 경제부장, 논설위원실장
△전)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
△전)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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