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코리아=권규홍 기자]이제 세기의 이벤트로 불리는 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이 바로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역대 처음으로 미국의 정상과 북한의 정상이 서로 만나는 초유의 사태가 바로 코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미국과 북한의 이번 회담결과에 따라 동북아의 역사는 새로이 바뀌게 되며 한반도의 긴장완화를 비롯 종전선언이 만약에 이뤄지면 항구적인 평화를 가져 올 것으로 전망된다.

양국의 협의가 어떻게 진행될 지도 관심사이지만 이번 회담이 극적으로 성사가 되면서 미국은 동북아 평화역사에 한 족적을 남기며 세계 역사에 하나의 이정표를 또 하나 남기게 되었다.

세계 그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첫 만남을 지켜보기 위해 전세계 모든 시선은 현재 싱가포르에 쏠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전 세계 그 어느 이름난 석학도, 정치가도 국제정치에 보수적인 미국의 공화당이 그리고 괴짜 억만장자로 불리던 이슈메이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지도자와 정상회담을 벌일 줄은 아무도 상상을 못했을 것이다.

미국의 거대 두 정당 공화당과 민주당의 양당 정치가 시작된 이후 전통적으로 줄 곳 전쟁을 일으킨 쪽은 공화당, 그것을 수습하는 것은 민주당의 몫이였기에 민주당은 이번 정상회담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현재 미국의 민주당을 비롯한 주류 언론, 학계는 트럼프의 이번 선택을 반신반의 하고 있으며 트럼프와 공화당이 중간선거를 통해 재선을 노리기 위한 정치적인 선택 정도로 평가를 내리고 있다.

그리고 민주당의 입장에선 이번 북미정상회담이 지난 2000년 당시 민주당 출신의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정상회담 성사직전까지 갔었던 이후 18년만에 진행되는 것이기에 더욱더 질투가 날 수밖에 없는 속 사정이 있다.

▲ 첫 북미정상회담의 주인공이 될 뻔했던 클린턴 전 대통령



세계정세를 살펴보면 지금의 북미 관계는 2000년 당시와 매우 닮아 있다. 당시 처음으로 정권 교체에 성공하며 새정치국민회의(민주당의 전신)의 김대중 대통령이 97년 당선되면서 김대중 대통령은 이른바 햇볕정책을 선언하고 북한과의 화해무드에 온 힘을 쏟았다.

이에 고무 받은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 역시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관계 개선을 위한 외교적 노력에 힘입어 물밑에서 정상회담을 추진했다. 이에 북한역시 2000년대 들어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돌입했다. 2000년 6월, 북한은 역사적인 1차 남북정상회담이 벌어진지 4개월후 당시 북한의 서열 2위였던 조명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특사로 미국에 파견했다.

조 부위원장은 북한의 군복차림으로 워싱턴 DC의 백악관을 방문했고 클린턴 대통령과 만나 김정은 위원장의 ‘평양 초청 친서’를 전달했다. 조 부위원장이 워싱턴을 방문한 이후 미국은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을 역시 답방 형식으로 평양에 특사로 파견에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회담을 가졌다. 1994년 제네바 합의 이후 별다른 논의가 없었던 북미관계에 새로운 전환의 모색되었고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은 성사 직전까지 갔으며 전 세계는 클린턴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만남의 성사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 올브라이트 국무장관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하지만 문제는 클린턴 대통령의 임기가 3개월을 남겨둔 시점이어 정상회담을 추진하기엔 상당한 무리가 있었고 당시 대선 판도가 민주당에 불리하게 돌아가며 정상회담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들이 미국 정계를 휩쓸었다.


결국 그해 11월 공화당의 조지 W.부시 후보가 대통령 당선에 성공하면서 클린턴과 김정일의 정상회담은 결국 아쉽게 무산되었다.

조지 부시 정권은 집권 뒤 전통적인 공화당의 정책을 고수했다. 그들은 북한과의 대화에 관심이 없었으며 오히려 미국은 911테러를 시작으로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고 조지 부시 대통령은 연설을 통해 이라크, 이란, 북한을 묶어 그 유명한 악의 축(Axis of evil)발언까지 하게 되며 북한과 미국은 다시 한치의 양보없는 냉전 체제로 돌아가게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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